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와즈 사강_패배의 신호
앙투안을 만날 생각에 너무 설레고 행복해서 자신의 파트너인 샤를에게 이전과 다른 애정이 샘 솟기까지 한 루실. 잔인하다 여겨질 수도 있지만, 사랑의 끌림에 솔직한 루실. 그건 하나의 용기임이 분명하다. 그녀를 만나면서 내일은 너무 멀다는 노랫말이 생각이 났다. 그래, 지금을 나누자. 언제 올지 모르고 가늠도 되지 않는 먼 미래따위가 아닌 지금 당장 다가올 내일과 같은 가까운 미래를 같이 만들자.
좋아하는 건 오직 무위뿐, 사랑이면 된다고 안위를 걷어버리고 나왔지만, 루실. 그런 그녀에게 경악하며 정체하는 삶이라 규정 짓게 된 앙투안은 왜 그토록이나 매력적인 시작을 지녔었나. 루실을 있는 그대로 보아준 샤를과 다른 건, 그들이 가진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나이나 세월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나. 무시할 수 없을 재력의 차는 어떤가. 그러나 그것 중 어떤 하나라고 단언할 수 있나. 혹은 아무것도 단언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나. 그러기에는 샤를이 가진 사랑을 외면할 수 없었다. 흡사 ‘사랑의 바보’ 주인공 같은 그 다정하고 성숙한, 그러나 루실이 떠나기 전까지 자신의 애탐을 보이지 못했던 샤를.
<패배의 신호>에는 서로에게 말하지 않았던/못했던 각자만의 감정들이 서술되어 있다. 독자인 나는 그들 모두의 것을 포함하고 있으니 안타깝고 슬프고 화도 나지만, 소설 바깥의 내 생으로 가져온다면 이 얼마나 너무나 우리의 삶이고,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가겠는가. 사랑하는 이와 곁에 서도 고독이 사라지지 않으리라. 이 고독을 어떤 모양으로 껴안고 살아갈 것인가.
<패배의 신호>, 프랑수아즈 사강, 정소미 옮김, 녹색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