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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 _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by 수수



이 책은 매력적인 외형을 지녔고, 겨울 코트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가는 컴팩트한 크기와 두께이기도 하다. 동성 커플로 50년를 함께 한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이 책은 검정색으로 표지가 이루어져 있는데, 뒤표지에 적혀있는 글을 읽고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빼앗기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어쩐지 조금 울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런 새벽에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다.


이브 생 로랑의 삶이 어떠했는지 증인이 된 피에르 베르제의 수 개월의 편지로 이루어진 책은 이브 생 로랑의 장례식에서 낭독된 피에르 베르제의 편지로부터 시작되고, 1년 후 1주기에 쓴 글로 마무리된다. 지난 50년간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이기도 했던, 그리하여 가장 가까운 삶의 증인이자 사랑인 피에르 베르제의 사랑과 그리움과 고통과 존경이 담겨 있는 책을 읽으며 최근 다시 읽고 있는 벨 훅스의 ‘올 어바웃 러브’를 생각하기도 했다. 사랑뿐 아니라 이브의 가치에 대해 깊은 존경을 보내는 피에르 베르제를 통해 나와 상대의 영적 성장을 위해 확장해나가려는 의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청년부터 노년의 삶을 함께 걸어온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오랜 시간 파트너와의 삶을 돌보며 만들어가는 친구도 생각해보았다.


이 책을 읽는 덕분에 이브 생 로랑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바탕으로 다채러운 색채 감각을 지녔다는 이브 생 로랑. 디올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브 생 로랑. 성의 구분을 타파하며, 여성의 바지 패션과 기성복 시대를 열었다는 이브 생 로랑. 평생에 걸쳐 우울증, 약물 중돗, 알콜 중독을 경험하며 살았다는 이브 생 로랑. 알제리에서 태어나고 카톨릭 커뮤니티 속에서 부모가 혐오했을 아랍 소년들괴 몰래 만나왔다는 이브 생 로랑. 1991년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이브 생 로랑. 1958년부터 피에르 베르제와 관계를 이어온 이브 생 로랑. 그는 2008년 6월 1일 지병인 뇌종양으로 영면했다.


이후 그의 사업 파트너이자 연인이었던 피에르 베르제는 그들이 모아온 작품들을 경매로 처분하고, 그 수익금의 반은 에이즈 연구에 기부했다. 이 책을 쓴 피에르 베르제는 프랑스 팍스 제도 도입에도 적극적으로 운동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책을 읽었다. 물론 인생이 아름다움과 행복, 기쁨으로만 채워질 수 없음을 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그러하지 않음도. 그런 것들로만 가득했다면 오히려 마음을 움직이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성장해 나가고, 동일하지 않아도 그 가치를 존중하고 존경할 수 있음이, 그 쉽지 않음의 길을 역경이 있더라도 걸어온 이야기를 만났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함께 성장해나가고 싶은 의지를 품고 싶은 누군가를 만난다면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이 글이 적혀있다. 이 글은 피에르 베르제가 이브 생 로랑 1주기에 쓴 글의 일부다.


“이 편지에는 단 한 가지 목표가 있었지.

우리의 삶을 결산하는 것.

네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은 과정을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


이 글이 너의 재능, 너의 취향 너의 명민함, 너의 다정함. 너의 부드러움 너의 힘, 너의 용기. 너의 순수함, 너의 아름다음, 너의 시선. 너의 청렴함, 너의 정직성.

너의 고집과 욕구를 보여주기를.

너를 걸을 수 없게 했던 그 거인의 날개를.”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 프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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