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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Oct 29. 2023

파견자들

김초엽_파견자들


김초엽 작가 소설을 좋아한다. <지구 끝의 온실>은 읽을 즈음 보았던 <이터널스>가 사회운동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유난히 좋게 남아있다. 그런 김초엽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 단편보다 장편을 선호한다, 생각하는 나에게 너무 좋을 긴 장편이! (400페이지가 넘음) 오랜만에 차방책방에 가서 책을 사면서 “우와 두꺼운데요.”했는데, 읽은 사람들 후기가 다 좋았다고 해서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던 <파견자들>은 다른 책도 골고루 읽어야 하는데, 이게 너무 재밌다~ 하면서 진도가 쭉쭉 나갔다. 텍스트이고 SF 특유의 설정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면서도 영상 이미지를 보는 것 같은 리듬감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지브리의 새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면서도 <파견자들>이 생각났다. 이 책은 자스완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이 오직 자기 자신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뻗어간 이야기이다. 인간은 차지하며 살아가던 지상을 범람체로부터 빼앗기고 지하 세계에서 살아가는데, 소설 속 어느 부분에서 나오듯 사실 처음부터 범람체의 공간이었던 것인 지상과 지하에서 적대시되어 살아가던 범람체와 인간들이 나오는 이 책의 마지막은 경계지역이 형성되며 새로운 장이 열린다. 책은 끝났지만, 책 속 이야기는 어쩌면 이제 시작인 것이다. 지하 세계에서 인간들은 범람체에 노출되어 자아가 해체된 광증 발현자, 이른바 ‘미친’사람들을 ‘처리’하는데, 특정 범람체들의 공간과 인간이 인간인 채로 그러나 범람체와 결합인, 범람체와 유기체가 되었으나 인간이지 않은 존재로서 살아가는 지상의 늪인들과 태린이나 선오와 같은 이들이 연결되면서 새로운 삶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지상과 지하의 분열이나 적대시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전과는 달라졌다. 공존하는 공간이 생겼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그 균형은 완전하지도 온전하지도 않다. 불균형하고 불완전한 삶의 형태는 불확실성 그 자체이지만, “불균형과 불완전함이 삶의 원리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럼에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것,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만이 가능한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소설 속 문장에 강하게 긍정한다. 특히나, 인간의 사회 체계 구조와 달리 범람체는 누군가 통제하지 않고 위계 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늪의 범람체들은 다른 지역의 범람체들을 하나하나 설득한다.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고, 우리가 그렇게 공존하자고. 어쩐지 그 장면을 만나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 그 질서와 규칙을 만들고 해올 수 있는 인간이 만들어 온 지금 세계는 어떤가. 그게 이 책을 읽으며,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며 연결되던 감각이었다. 하나의 세계가 망가졌다면, 그 망가진 후라고 할만한, 그러나 시간은 멈춤 없으니 언제나 ‘지금’일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당신의 ‘지금-여기’는 결코 당신 혼자일 수 없다. “가족, 친구, 지인 등 어떤 관계로든”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모든 공간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물질들과 직간접적으로 얽혀있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상을 다녀온 지하 세계에서 살아가던 이가 자스완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지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 있냐고 물었을 때, 자스완이 미소 지으며 대답한 답변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야 당신이 오직 당신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환상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파견자들>, 김초엽 장편소설, 퍼블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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