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나의 분더카머

윤경희_분더카머

by 수수

‘분더카머’는 “근대 초기 유럽의 지배층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진열한 실내 공간을 지칭한다.”(12)고 한다. 오래된 것들의 쓰임. 소리 자체의 아름다움. 나열이 갖는 아름다움. 그것은 잊지 않고자 기억하려는 아름다움이었다. ‘아프다’와 ‘예쁘다’가 몸 안에 잔류한 이가 새로 써내려가기 위해 찾아나선 고통과 아름다움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같았던 <분더카머>. 네가 모르는 아름다운, 말에 대해 내가 알려주어도 될까. 그 제안은 내가 모르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너에게 들어도 될까. 계속 이어질 사랑의 언어.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에 이토록 다양한 온도와 색깔의 언어가 있었음을 새삼 만나게 된다. <분더카머>를 읽는 시간.

방이 여러 개가 없는 지금의 우리는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 곳곳의 방을 이용해 신-분더카머를 이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는 그 옛날 유럽에서처럼 진귀한 사물들로 가득차 있지 않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소중하지 않다고 누가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의 분더카머에는 당신이 있다. 이 방의 문을 여는데에 내가 아무런 거부감 없이, 그리고 기꺼이 들어와 나를 바라보아도 좋을 당신(들)이.

누군가 내 말에 물음표를 던졌다. “저는 시민단체에서 일해요”라고 말한 나에게. 그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분더카머는 10년간 살아온 나의 운동 역사라고 하면 어떨까. 누군가에게 거리낌없이 열고도 상처받지도, 비웃음 당하지도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조금, 깊진 않게 조금 했다.

나의 분더카머에는 떠나간 사람들에 대한 추억과 아픔이 있다. 지금도 서로의 곁인 사람들에 대한 추억과 애정과 바람들이 있다. 그곳에는 수시로 새로운 사람이 들어서진 않지만, 기어이 자리를 트는 사람들이 있다. 나를 분노케한 날들이 고스란히 남겨있다. 그거 뭐시 진귀하다고. 나에게 물줄기를 쏘고 내 팔을 꺾으며 “이 씨발년아” 욕을 들으며 두들겨 맞았던, 온 몸이 젖어 펑펑 울어대던 날이 들어있고, 매일 울면서 면회일정을 짜고 편지를 쓰던 날이 들어있다. 인원 가득 채워 스타렉스로 여기저기 다니고 같이 먹고 자고 웃고 공부하고 울고 놀던 사람들도, 공간들도, 시간들도 담겨있다. 숨기라고 배워왔던 여성의 몸과 행위들에 대해 거리에서 소리치며 만든 잊지못할 경험들이 있고, 원치 않은 성적 폭력의 경험만이 아니라 원함으로 넘치는 경험들이 들어있다. 사랑한 남성과 사랑한 여성을 향한 나의 사랑이 있다. 나의 진귀는 근대의 유럽인들의 사치와 수집과는 다르다, 어떠면 조금 많이.

비틀비틀거리고 울먹울먹거리면서도 놓지 않고 가져온, 누군가에게 보잘 것 없을, 이토록 귀한 나의 분더카머에 대해. 언젠가 너에게 이 속의 아름다움에 대해 나눠줄게.


<분더카머>, 윤경희,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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