희정,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여전히 성별이분법적인 세상에서(최근의 여러 사례들은...) 사회로부터 지정받은 성별정체성과 일치하지 않는다 자신을 여긴 이들은 무수히 많은 시간을, 끊임없이 숨기고 드러내기를 시도하고 협상하고 지움 당하고 부정 당하고 연기를 하며 오늘에까지 왔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또 소수만이 이 사회에서 ‘인정’되는 조건을 충족했을 것이고.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삭제 해도 되는가. 나의 낯섦이,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혐오와 낙인이 되지 않는 방식을 고안할 수 있는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화살이 특정한 사람에게로 향해지는 지금도 국가는 무엇 하고 있는가. 너 왜 모른 체 해?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만 읽어가도 이른바 ‘퀴어’ 혹은 ‘성소수자’라 구분 짓는 이름의 인권과 여성/페미니즘의 것이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읽으면서 자주 울고 싶어졌다. 우리의 서사는 자꾸만 만나지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리도 어긋나는 것들이 많은지... 우리는 서로 우리야! 라며 연대의 힘을 이야기하다 ‘나’의 일에 ‘결정적’일때 갈라서는 연대가 아니라 오늘 ‘실패’하더라도, ‘손해’보더라도 손을 놓지 않는, 그 손들을 서로가 놓치지 않는 연대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걸 배우고 싶고.
‘퀴어가 주변화된 정체성으로 주류의 온전함을 뒤흔드는 존재라고 한다면, 그래서 경계의 안과 밖을 구분 짓는 권력과 구조에 물음을 던지는 존재라면(240)’, 페미니스트는 퀴어다. “결국 우리는 모두 퀴어”인 것.
잘 나이 들고 싶다. 나라는 사람의 다채로움이 존중받길 바라듯 누군가의 삶도 마땅히 그러할 수 있길. 내가 ‘나’로서 ‘무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