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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Oct 04. 2023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_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이번 산책모임 책인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문맹>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이라 킵해두고 잊었던 책이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헝가리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살면서 프랑스어로 작품을 썼던 작가이다. 독일과 소련에게 침략당한 헝가리에서 계속 살 수 없었기 때문인데, 난민이기도 했던 그녀는 원하지 않더라도 ‘모국어’인 헝가리어가 죽어가게 되었다. 그녀의 <문맹>은 그런 배경 서사 속에서 작고 얇지만, 강력한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뭘까, 어떤 의미일까 무척 궁금했다. 책의 후반부에 세 가지 거짓말이 나올 때 헉! 소리 없이 놀랐다. 잠시 앞으로 갔다가 오기를 여러 번, 이러한 글쓰기에 놀랐다가 집중했다가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심정을 가늠해보다가 그것이 너무 커서 멈추었다가 했다.


<문맹>처럼 이 소설도 그의 자전 소설이기도 하면서 그를 떠나 너무나 소설이기도 한, 고통과 비극과 그럼에도 이어져온 삶의 이야기기도 하다. 원치 않는 이주, 망명, 도망, 이별은 사람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이 긴 책을 쓰기까지 그 경험과 세월은 그에게 무엇을 남기고 찢기고 빼앗고 주었을까. 나로서 살아갈 수 없는 곳에서 나이길 바라며, 살아가기 위한 존재의 거짓말에 대하여.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까치


p17 저녁을 먹으면서 할머니가 말했다.

 “이제 뭘 좀 안 모양이구나. 지붕 아래서 자고 배불리 먹으려면 그 정도 일은 해야지"

 우리는 말했다.

 “그게 아니에요. 일하는 게 힘들긴 하지만,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일하는 사람을 구경만 하는 것은 더 힘들어서 그래요. 더구나 노인이 일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말이에요."

 할머니가 비웃었다.

 “개자식들! 내가 불쌍하게 보인다 이 말이구나?"

 “아니에요, 할머니. 우리는 다만 우리 자신이 부끄러웠을 뿐이에요."

 오후에 우리는 숲으로 나무를 하러 간다.

 그후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한다.


p106 그 여자가 말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바보 같은 소리! 온갖 궂은 일, 온갖 걱정에 빠져 지내는 게 여자야. 아이들 먹여 살려야지, 부상병들 돌봐야지. 당신들은 일단 전쟁만 끝나면, 모두 다 영웅이 되잖아. 죽었으면 죽어서 영웅, 살아남았으면 살아서 영웅, 부상당했으면 부상당해서 영웅. 전쟁을 발명한 것도 당신들 남자들이고, 이번 전쟁도 당신들의 전쟁이야. 당신들이 원해서 그렇게 한 거야, 개똥같은 영웅들아!

 모두들 왁자지껄 떠들고, 고함치기 시작했다. 우리 옆에 있던 노인이 말했다.

 ”아무도 이런 전쟁을 원하지 않았어. 아무도, 아무도.“


p316 루카스가 말했다.

 “하나도 우습지 않아요."

 ”내 나이를 생각해도 말인가?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본질만이 중요해요. 당신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 역시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그녀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많은 여자들이 실종되거나 죽은 남편을 기다리며 울고 있어요. 하지만 노인께서 방금 말했듯이, 기억은 희미해지고, '고통은 줄어들고 있지요.‘ "

 불면증 환자는 눈을 뜨고 루카스를 바라본다.

 ”희미해지고, 줄어들고,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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