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비비언 고닉_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by 수수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라니, 제목부터 너무 멋져서 읽지 않을 수 없었던 비비언 고닉의 책. 비비언 고닉의 책은 처음 읽는데, 그의 책은 두 권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처음에 나온 책은 엄마와의 관계를 다룬 <사나운 애착>이란 책인데 이 역시 제목 보고 친구랑 너무.. 너무.. 그렇다..며 감탄했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 역시 그러한데, 책 제목이기도 하고 첫 에세이의 제목이기도 한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는 거리의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그의 표현이다. 즉 거리에서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우리 모두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고, 타인 역시 그러한 것. 그리고 그 타인은 나의 공연에 함께 하며 연결되어 있고, 나 역시 타인의 공연에 조연으로서 함께하고 있기도 하다는 걸 그는 말한다. 익숙한 거리든 낯선 거리든 우리는 그 거리에 존재하고, 누가 지켜보건 지켜보지 않건 우리의 공연은 이어지고 있다.


또한 그의 글을 읽으며 매우 신랄하기도 하고, 솔직하고 깊이 사유하고 있단 생각을 했다. 자기 내면은 물론이고 타인을 생각하면서도. 그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우정과 친밀함이 필요 없다거나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한하거나 영원하거나 하지 않으며 한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고(물론 그 과정이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더라도), 외로움을 아예 느끼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내 인생을 망하게 하거나 혹은 내가 외로움에 사무쳐 모든 것이 무너지진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아가고 있음을 그의 글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계속 자기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질문할 수 있고, 손 내밀 수 있는 게 아닐까. 무언가가 소중하지만, 그 무언가를 붙잡느라 자신을 소외시키고 잃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일까. 혹은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타인을 잘라낸다면 그건 또 어떤 의미일까.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제각각 자신의 삶의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존재들. 그 존재들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자신의 공연의 주인공이고, 타인의 공연에 공존한다. 그러니 나다운 것과 나를 나답게 하는 것 주변에 웃고 있는 나의 친밀한 곁들과 소중한 무엇을 같이,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런 읽기의 시간이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비비언 고닉, 바다출판사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젊고 아픈 여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