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_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설의 첫 문장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다음 문장이 놀라웠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빨치산의 인생과 빨치산 딸로서의 인생이 소설로 펼쳐지는 와중에 나는 자꾸만 눈물이 딸꾹질처럼 솟았다 내렸다 했다. 어머니가 고된 삶 속에서 억척같아질 때, 아버지가 이야기한 지리산에서의 목숨 건 이유는 빠짐없이 목구멍을 일렁이게 했다.
빨치산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아버지’로 책은 마무리되지만, 그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렇기에 빨치산으로서의 또 동네의 이웃과 벗으로서의 그를 기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누군가에게 원흉처럼 존재하기도 했으나 버려질 수 없는 그리움의 대상이었고, 눈물로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였다. 그것이 비단 빨치산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삶을 다르게 선택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무수히 보아왔는가. 그렇기에 그의 삶이 쉬이 일어날 삶이 아니란 걸 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는 보지 못했던,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를 만난다. 미움이 많았겠지만,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며 그도 어느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버지였음을 기억해내고, 빨치산으로서만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인간대 인간으로서 아버지를 마주한다.
서로 욕하고 미워했던 시간이 있었지만, 가는 길 최선을 다해 마음 내어주고 함께하는 삶에 대해 어찌 쉬이 평가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상욱씨가 부러웠다. 그처럼 살기는 너무 무겁지만서도 그가 참말로 부러웠다. 그 애도의 공간에 같이 부대끼고 싶을 정도로. 한바탕 같이 울고 싶을 정도로.
이 책을 읽으며 자꾸만 눈물이 났던 건 가늠할 수 없는 빨치산의 삶때문이었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면서 편을 만들기보다 누군가 희생되지 않게 하던 이가 자신의 혁명의 신념을 놓지 않고 살아낸 삶을 만나서였다. 그리고 빨치산과 비할 수 없지만,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어서였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삶을 함께 내어주고 일궈온 사람들, 실패한 운동에서 좌절하거나 떠나간 사람들, 오랜 시간 가져온 꿈이 사라져 허망한 사람들, 이토록 힘들줄 이토록 길이 안 보일 줄 몰랐다는 사람들, 여전히 무언가를 안고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 온실 안팎의 경계를 사라지게 하고 싶은 사람들. 가슴에 그 사람들이 자꾸만 사무치게 담겨서.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장편소설,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