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미_곁에 있다는 것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너무 잘 안다, 고 생각할 수 있었던 건 그 시절 이 책이 화제성을 갖게 된 배경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나는 김중미 작가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없고 잘 알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책을 사두고도 읽지 않고 책장에 있던 시간이 있었다. 얼마 전, 은유 작가님의 책을 읽고 인터뷰에서 김중미 작가를 만났다. 그리고 책장 어딘가 비슷한 색깔의 책들과 꽂혀 있던 이 책을 꺼내들었다.
“글을 읽는다는 건 ‘나’가 ‘너’가 되어 보려는 시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이길보라 감독의 글처럼 글을 읽는다는 건 내가 나 아닌 누군가가 되어 보는 ‘좋은’ 시간이기도 하며, 내가 나와 같은 이를 다른 장면으로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시도. 그리고 때론 시도 없이도 만나는 순간. 글을 읽으며 가능한 것들이 있다. 그래서 글을 읽는다.
고등학교 때 기억이 났다. 1학년 담임이고 윤리를 가르쳤던, 좋아했던 윤리 선생님은 내가 고2때인가 고3때인가 학교를 불쑥 떠났다. 그때 그가 재계약을 잇지 못한 비정규 교사라는 걸 알았다. 나에게 소중했던 사람이라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도 그 시간이 이어지는 것이 허락되지 못한 자로서 잠시뿐이었겠지만. 이후 그는 임용고시를 보았고, 광주의 한 여고의 교사로 있을 때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그 뒤로 만난 적은 없지만, 그를 따라 윤리 교사가 되고 싶었던 나는 그때 일이 인상 깊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때를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친구들이 있어서, 우리는 그때 서로에게 서로가 있어서 그 시절을 견뎠을지도 모른다. 최근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해이가 친구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했다가 그것이 치부가 되었던 경험을 다룬 장면이 있었는데, 그 당시 우리는 수치가 되고 치부가 될지도 몰랐을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하나같이 가정사에 고통이 존재했고, 가난했고, 내세울 만한 게 없었던 그 시절의 우리는 그렇게 날마다 함께 일상을 보내며 그 시절을 지나왔다. 그 시절을 지나 자라났다. 맞아, 나는 그때 그이들이 있어 견뎠다. 나의 가난을 증명하며 무언가를 지원 받아야 할 때 전혀 수치 없이 마냥 좋아할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 시절을 버텨올 수 있었다. 다행히 그 견딤이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지만, 잘 견뎌왔다고 해서 그에 대해 괜찮다고 미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누구든 그렇게 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가난은 그때도 지금도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강력한 무엇이고, 가난해도 좋다! 하하하 웃을 수 없지만, 가난한 것에 대해 외면하고 수치스러워 감추려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 것은 그때의 경험들도 몫을 갖는다는 것을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그리고 개인에게 부과된 그 무거운 짐을 다른 시선으로 갖고 다른 삶의 태도를 갖게 했던 10년 전 시작된 사회운동에 대해서도. 내가 기본소득을 지지했던 이유는 살아가면서 덜 망설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난은 무언가를 자꾸 선택하고, 경험해보는 데 망설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기본소득은 그 망설임을 줄여줄 수 있는 중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 번도 배를 곯아본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내 가난이, 가난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배를 곯아야만, 그제야 ‘돕는 것’이 복지라면, 그런 복지는 이제는 치워져야 한다.
가난에 대해서라면 마치 나 혼자 가난했던 양 떠들 수 있겠지만, 그것이 일정 부분 부질없고, 그리고 그것이 이 세계의 가난의 지극히 일부임을 안다. 이 세계는 왜 이토록 가난이 많은가. 게으르고 쓸모없는 사람들이어서, 라는 말은 정답일 수 없고 나와 맞지도 않으니 애초에 필요 없는 이야기이고, 이 책임져지지 않는 가난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자꾸만 더 가난해져가는데도 포기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김중미 작가가 말한 희망과 만날 수 있을까. 내 가난과 내 체념과 내 고통과 내 슬픔과 내 지리멸렬함이 그가 말한 희망과 만날 수 있는 조각이 된다면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겠다. 포기하고 싶지 않는, 곁에 있다는 것.
<곁에 있다는 것>, 김중미 장편소설,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