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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Oct 21. 2023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앨리슨 케이퍼_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앨리슨 케이퍼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를 읽었다. 같이 읽은 친구는 너무 좋다며 모임하기 전 아침에 메시지를 보내두기도 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들어가는 글을 읽는데 너무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여러 사람이 생각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책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 물론 쉽게 읽지 못했지만(안했지만). 그럼에도 좋은 건... 좋은 걸! 이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임에서 같이 읽어서 그것도 너무 좋았는데, 오랜만에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책을 같이 공부하는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누군가와 같이 나누며 배우고 싶다는 생각, 그런.


앨리슨 케이퍼는 장애의 의료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의 한계를 비판하며 장애를 정치적·관계적으로 분석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제안한다. (장애뿐 아니라 손상도 사회적이라는 것과 장애를 의료적 모델로만 이해하는 것은 문제이나, 장애를 둘러싼 우리들/우리의 삶에서 덜 아프고 싶고, 덜 고통스러운, 그러니까 치유나 회복에 대한 욕망 자체가 틀리다고 할 순 없기 때문에.) 이 책은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을 횡단하며 장애학, 그러니까 ‘불구학’에 대해 제시/제안하는데, 그간 익숙했던 장애의 사회적 모델로서의 이해 속에서는 만성 질환, 만성 통증, 만성 피로를 겪는 이들을 장애의 범주 바깥으로 생각하기 쉬울 수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만성 질환자인 나는 일면 놀라기도 하고, 그보다 더 많은 부분 위로받았다. 내가 가진 병, 수술 경험, 만성 질환들이 어떻게 돌봄 그리고 ‘다른’ 시간의 삶과 연동되게 되었는가에 대해 이 책이 장애를 다르게 사유하는 것과 잇는 시간이 되어 반가웠고, 고마웠다. (‘장애학과 장애 운동은 모두 목소리가 들리는 사람들, 면역 체계가 손상된 사람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잠재적 연관성을 인식하는 데 소홀했다. 주목할 만한 예외가 있긴 했으나 장애학, 특히 인문학 분야에 서는 주로 눈에 띄는 신체적 손상, 감각적 손상에 집중하고, 인 지장애에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만성질환은 이들 논의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오직 특정한 형태로만 다루어져왔다.’ p50)


‘만성질환 연구자들은 자신의 증상에 대해 '적절한' (즉, 의학적으로 통용되거나 의사가 제공하거나 보험사에서 승인한) 진단명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장애 공동체 내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 필요한 사회적 지원(사회복지 서비스 접근에서부터 친구와 가족의 인정에 이르는 모든 것)을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애를 진단 범주로 나타내기보다 집합적 결연으로 나타낼 수도 있다. 이 때 의료적/개별적 장애 모델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장애의 정체 화를 오로지 진단명과 연결 짓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p52) 들어가는 글부터 1장으로 쭉 이어지는 글을 읽으면서 최근 HIV/AIDS 감염인 법정 장애 인정 투쟁이 많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게 말이 안 된다가 아니라 그 방법이어야 하는 한국의 실정에 대한 고민이랄까. 그리고 그때에 어떤 언어로서 정치적 설명 내지 설득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한 다리 건너 운동을 바라보며 내가 가진 어떤 부족이나 멈칫거림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만나게 되어서 조금 더 언어를 정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결 되서 최근 장애해방학교에서 ‘매드 정체성’에 대해서 들으면서 감염인 지원 운동 단위가 더 잘 이해할 것 같기도 했었다. &이 책과 그 책의 합동 북토크가 스미듯 이해가 되기도.


앨리슨 케이퍼는 이 책에서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을 던지고,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곳을 찾아가보게 한다. 그의 이런 작업이 중요한 것은 모든 억압은 그도 그리고 오드리 로드도 말했듯 언제나 늘 공존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별과 억압의 범주들은 개별로 존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고 별개의 것이라 여겼던 것들과 엮어있고 서로에 의해서도 구성되기 때문이다. 앨리슨 케이퍼는 장애를 주장하는 것에서 제기된 인식론 적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면, 불구라고 주장하는 데서 제기되는 다른 질문이 드러난다고 했다. 그래서 넓혀지고 어떤 의미에선 아예 달라진, 확장된 ‘장애인 우리’가 가능, 그러니까 확장된 장애운동이 가능하다고, 가능하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는 페미니즘 인식론이 아주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페미니즘 이론을 읽기 전에 장애인이 되었지만, 나를 장애학으로 이끈 건 페미니즘 이론이었다. 내가 장애를 개별적 병리나 개인적 비극이 아닌 정치적 범주로 이해하게 된 것은 몸을 다루는 페미니즘 이론의 접근법을 접하면서부터였다. 페미니즘 이론은 내게 장애, 장애 있는 몸에 대한 가정이 어떻게 자원의 불평등과 사회적 차별을 유발하는지 사유할 수 있는 도구를 마련해주었다,’ p56) 또한, 그는 퀴어의 시간성, ‘구부러진 일직선’을 통해 질병과 장애의 시간을 다르게 그러니까 ‘퀴어하게’ 사유한다. (“시간의 관절이 어긋나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1장에서 장애와 질병을 시간의 틀로 설명하는 데선 정말 무릎 팍! 시간이기도 했다. ‘마거릿 프라이스의 설명처럼 불구의 시간을 지지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다양한 간격으로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 하고, 그에 따라 [행사를] 기획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사람들이] 다양한 속도로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대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이 (단 지 '추가적인' 시간이 아닌) 유연성의 개념이 뜻하는 바다. 불구의 시간은 단순히 연장되는 시간이 아니라, 폭발해버리는 유연한 시간이다.’(p85)


평소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고민이나 불편했던 것들 포함하여 더해서 생각 못한 ‘불구’의 관점, 같이 대안을 만드는 작업 등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해 너무 많이 배우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는 환경 정치, 장애 정치, 젠더 정치를 함께 혼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런 종류의 기획은 상실, 한계, 불능, 실패를 감안해야 한다. 나는 한계와 좌절, 심지어 실패를 시인하고, 그 실패를 이론의 밑바탕으로 인정하는 이야기를 정말로 듣고 싶다.’(p353)와 같이 이 책에서 짚는 다양한 영역/운동/실천/연대에서 그렇다. 그렇다는 것을 물씬 느끼고 공감한다. 그 실패가 두려울 수 있지만(당연히 두렵지만!), 실패로부터 오는 이어지고, 꿰매어지고, 엮어지는 것들이 우리에겐 분명히 있으니까. &마지막 화장실 이야기는 정말 수 년 전부터 생각했던 것과 연결 되어 혼자서 마구 기쁘고 즐거웠다. (‘먼트가 제안하듯, 장애인 화장실이 "괴리된 사람들, 젠더를 허무는 사람들, 이상한 사람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공간"이라면, 우리는 장애인 화장실의 잠재적 개방성을 연합의 밑바탕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p387)


이 책을 읽고 만난 모임에서 버니스 존슨 레이건이 이렇게 말했대, 근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했던 것. ‘차이를 횡단해 연합을 형성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두렵다’는 문장에 너무 공감하듯 두려운 것들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말하고 싶고 건네고 싶은 것은 나에게 건네고 싶음이기도 하다. “차이를 횡단해 연합을 횡단하는 것은 두렵지만, 필요하다”고. (너무 좋은 책을 만나서 정말 너무너무 기쁘고 좋다)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앨리슨 케이퍼 지음, 이명훈 옮김, 오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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