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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Oct 06. 2023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하재영_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수 년 전, 여성주의 상담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내가 엄마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잖아? 새삼 생각하게 되었고, 그날 엄마는 왜 결혼했을까? 질문을 하다 엄마의 폭력 피해 경험에 대해 알게 되었고, 우리는 펑펑 울었고, 엄마는 창피해했고, 나는 고마워했다. 엄마는 엄마이지만, ’엄마‘이지만은 않다. 이 당연한 사실을 나는 오랜 시간 자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뒤늦은, 그의 과거가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내가 그녀를 구원할 수 없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고, 듣고 싶기에.


하재영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먼저 쓴 사람이기도 하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부터 이 책까지. 공감이나 생각의 동일성을 차치하고 말이다.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것은 <나는 엄마가 먹여살렸는데>처럼 구술생애사로 내 마음에 안착되기도 했다. 그 책에서 아쉬운 어떤 지점들이 이 책을 읽으며 ‘공동 회고록’으로 일정 부분 채워지거나 다채로워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하재영 작가의 이 책은 나와도 엄마와도 너무 다르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없이 형제들이 키운 엄마와 아빠에게는 물론, 내게는 조부모의 서사가 없다. 재혼 이후 엄마 표현대로라면 “다 늙어서”, 그러나 다 큰 딸들을 데리고 총각과 한 재혼살이에 늘 존재했을 눈칫밥과 이어진 시어머니 모시기 역시 이 책의 고부관계나 갈등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엄마라는 사람 자체로도 궁금하고 흥미롭다. 부모 없이 살아가며 받았을 눈치밥이나 불행들 속에서 그가 가진 자유란 것도 있지 않았을까. 그때 그에게 가득찬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비슷한 또래의 조카들의 고등교육 과정을 보면서 어떤 박탈감이나 수치, 혹은 다짐을 가졌을까. 학생운동하던 대학생 애인이 있던 대학생 언니를 따라 나왔다가 목격한 집회 현장과 그런 집회 현장에 가는 딸을 볼 때 그는 어떨까. 남의 집 살이, 남의 돈 버는 노동을 하다 원치 않는 결혼에 이어 임신과 출산 육아 경험에 모자라 가족을 먹여살리는 가장이 되었던 그에게 지금껏 흔적을 남기는 ‘아픈 몸’의 서사, 늘상 가난했어도 백화점 드나들던 젊은 시절과 지금의 가난의 모습의 차이들, 끙끙대며 미처 나오지 못하고 그의 몸 속에 존재하는 것들, 그러다 휘발된 것들, 그럼에도 찌꺼기처럼 남아있거나, 동력이 되는 것들. 나는 엄마가 궁금하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 다가올 어떤 시간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의 엄마인 여성은 어떤 면에서 목소리 없는 자가 아니었다. 여성으로서 성별화된 구조 속에서 억압 당하고, 폭력의 경험에 놓였으나 그가 책임져온 가족 내에서 그의 위치성은 복합적이었으며, 목소리가 분명 존재해왔다. 나는 여전히 나의 엄마라는 여성, 그 한 인간이면서도 중요한 정체성인 여성인 그의 삶이 궁금하고, 들여다 보고 싶고, 글로 쓰고 싶다. 그리고 엄마의 삶뿐 아니라 어떤 지점에선 결코 별개일 수 없을 부분을 가진, 그러나 너무 다른 사회정치적 자원과 위치에 있는 나와 엄마를 두고 연결성을 찾고, 재해석하고 싶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하재영, 휴머니트스


p9 이 책은 엄마의 삶을 경청하고 해석하고 감응하려는 작업이었다. 많은 딸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옹호자를 자처하지만, 나에게는 그 중간 단계로써 해석이 필요했다. 이 해석은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제시한 정신세계에 대한 과학적 패러다임도 아니고 수전 손태그가 "해석은 지식인이 세계에 가하는 복수“라고 말할 때의 그 해석도 아니다. 나의 해석은 한 사람 속으로 '들어감'이고 '물러남'이다. 엄마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엄마의 감정으로 느끼려고 그녀의 내적 논리와 존재 방식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들어감'은 나의 상상 속에서 엄마의 삶을 다시 살아내려는 시도였다. 한편으로는 엄마의 삶을 텍스트로 삼아 독해하려고 '물러나려' 했다.


p14-15 그러나 나는 엄마의 필경사가 되어 엄마와 나의 공동의 회고록을 쓰는 일이 엄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지 못했던 다수의 여성에게 의미 있는 일이 되기를 소망했다. 이야기는 단지 우리의 과거, 경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이 거나 해방일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 내가 엄마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엄마에 대한 '책'이 아니었다. "나 자신으로 살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엄마가 자기 삶의 저자가 되는 '사건'이었다.


p25 부모님과 함께 산 건 열 살까지가 전부야.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4학년 때 대구로 유학 갔거든. 엄마에 대해 떠오르는 게 별로 없어. 한 인간이자 여성으로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를 뿐 아니라 엄마로서 어땠는지도 생각이 안나.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맏며느리로서 여러 사람을 먹이려고 일했다는 것. 아버지 고향이 점촌에서 가까운데 그 동네가 집성촌이거든. 이웃들이 일가친척이야. 오일장이 서면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왔어. 읍내에 살았던 데다 집이 넓고 형편이 넉넉한 편이어서. 장날이면 방마다 사람이 가득 찼어, 식당처럼. 엄마는 항상 그 많은 손님을 먹이고 대접했어. 엄마도 나름대로 자식들에게 신경을 썼겠지만, 내가 본 엄마는 나의 엄마라기보다 동네의 공공재 같은 사람이었어. 그런 기억만 남아있어.


p35 우리는 어떤 사람, 어떤 인생을 '평범하다‘고 정의 하는가? 모두가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이 언어가 배제하는 사람, 즉 '평범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평범함으로 뭉뚱그려진 자화상 안에 우리의 특권과 차별이 은폐되어 있지 않은지 의심한다.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약자로서의 정체성과 수혜자로서의 정체성이 혼재되면서 정확한 자기 인식을 방해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한다.


p53 나도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는데, 친구를 사귀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다녔는데, 하루아침에 시댁의 집과 마당이 세상의 전부가 된 거야. 새벽 부터 한밤중까지 집안일하고 시부모님 시중들고 시동생들 챙기는 게 일상의 전부가 된 거야. 견딜 수 없는 구속감이 밀려왔어. 자유로운 생활은 끝났구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구나, 꼼짝없이 갇혀서 일만 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구나. 그걸 깨달은 순간 생병이 난 것 같아. 그래도 첫 번째 시집살이는 5개월이 안 돼서 끝났어.


p62 결혼한 지 7, 8년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결심'을 했어. 그 전까지는 '주어진' 상황에서 '해야 하는' 일만 했거든. 내 결심이 뭐였냐 하면 '포기하자’. 뭘 포기하느냐 하면 이야기하는 것과 기대하는 것. 둘은 연장선상에 있는 거지. 이야기하 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이 들어주고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거니까.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면 나만 아프고 괴로워진다는 걸 깨달았어.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말하지도, 바라지도 말자. 그렇게 아빠, 할머니, 시댁 가족들에 대해 다 내려놨어. 그런 데 너희만큼은 안 되더라. 자식 빼고는 진즉에 다 내려놨어, 고작 30대 초반에.


p78-79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서 했던 저 유명한 말,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라면, 덧붙여 '남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되는 것'이라면 특정 성별로 태어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젠더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와 집안에서, 그것을 제도화한 산물인 가부장제를 받아들이며, 여자와 남자가 되는 것이 문제다. 성차별적 환경에서 성차별주의자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는 왜 성차별주의자였는가?가 아니다. '내가 어떻게 익숙한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언어를 배웠는가?‘이다.


p81 결혼 후 엄마의 첫 번째 결심은 "포기하자"였다. "이야기하는 것과 기대하는 것" 결국 엄마가 포기한 것은 목소리가 아닐까? 목소리는 자신의 고유함을 설명하는 도구이다. 내가 나 자신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 "주어진 상황에서 해야 하는 일만"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앞에서 가장 먼저 버려야 하는 것도 목소리다. "있어도 없는 사람"의 핵심은 목소리 없는 존재, 침묵하는 자 또는 실어하는 자이다.


p94 누군가로부터 매를 드는 건 사랑이고 손으로 때리는 건 화풀이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따랐어. 네가 말을 듣지 않으면 매부터 찾았지. 지금은 아이를 때리는 게 폭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체벌로 훈육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어. 아이마다 성향이 제각각이니 양육 방식도 천편일률적일 수 없을 텐데, 게다가 너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자의식이 강한 아이였는데. 나는 정상과 비정상을 이분법으로 구분하고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면 매로 때려서 고쳐놨어. 왼손잡이인 너에게 오른손 사용을 강요했고, 고집이 강한 성격을 바꿔놓겠다고 남 앞에서 망신을 줬고, 자세를 곧게 만들어야 한다며 네가 싫어했던 허리 교정용 보조기를 억지로 착용하게 했지.


p129 내가 40대 중반이 된 지금도 육아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에게서 모성의 굴레를 본다. 나 역시 엄마의 지대한 영향력 아래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라고 선언하면서, 동시에 모성이 모든 결함의 원인이자 결과라는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면서 나는 '좋은 어머니'가 되지 않기로, 나아가 '어머니'가 되지 않기로 했다. 비출산 여성은 똑같은 질문을 끝없이 받는다. 아이가 있는 사람에게 '왜 아이를 가졌느냐?‘고 묻지 않으면서 아이가 없는 사람에게는 '왜 아 이를 가지지 않느냐?’고 묻는다. 출산이 기본값인 사회에서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은 언제나 '왜?'라는 물음에 직면하고 자기 선택의 타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p132 어머니를 비롯해 비출산 여성, 다양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과 가족 형태를 가진 사람이 모성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경험적 모성만이 아니라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역사적 문화적 맥락으로서, 제도와 정책으로서 모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모성에 덧씌워진 신화를 걷어낼 때 우리는 자신과 어머니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p148 엄마가 생계를 위해 '바깥일'을 할 때도 '집안일'을 대신하거나 함께해준 사람은 없었다. 가족 모두가 가사노동을 엄마의 ‘일'로, 어쩌면 '역할'로 여겼다. 과거나 지금이나 집 안팎에서 이중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은 나의 엄마만이 아니다. 일하는 여성의 다수가 그렇다. 흔히 성역할을 생계 부양자인 남성과 가사 노동자인 여성으로 이분하지만, 이것은 중산층 가운데에서도 일부일 뿐, 많은 여성이 생계 부양자이자 가사노동자로서 이중 굴레에 갇힌다.


p156 이 주제에는 선행하는 질문이 있다. 일하는 여성에게 젊음과 아름다움은 진정으로 특권인가, 아니면 여성을 또 다른 신화 속에 가두는 억압 기제인가? 나오미 울프는 텔레비전 저널리즘을 사례로 들며 여성 앵커 크리스틴 크래프트의 표현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나이 든 여성 앵커는 곧 '뉴스를 할 만큼 예쁘지' 않을 것이기에 '진짜 악몽'에 시달리고 여성 앵커가 '아름다우면' 오로지 외모 덕분에 일자리를 얻은 사람으로 끊임없이 손가락질을 당한다” 울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전하는 메시지를 이렇게 정리한다. 아름다우면 일을 못 해도 눈에 보인다. 일을 잘하는데 아름다우면 눈에 보여도 실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일을 잘해도 아름답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실력이 소용없다.


p176 할머니에게 나는 며느리이자 딸이고, 말동무이자 시녀였어. 할머니의 세계에서 그 모든 역할을 감당하는 유일한 사람. 그러니 할머니는 나와 함께 있는 게 가장 좋으셨던 거지.


p195 모녀도, 자매도, 친구도 아닌 두 여성의 관계는 가부장제라는 제도권 안에서 성립하고 기능한다. '고부'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뜻하지만, 그들은 한 남성(아들-남편)을 사이에 두 고 있기에 ‘고부 관계'는 삼자관계다. 우리 집에서, 다른 가정에서도 이 관계의 특수성은 젠더적 측면에서 두드러지는 듯하다. 시어머니는 여성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가부장제에서 그-그녀는 아들의 대리인이기에 고 부 관계는 여성 대 여성의 관계라기보다 여성 대 명예 남성의 관계에 가깝다.


p220 ‘고부'라는 말이 많은 상념과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나에게 고부관계는, 프리던 식으로 말하면, '이름 붙일 수 없는 관계'다. 엄마를 가둔 것이 할머니라면 할머니를 가둔 것은 가부장제라는 공고한 체제였는지 모른다. 서로 다른 의미에서 두 사람은 갇혀 있는 자가 아니었을까? 이 '두 명의 갇혀 있는 자'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들이다. 두 사람을 모두 사랑하기에 이 글 속에서 나는 분열한다.


p212 “너희의 좋은 면을 발견할 때 내가 영향을 준 부분도 있을 거라고 믿어"라는 엄마의 말은 진실이다. 나에게 좋은 면이 있다면 엄마에게 물려받은 유산이다.


p233 엄마가 떠나고 알았어, 시어머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데 엄마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걸...... 엄마와 딸은 서로를 잘 알 수 없는 것 같아. 두 사람이 같이 지내는 건 딸이 어리거나 젊을 땐데, 그 시절엔 엄마에 대해 깊이 생각 하지 않거든. 자기 문제에 몰두하는 시기니까. 그러다 결혼하 면1년에 한두 번 엄마를 만날 뿐이야. 또 옛날 엄마는 그래. 아들 집에서는 상전처럼 굴어도 딸 집에서는 자세를 낮추거든. 우리 시어머니처럼 당당한 분도 그랬어. 아들, 며느리에게 갔을 때와 딸, 사위에게 갔을 때 태도가 완전히 달랐지. 딸들은 자기가 보는 엄마밖에 몰라.


p250 ‘나이 듦'과 '젊지 않은 여성'을 비하하거나 회화하거나 심지어 혐오하는 사회에서 노년 세대와 나이든 여성에 대한 "적절한 대명사"는 만들어질 수 없다. 그것은 이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여전히 주요 담론의 바깥에, 사회의 가장자리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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