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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Sep 24. 2023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_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듣는 사람들이 누구이고 어떻게 질문하며 어떻게 경청하느냐에 따라 생애 이야기와 느낌과 해석은 아주 달라진다. 가난을 상수로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빈곤은 밑천이자 해결해야 할 일상이다. 빈곤에 따라붙는 고통과 질병과 못 배움 역시 현실이자 밑천이다. 빈곤을 바라보는 빈곤 하지 않은/덜 빈곤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과 느낌과 해석 들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빈곤을 밑천으로 전략하며 몸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말을 얻어듣는 일은 개인적으론 더 추락해도 살아지겠구나 하는 안심을 얻고, 사회 속 저력(밑바닥 힘)을 확인하는 탐문이기도 하다.‘(333-334)


책에서 위 문장을 읽을때 생각나는 게 있었다. 거실이 없는 집, 실내 욕실이 없는 집에서 살았다고 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런 집이 어딨냐고 친구는 내가 농담을 하는 듯 물었다. 원룸살이도 했으니 아마 욕실 부분에서 반응한 것일테다. 한 번도 그런 집에서 살아본 적 없고, 살 거라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건 아예 모르는 것이라 상상에도 없는 영역이다. 말 그래도 없을 무. 명자에게 새로 나온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알려줬다. 그건 여러모로 이전 것보다 비싸다. 효과도 좋다. 그럼 당연히, 그걸 다 선택하겠지? 란 생각과 다르게 대번에 가난한 명자는 선택하지 못한다. 하지만 효과성과 이후 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게 비싼가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당장 들이는 비용이 싸서 하는 선택들이 이후 또 다른 지출을 만들 수도 있다. 어쨌든 당장은 아니지만, 접종을 갈 명자에게 선택지들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 선택지가 왜 다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것 없이 그냥 싼 것이 선택되는 것이 늘 최선일 수는 없을 테니까.


최현숙 선생님의 이 산문집은 나이듦/늙어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가난/빈곤과 그것의 사회구조적 문제, 그럼에도 개인의 몸에 덕지덕지 들어붙은 습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냄새는 계급적이라 생각하고, 오염된 존재들을 냄새로 가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돈과 결부되어 있고, 이 사회에서 ‘예뻐하는’ ‘정상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가난한 ‘나’는 가난한 명자와 가난한 동생과 가난한 원가족과 가난한 친구와 가난한 활동가와 가난한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가난에 쫓겨 절벽 앞에 서 본 사람들과 삶의 순간을 생각한다. 그 짠 눈물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 속은 무력하지만은 않다. 생생하고 질긴 삶이 있다. 작고 큰 외침과 다정과 저항과 성남과 억척과 환대가 뒤엉켜 존재한다.


“삶을 똑바로 바라보고”자 슬픔, 수치로 외면하기 쉬웠던 것들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힘. 그 힘은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란 걸 파헤치는 최현숙 선생님 글을 읽으며, 내 삶이 전혀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해보고 싶다, 해볼만 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뭐? 왜? 란 마음도 들고 ㅎㅎㅎ 치열하게 자신의 생애와 경험들을 사유하고, (재)해석하고, 개인적으로만이 아닌 사회정치적으로 드러내고 위치시키는 작업들을 보며, 선생님의 멋짐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게 힘이 되고 자극이 된다. 좋을 일이다. 애초 완벽하거나 완전을 꿈꾸지 않았으니 취약함을 둘러싸며 살아가볼 수 있겠지. 이 자원들을 먼저 안고 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주는 것들을 잘 안고서.


덧붙임: 제목이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퀴어•페미니즘 의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두려움이나 불안의 실체만큼이나 ’허상‘에 대해 늘 생각하는 나에게 이 책의 제목은 이미 시작부터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산문,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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