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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Oct 15. 2023

검열의 나라에서 페미니즘 -하기

리인허_이제부터 아주 위험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중국 페미니스트 리인허의 <이제부터 아주 위험핮 이야기를 하겠습니다>는 2014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10년 전에 쓰여졌고, 주로 만나는 2030세대도, 내가 주고 읽을 30~50세대보다 높은 세대의 글이지만, 지금의 내게도/우리에게도 여전시 유효한 것들과 논쟁이 될만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검열의 나라에서 페미니즘 하기’라는 이 책의 원제는 사실 <나의 사회관찰>이란 노멀한 제목인데, 한국판으로 번역되면서 굉장히 도발적으로 사람들을 궁금하게 하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막상 읽으면 그런 체감이 덜할 수 있지만, 포르노를 봤단 이유로 새벽에 집으로 쳐들어온 공안에 잡혀간 사건들이 있는 중국에서 페미니즘-하기는 아주 다른 감각을 떠나 위험일 수 있겠다.


<여성의 수치심>에서 국가의 수치심을 읽다가 중국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게된 책인데, 그 책과 리인허의 관점은 비슷함이 들어나면서도 사뭇 다르기도 했다. 중국은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높아질 때, 전통적 여남의 구분 없이 평등을 강조했는데, 이때의 방식이 여성성을 눌러버리거 남성화된 남성/여성으로서의 평등과 같은 것이었다. <여성의 수치심>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 비틀어 보며 중국의 ’성평등‘이 어떻게 중국이란 국가의 수치심을 딛고 풀어가는 과정이었는가와 함께 비판도 짚었는데 리인허는 그보단 중국의 ’성평등‘ 국가/헌법을 여러곳에서 드러내며 성에 대해 무지하거나, 성차별적 요소들은 국가가 지향하는 것과 맞지 않다고 맞서고 있다. 리인허가 말하는 페미니즘/페미니스트/여성/무엇-하기가 소위 젊은 여성들의 페미니즘-하기에 영향을 주되게 주면서도 사뭇 다른 모양이나 지향이 나오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젠더, 성, 사랑, 퀴어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들, 그리하여 여전시 유효한 고민들이 존재했고 그는 명쾌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이란 국가의 특성을 이야기하며 동성혼법제화 이야기하는 부분은 특히) 전 세계 어디서나 차별에 맞서고 평등하게 함께 살아가기 위한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이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생각한다.


<이제부터 아주 위험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검열의 나라에서 페미니즘 -하기>, 리인허 지음, 김순진 옮김, 아르테


p6 ‘나는 도대체 왜 성을 연구하는 것일까?

 답은 이렇다. 중국에서 성을 연구한다는 것은 모험과 위험을 무릅쓰는 도전이자 규범을 벗어나는 도발과 같으며, 심지어 전위적인 반역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내가 성장한 환경을 따라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p7-8 중국 문화는 줄곧 의무를 강조하고 권리를 홀시해 왔다. 사람들은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희생하는 데 익숙하다. 우리 문화에서 개인의 권리는 종종 사회와 국가의 이름 아래 억압받았다.


p17 하지만 관점과 주장이 다른 각각의 여권주의에도 공통점이 한 가지 있으니, 바로 성평등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국의 주류 이데올로기는 여권주의적이다. 왜냐하면 성평등이 중국의 국가정책이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의미에서 중국 여성 절대다수가 여권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중국 남성 절대다수 역시 여권주의자이다. 이 점을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5.4운동 이후 바로 남성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서구 여권주의 사상을 중 국으로 들여오고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대변인이 되었다.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이후, 성평등은 줄곧 주류 이데올로기로 인정과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p20-21 분명 중국에서는 1950년대에 성인 여성들이 가정에서 나와 사회 생산 활동에 참가하도록 독려한 이후 '성별을 구분하지 않기'가 풍조가 되었다. 그것은 현실에서 불평등한 여남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도전이자 남존여비라는 전통 관념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이러한 풍조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최고조에 이르렀다.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일을 해야 했으며, 알게 모르게 양성의 생리적이고 심리적인 차이까지 감추어질 정도였다. 그 시대에 스스로 '남성적 기질'이 있다고 여기거나 남성들에 의해 '남성적 기질'이 있다고 여겨지는 여성들이 만들어졌다. 당시에 여성들은 자신의 여성적 특징을 감추려고 했다. 여성적 특징을 드러내고 싶은 생각은 시대에 뒤떨어진 낙후한 발상이라고 여겨 부끄러움을 느꼈다. 몇십 년간 잠자고 있던 여성들의 젠더 의식이 1980년대 이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여성들이 다시 옷과 화장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점이다.


p53 여성운동이 미녀 선발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여성을 낮게 평가하고 여성을 영혼 없는 성적 대상으로 바꾸어 놓는다고 여기기때문이다. 또 여성운동 지지자들이 미녀 선발을 반대하는 것은 여성이 따라야 하는 규칙과 여성 신체 기준을 배척하기 위해서이다


p58 그들은 두 오르가슴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우세하고 더 성숙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여성이 다양한 경로로 성적 쾌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p73 마지막으로 외국 남자가 중국 여성과 성관계를 했다고 그를 공격하는 것은 애국주의가 아니다. 이는 외국 여성을 범한 중국 남자를 추켜세우는 것이 애국주의가 아닌 것과 같다


p77-78 어떤 여성들은 작은 새가 되기를 원하지만 또 어떤 여성들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어떤 여성들은 담쟁이가 되기를 원하지만 또 어떤 여성들은 나무가 되기를 원한다.

 나는 여성들이 이미 송대나 청대 여인들과 달리 각양각색의 다양한 모습으로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 역시 '여성다움'이라 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성다움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 정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p81 우리는 우선 소위 남성적 기질과 여성적 기질이 완전히 문화와 사회가 만들어 낸 산물임을 인식해야 한다. 설사 고정관념이 가리키는 것과 같은 차이가 여성과 남성에게 분명히 존재한다고 해도, 그 차이 역시 사회가 만들어 낸 것이지 여성과 남성의 해부생리학적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남성적 기질과 여성적 기질의 구분이 전통적인 젠더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임을 알아야 한다.


p134 폴리아모리를 언급할 때 남권 사회의 일부다처제와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과거 중국의 일부다처제 혹은 처첩 제도에서는 구식 이혼의 빌미가 된 '칠거지악' 중에 심지어 질투 항목이 있어 본부인이 작은 부인을 투기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첩들 사이에도 투기를 금지했다. 이를 어기면 '내쫓김'을 당했다. 폴리아모리와 마찬가지로 질투하지 않는 것을 강조했지만, 투기하지 말것을 여자 에게만 요구했다. 이러한 이중 잣대는 남존여비의 논리를 담고 있 어 아주 혐오스럽다. 폴리아모리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서로 질투하지 않는다. 두 남자와 한 여자 혹은 두 여자와 한 남자, 혹은 두 남자와 두 여자 사이에서 당사자간 모든 관계는 평등하고 자유롭고 독립적이다. 이것을 어떻게 일부다처제와 비교할 수 있을까? 일부다처제가 따라갈 수나 있을까?


p158-159 퀴어 이론은 특정한 이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학제 간 구분을 을 넘어서는 종합 이론이다. 이 이론은 역사학, 사회학, 문학 등 여러 학문에서 유래했다. 퀴어 이론은 주류문화에서 나온 입장이지만,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주류문화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찾을 수 없고 또 자신들의 위치를 찾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퀴어‘는 특정 사회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성적 지향성이 주류문화와 지배적인 사회 젠더 규범 혹은 성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퀴어 이론은 그런 사람들의 이론이다. '퀴어'라는 개념은 문화에서 모든 비정상적 상태를 표현하는 방식을 가리킨 다. 동성애 그리고 양성애가 이 범주에 포함되며, 그 외 잠재되고 분류되지 않은 비정상적 상태 역시 포함된다.


p160 퀴어 정치는 과거에 어 떤 젠더 정체성, 성적 지향 혹은 성적 활동을 했든지 간에 새로운 정치를 인정하는 모든 사람을 받아들인다. 엄격히 말해서 동성애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주변화할 수 있으면 퀴어가 될 수 있다.


p168 종종사람들이 내게 "중국이 언제 동성결혼 법안을 비준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그 시간표를 분명하게 말하기는 정말 어렵다. 19세기에 중국의 대문이 세계를 향해 개방된 이후 어떤 면 에서는 빠르게 발전했고 어떤 면에서는 느리게 발전했다. 주로 경제 방면에서 발전이 빠르고 의식 방면에서는 더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물질적인 면에서 발전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물질 적 발전은 한 걸음씩 쫓아가고 조금씩 축적해 나가야만 한다. 하지만 의식적인 면에서의 발전은 그렇게 힘들이지 않아도 된다. 기존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아주 쉽게 세계적인 조류를 따라잡을 수 있 다. 예를 들어 동성결혼 법안의 통과는 중국에서 농민의 빈곤 문제 를 해결하는 것에 비해 정말 쉬운 일이다. 우리는 앞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낮은 원가로, 어쩌면 거의 자본금 없이도 사회적 이익이 엄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p173 중국 고대 동성애 문화에는 다행히 미국과 같은 역사적 짐이 없기에 동성애 문제에서는 선천적인 조건이 특별히 훌륭하다고 말 할 수 있다. 만일 중국이 지금의 선진국들보다 낙후되었다고 생각 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경직된 사유와 느린 반응 때문이다. 중국이 일단 동성결혼을 인정한 국가의 대열에 합류하기만 하면 국제적 위상은 반드시 크게 오르는데 무엇 때문에 하지 않으려 하는가?


p175 나는 전통문화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생각이 헌법 정신을 위반하지 않는지' 숙고해 보기를 희망한다.


p188 차별 금지법이 있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공개적 차별 행위가 법률적으로 추궁받는다. 그럼으로써 재범을 막을 수 있다. 현재 중국에는 이러한 차별금지법이 없다. 또 이렇게 전형적인 차 별 사건이 다시 발생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다. 소수집단의 이익 역시 보장받을 수 없다.


p239 나는 하룻밤의 정사, 파트너 교환, 동성애, 사도마조히즘 그리고 폴리아모리를 권한 적 없다. 하지만 소수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을 할 권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p328 인류의 성행위는 어떤 형식을 취하든 어떤 대상과 함께하든 잘못이 아니다(혼외 성관계는 혼약을 위반한 잘못이기에 제외하고). 다만 어떤 성행위는 비교적 위험하고, 어떤 성행위는 비교적 안전할 따름이다. 전자는 보호 조치가 없는 성행위, 과거 성경험을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과의 성행위, 체액을 교환하는 성행위 등이다. 후자는 보호 조치를 한 성행위, 오랜 동반자와의 성행위, 체액을 교환하지 않는 성행위 등이다. 요컨대, 사람들에게는 위험성이 있 는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그것이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없기는 하지만, 병에 감염되고 싶지 않다면 안전한 성행위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다.


p346 다음으로, 옷의 노출 여부는 상대적이고 변화하는 개념이다. 어떻게 입어야 '노출'인지 절대적 기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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