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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Oct 23. 2023

그여자가방이들어가신다

홈리스행동생애사기록팀_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거리, 쪽방, 화장실 등 ‘비적정’ 주거 형태로 사는 여성 홈리스들의 인터뷰와 그들이 직접 쓴 글이 담긴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이 책 속 누군가는 주민등록증이 없다. 화장실에서 살아간다. 목소리들과 살아간다. 합판으로 얇은 벽과 함께 산다. 누군가에겐 쓰레기로 치부될 것들이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차지한다. 폭력을 피해 나와 만난 거리에서 폭력을 경험하기도 하고 폭력을 행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돌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돌봄을 받기도 한다. 멋대로 판단받기도 한다.


여성 홈리스의 모습은 내게 (잘) 없었다. 김혜진 작가의 소설을 읽은 이후 동대구역사를 지나면서 여성 홈리스를 보곤 한다. 우리는 ‘만난다’고 할 수 없다. 만남을 갖고 관계를 갖는 게 아니니까 나는 그를 만난다고 쓸 수 없다. 언젠가 ‘시민’들을 위해 그들을 치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시민에서 이미 배제되어 있었다. 그럼 그들은 누굴까. 시민은 누굴까. 나는 사실 종종 나의 불안의 미래가 ‘비적정 주거’형태로, 너무나 아픈 몸으로, 고립으로 그려질지고 모른다고 생각한다. 닥치지 않은 미래가 불안하게끔 한국사회 가난한 비혼 여성의 삶은 희뿌연 안개 속 같으니까. 여자들은 결혼을 했건 안 했건, ‘집’이라고 부를 것이 있든 없든 폭력에서 자유롭기 어려웠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지금의 나일 수 없는 완전한 타인의 이야기이면서 별개로 떨어질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할 테다.


이 책에 담긴 가난한 여자들, 미쳐버린 여자들, 화가 난 여자들, 아픈 여자들의 목소리는 없는 것처럼 존재해왔다. 있으나 없는 자가 되기 쉬웠던 ‘그 여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손에 잡히지 않는 ‘안전’에 대해 생각한다. 속이 쓰리다.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홈리스행동생애사 기록팀 기획, 김진희•박소영•오규상•이재임•최현숙•홍수경•홍혜은 지음, 후마니타스


p17 근데 신고가 많이 들어와요. 화장실에 가방 같은 거 있으면 지저분하다고 구청으로 민원이 들어온단 말이에요. 그분도 짐이 가방 큰 걸로 네다섯 개 쌓여 있잖아요. 민원이 들어오면 답변을 해야 되거든. 그치만 그분 건 우리가 웬만하면 안 치우지. 짐 좀 잠깐 치워 달라 하고 깨끗한 화장실 사진만 찍어 놓고 다시 짐 넣으라 하면 되니까요. 우리 기간제들 일 시키는 반장이 공무직인데, 그 사람도 그 아주머니 편의를 봐주더라고. 그 아주머니는 자기 일도 아닌데 화장실 지저분하면 청소도 하고 그러잖아요. 인심을 얻을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이 나쁘게 안 보지.


p18 근데 의외인 게요, 그 사람들이 저항을 안 하더라고요. 나는 크게 저항할 줄 알았거든요. 사실 치우지 말라고 집단적으로 완강하게 저항하면 우리도 할 명분이 없어요. 철거는 마음대로 못 하는 거예요. 절차대로라면 신고가 들어왔다 그러면 짐을 일단 보관소에 치워 놓고 주인이 연락하면 돌려주거든요. 근데 올봄에는 압축차를 가져와서 바로 버려 버렸어. 원래 그렇게는 안 했거든요. 이상하더라고

 나중에 보니까 그 위가 호텔이잖아요. 박스집이니 텐트가 있던 곳이 호텔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보이는 곳이었거든요. 그 호텔에서 자꾸 뭐라 뭐라 민원이 들어왔다 그러더라고, 공원 지나가는 행인이 신고하는 경우는 적죠, 아무튼 시키는 걸 우리가 어떡해요.


p21 봐요, 서울역 같으면요, 남자가 여자랑 같이 다니면서 여자를 되게 무시해요. 술을 먹고 막 욕도 하고요. 근데 여기는 그게 없어요. 청소하고 공원 관리하는 구청 직원들이 아침 되면 커피 한잔씩 주고 음료수도 줘요. 가끔 2000원, 3000원도 주고 그래요. 왜냐면 사정을 아니까요.


p22 여기 가게도 있고 식당도 있고 하니까 낮에는 괜찮지만 밤에는 무서워요. 가게 문 닫고 사람 없고 여기 나 혼자 있으면 진짜 잠이 안 와. 화장실 문을 잠그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근데 갈 데가 없잖아요. 여기 말고 아주 낯선 곳에, 남자들만 있는 데 가서 잘 순 없잖아요. 이 노숙 생활은 전부 다 남자예요. 여자 몇 안 돼요. 여자는 안 보여요. 그나마 안면이 많이 새겨진 아저씨들이 있으면 같이 지하도 입구에서 자기도 하고 그러지. 아무 데나 가서 잘 수가 없어요. 서울역에 밥 주는 봉사단 올 때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다 남자예요. 수십 명 수백 명이 된다고 해도 다 남자지 여자는 없어요. 여자들이 껴봐야 하나둘이에요. 온 지 며칠 안 되는 사람이 줄 서있다가 차례가 와서 밥을 딱 받잖아요? 그러면 자기네들이 가져가요. 또 받으면 자기네들이 가져가서 먹고 그래요.


p40 근데 이틀을 기다려도 안 와. 한 번도 다시 온 적 없어. 그러고 마는 거야. 내가 번번이 가서 결과를 물으면 거기는 씨씨티비가 없는 곳이라거나 안 보이는 곳이라고 해. 뭐 없어질 때마다 찾아갔거든. 카메라가 사람한테 가려져서 안 보인다는 둥 거기서 이야기해서 된 일이 없어. 삐까뻔쩍한 사람이 가방 없어졌다고 신고하면 “기다려 주십시오” 이러면서 연락하고 찾아주겠지. 나는 길바닥에서 먹고 자는 사람이니까 한마디로 무시하는 거야.


p59 사람들이 쓰레기 취급하는 짐가방에는 경숙이 폐지를 팔아 모든 돈으로 산 먹을 것, 입을 것, 덮을 것이 들어 있었다. 경숙에게 짐은 쓰레기가 아닌 삶의 일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p96 여성 홈리스가 밥 먹으러 줄 서면, 남자들이 이상한 말을 해요. "식당 가서 일하고 밥을 먹지" 그래. 지네도 와서 먹으면서. 그런 게 한두 번이 아니야. 밥 먹는 것도 약 타는 것도 여자들이 많아서 늦는다는 거야. 그렇게 괜히 여자들을 쫘대요, 오지 말라고. 나는 면역이 돼서 그러거나 말거나 가서 줄을 서는데, 진짜 얼굴 두껍지 않으면 그거 줄 서서 먹기 힘들어요. 그러니까 급식하는 데도 피하고 화장실에 가는 거예요. 또 남자들은 아무 데나 막 눕잖아요. 근데 여자들은 누울 데가 없고 하니까 그런 데 가죠.

 여성 홈리스가 적다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아닌 것처럼 하고 있고, 안 보이는 데 가있고 그래서 그런 거예요. 화장실 안에도 바깥에도 사람이 있어요.


p149-150 그녀의 홈리스 생애 동안 성폭력은 일상다반사였고 합의금으로 자전거를 산 것과 도둑맞은 것 또한 그녀에게는 그저 그런 다반사 중 하나였다.

 영주에게 섹슈얼리티는 좀 나은 잠자리와 한 끼를 얻기 위한 협상 수단이기도 했다.


p245 김진희의 삶에 대해 말할 때 '싱글맘'이라는 가족 형태에 대한 정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홈리스'라는 주거 상실 상태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녀가 겪은 가족해체와 소위 '생계 부양자'와의 단절은 많은 여성 홈리스가 통과하는 노숙의 진입 경로이기도 하다. 남성 홈리스의 노숙은 실직 등 경제적 요인, 여성 홈리스의 노숙은 가족해체 등 비경제적 요인으로 축약되곤 하지만, 자녀와 함께한 김진희의 홈리스 분투기는 '경제'와 '비경제'의 경계를 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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