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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Sep 27. 2023

술꾼도시여자들


“진짜 술은요. 나한테 나를 뺏기는 게 아니라 용기있게 내가 나와 마주하는 거예요.“


술꾼도시여자들 시즌1-2를 봤다. 같이 눈물 흘린 장면이 꽤 됐는데, 인상 깊어 남겨둔 말은 저 말이다. 어디 술뿐인가 싶지만, 술로 회피하기 쉬운지라 그 용기에 대해 기억하고 싶어서. 너무 많은 술과 너무 많은 욕설은 나를 즐겁게만 만들지 않았지만, 서로가 용인한 친밀과 침범의 난잡한 돌봄을 보며 많이 공감하고, 부러워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은 에피소드 하나 더. 시즌2 8화에서 혜진과 아가 재희의 이야기를 보며 공감보단 앞으로 이어질 장면들로 많은 생각을 했다. 이는 지금 나의 예외적 사랑들이라 여기는 관계에서 누군가 결혼을 하고 싶어 하고 아이도 낳고 싶어 해서인데, 그럴 때 나는 어떤 곁으로 있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서이다.


이 드라마를 보니 중국 드라마 <겨우 서른>이 생각났고 또 한국 드라마 <서른아홉>이 생각났다. 드라마들은 제각각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마 순차적으로 보면 어떨까? 하고 순서를 정한다면 <겨우 서른>- <술꾼도시여자들>- <서른아홉>이려나. 겨우 서른 속 주인공들은 결혼을 하기도 하고, 하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고, 도시에서 자리 잡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과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들이 나온다. 술꾼도시여자들에서는 아픈 몸 서사가 나오고, 직장에서의 고달픔이나 원가족과의 갈등, 원가족의 죽음 등이 나온다. 이것들은 현재 내가 경험하며 흘러가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고, 부모의 죽음 등 나에게 닥칠 미래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서른아홉처럼 그 죽음의 당사자가 ‘나’일 수도 있다. 더 이상 나에게 젊음이란 것이 영원처럼 존재하지 않고, 이미 아픈 몸의 서사가 시작되었으며, 각박한 삶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며 또 자기 돌봄과 서로 돌봄을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공감과 생각들을 하기에 좋은 드라마였다. 그러나 나는 이런 드라마들을 보며 또 생각한다. 이성애 중심 서사들만이 아닌 퀴어한 이들의 서사로서 일상을 만나고 싶다고. 정작 나를 포함한 내 친구들은 이성애자만이 아니고, 또 시스젠더 이성애자라고 해서 결혼을 꿈꾸거나 결혼을 하고 있는 것만도 아니기에 다른 삶의 모양들이 튀는 잠시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일상으로 만나고 싶다고. 그렇게 나의 지금과 내일을 공감하고 울고 웃으며 같이 흘러가는 드라마를 만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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