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아는 사람

유진목_슬픔을 아는 사람

by 수수

지난 5월, 서울 여행 중 방문한 인천의 한 책방에서 유진목 작가의 <슬픔을 아는 사람>을 구매했다. 소설을 중심으로 한 책방에서 나는 하노이 여행에 다녀온 작가의 에세이를 집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등 아래께 약간의 슬픔 고여 있었다. 나는 이리더리 뒤척이며 슬픔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이 문장을 만나고 잠시 멈췄다. 책을 다 읽고 알았다. 나는 조금 떠나고 싶고, 나는 조금 쉬고 싶다. 이 마음을 잘 다독이며 이 시기를 잘 지나가고 싶다. 잘 살아가고 싶기에 ㅡ


<슬픔을 아는 사람>, 유진목의 작은 여행, 난다


p15 그런 뒤 나는 협탁 위에 미리 꺼내놓은 작디작은 수면제 한 알을 먹는다. 그러면 세 시간쯤 더 잘 수 있다. 나의 가장 먼 미래는 아침이다. 아침에 만나. 나는 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p42 살면서 다시는 오지 않을 곳에 머무는 일은 다짜고짜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나는 커피를 마시는 내내 생각했다. 이곳에는 다시 오지 않겠구나. 이 맛있는 커피는 여기에 만 있는 커피가 되겠구나. 나를 보고 웃는 주인 아주머니 의 얼굴도 차츰 잊겠구나. 나는 아쉬워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하면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다.


p49 나는 아침에 마셨던 기가 막히게 맛있는 커피를 주문했다. 가기 전까지 커피나 계속 마셔야지. 별 수 있나. 나는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마셨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정말이지 기가 막히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마도 닌빈에 다시 온다면 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일 것이다. 다시 올 때는 동행이 있어도 좋을 것이다.


p50 살다보니 나는 마음이 전부인 사람이 되어버렸고. 이제 와 돌이켜 다른 사람이 되는 건 거의 포기했다. 노력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마음 말고 소명을 따르는 사람. 마음 말고 루틴을 따르는 사람. 마음 말고 세상을 보는 사람. 마음 말고 타인을 보는 사람. 마음 말고..... 그러니까 나 말고 다른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p66 하노이를 걷다가 아하 커피가 나오면 반드시 들어가 블랙 아이스 커피를 시키도록 하자. 초콜릿 맛이 진하게 혀 끝에 감도는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하노이를 걷다가 올데이 커피를 만나면 반드시 들어가 후레시 망고가 든 레몬 티를 시키도록 하자. 분명 한 잔 더 시켜서 마시게 될 것이고 구글 맵에 위치를 표시해두었다가 다시 들르게 될 것이다.


p80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 빨래. 설거지. 밥 먹기. 잠자기. 친구와 이야기하기. 고백하 기, 어떤 것은 비밀로 간직하기. 울음을 참기.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기, 웃기. 속상해하기. 억울해하기. 노력하 기. 포기하기, 용기를 갖기. 실패하기. 성공하기, 묵묵히 살아가기, 소리지르기, 가슴을 치기, 다독이기, 위로하기. 외면하기. 잊어버리기. 잃어버리기. 어느 날 떠올리기. 안도하기, 한숨 쉬기, 악몽에서 깨어나기. 그리하여 죽기.


p91-92 슬픔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슬픔은 충만한 사랑을 알아본다. 사랑을 먹고 자란 슬픔은 이내 충만해진다.


나는 슬픔이 없는 사람을 경멸한다. 아니. 슬픔을 모르는 사람을 경멸한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매사에 무례하다. 슬픔을 모르기 때문이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매사에 자신이 옳다. 슬픔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픔은 중요하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무례하지 않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틀림을 가능해본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모든 말을 내뱉지 않는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적절히 타인과 거리를 둔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해하지 않는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매사에 조심 한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공감할 줄 안다. 그래서 슬픔이 있는 사람은 조용히 타인을 위로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슬픔을 품고 살아간다. 슬픔은 없애버려야 할 것이 아니다. 상처는 낫고 슬픔은 머문다. 우리는 우리에게 머물기로 한 슬픔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슬픔은 삶을 신중하게 한다. 그것이 슬픔의 미덕이다.


여기서 슬픔은 고통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고통은 비탄이며 비탄은 많은 것을 파괴한다.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타인을 파괴하고 세상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위해. 타인을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p108 아침에 일어났는데 등 아래께 약간의 슬픔이 고여 있었다. 나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슬픔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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