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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Sep 18. 2023

술래 바꾸기

김지승_술래 바꾸기


“술래는 주체일까, 타자일까?”


첫 글을 음성으로 소리 내어 읽었다. 어쩐지 그러고 싶었다. 집중하고 싶을 때나 시간을 내어 텍스트와 머물고 싶을 때 그러곤 했다. “여성이 사물과 관계 맺는 방식을 인문적으로 탐색한 에세이”라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김지승 작가의 <술래 바꾸기>는 여성주의저널 ‘일다’에 연재한 글과 새로운 글로 구성된 에세이집이다. 출판사 ‘낮은산’의 강설애 편집자의 소개글에서 본 이 책은 애초 ‘페미니즘프레임’ 시리즈로 준비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편집을 하면서 본래 컨셉에서 자꾸 삐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담으려 했던 ‘그릇’이 좁아진 것이라고. 그렇게 나온 책이 <술래 바꾸기>이다. 이 글을 쓰면서 암이란 질병을 경험하게 되었으나, 연재를 멈추지 않았고 이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에세이집 속 에세이는 소설 같고 우화 같고 이름 없는 비명들이 이름이 붙여진 이야기가 된 것 같고. 많은 부분에 밑줄 자국의 책이 되었다. 성실한 ‘듣기’의 시간이 읽던 책을 잠시 내려두고 창밖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게 하는 감각의 글로 태어났다. 공들여 적힌 텍스트는 이야기가 되어 말을 건넸고, 나는 김지승뿐 아니라 안은미 안무가가 말했듯 그들로 인해 이어진, 여성 노인들의 이야기를 삶의 조각을 만났다. 눈 앞이 갑자기 흐려져 앞이 잘 보이지 않던 며칠의 날이 있었다. ‘볼 수 없을 땐 불안은 안개처럼 퍼지고’ 쏟아지는 무서움에 슬픔이 뒤덮는 날들을 살았다. 짧게 지나갔지만, 아마도 연속인 날들이 언젠가 나에게도 올 것이다. 명자는 합병증으로 한 쪽은 제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한다. 이 보임과 보이지 않음의 경계와 서사는 우리에게 이어진다. 딸과 딸, 또 다른 딸, 엄마와 딸, 누군가인 여성 노인과 그리고 나. 보이지 않아서 더 잘 들릴 수 있고, 불안해도 괜찮은 시간이 나에게도 올까. 미지수의 불확실성의 것들 속에서 오늘도 살아 숨을 쉬고, 책을 읽었다. 바로 직전에 내가 도시의 거리에 대한 감각을 쓴 비비언 고닉의 글에 대해 고백하지 않았던가. 바로 이어 만난 이 책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연필>부터 <짐승일기> 그리고 <술래 바꾸기>까지. 김지승 작가와 같은 이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술래 바꾸기>, 김지승 에세이, 낮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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