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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Nov 03. 2023

2023대구여성영화제

<개미와 베짱이>, <씨네필>

<개미와 베짱이>

영화 <개미와 베짱이>는 아프리카 말라위의 한 마을의 주민들이 나온다. 기후 변화로 인해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체감을 하는, 그리고 그곳의 성별불균형을 깨닫고 동등한 파트너와의 관계를 위해 마을에서 친구, 주민들, 아이들에게 젠더적 관점에서 생활운동을 하는 아니타와 그리고 그에게 그런 영향을 만들어준 에스더, 마을 사람들이 나온다. 영화는 아니타와 에스더가 기후 위기의 주된 이유들을 만들고 있는 미국으로 향하는 여정을 담고 있는데, 영화를 보면서, 보고나니 왜 여성영화제에서 첫 영화로 했는지에 대해서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었고,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좀 많이 울었는데,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주되게 인종, 젠더, 빈부의 문제들이 서로 너무나 밀접하게 얽어있고 교차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면서 그것의 기쁨보다는 아니타와 에스더가 만난 미국의 뭐랄까.. ‘선량한’ 농부들과의 만남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복잡해지고, 또 이 영화를 보는 한국의 지금 이 편안한 좌석의 영화관의 나를 생각하면서 정말 마음이 너무 소란스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그런 마음이이어서 눈물이 자꾸만 났다. 말라위의 문제가 왜 나의 문제와 연결되는지는, 미국의 농부들처럼 일상에서 언뜻 상관성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그들 역시 기업에 맞서거나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이 아닌 ‘건강한’ 선택으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에서 흑인 공동체의 자급자족/공동체들에 대해서 보면서는 다른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이 젠더와 인종과 빈부 등과 어떻게 엮어지면서 퀴어페미니즘 의제인지 생각하게 되는 지점은 나에게는 나의 일상과 연결되는 지점이었다. 또한 아니타를 보면서 돌봄, 공존, 공생, 환대, 용기, 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고. 아니타는 에스더란 좋은 조력자를 만났는데 그 양분을 잘 이어서 아니타라는 운동가, 아니타라는 치열한 사람이 마을을 더 나은/좋은 공간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게 했다. 그들의 마을에서 진행하는 방식은 어쩌면 내가/우리가 하는 소위 ‘운동’의 방식과는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영화 속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다. 납치결혼으로 원치 않는 결혼, 폭력으로 시작한 아니타는 그런 가해자였던 남편과 지금 존중을 나누고 가치를 나누는 파트너가 되었는데, 이 역시 생각해볼 지점이 많았다. 책 <용서의 나라>가 생각나기도 하고, 폭력과 치유 회복, 가해와 피해의 변화와 회복에 대해서 단일한 방식이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안이 제시되지 못할 때에도 어떤 식으로 가능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니타가 그저 피해를 참고 침묵해서가 아니다. 아니타가 직면하고 바꿔가는 행위를 선택해서이다. (아니타는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지금 서로 운동의 파트너로서 인식하더라도 남편의 폭력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다. 그런 일이 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답’이라 말할 수 없고 걸림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없겠지만, <개미와 베짱이>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기획토크를 들으며 자칫 미끄러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하나’가 되기를 목표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들이 어떻게 상호연결되고 상호쟁점이 되는지 고민하는 교차성, 횡단의 정치가 필요하다. 사실 다 만나는거 같은데 너무 구분짓고 분리하는 것 같아, 라는 고민이 들 때가 물론 많겠지만 각각의 영역에선 집중하는 이유들과 서사가 있기에 그것을 어떻게 하면 이해하면서 우리가 섞이기도 하고, 각자의 자리에서도 횡단하며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의 중요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사실 현실 정치/운동에서 이건 너무 어렵기에...) & 다양한 방식의 일상 운동에 대해서도!


<씨네필>

2023대구여성영화제 개막작이 <씨네필>이었는데, 첫 날 상영한 두 개의 영화와는 색채가 다른 영화였다. 은퇴한 노년 여성들과 영화에 대해 다룬 영화였는데, 그들은 (거의) 매일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 좋아하는 영화나 별로인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좋아하는 영화나 배우에 대해서 주저 없이 쭉 이야기하는 모습들, 영화제 시간표를 공부하며 계획을 세워 영화제를 가는 모습, 매일 영화관에 가는 모습, 영화를 추천하는 모습, 카페에 모여 책모임을 하고 토론을 하는 모습들. 이 모든 것이 영화에서 모두 노년의 사람들이 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게 익숙하진 않아서 생경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당장 우리 엄마의 중년과 노년의 삶은 저 영화 속 사람들과 너무 다르니까 엄마에게 적용하기 어려웠기도 했지만, 나는 어떨까? 이런 생각들... 지금의 나에겐 저들의 모습과 비슷하거나 공감하거나 혹은 저들의 열정에 깜짝 놀라거나.. 그런데 나의 이후는 어떨까. 그럴 수 있을까. 영화를 같이 본 사람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때, 옆에 있던 이가 지금의 친구들과 계속 만나며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그때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말을 했는데 그게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영화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 즐길 수 있고, 외로워질 수 있는 선언의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나라는 사람에게는 씨네필은 다른 고민을 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인생에 고독은 뗄 수 없는 것이라면 고독의 인생을 어떻게 잘 감당하며 살아갈까- 가 내가 혼자인 나로서 어떻게 오롯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거라면, 거기에 나는 뗄 수 없는 것, 그 고독의 인생에 중간 중간 어떤 이들을 삶에 초대하여 환대하고 다정을 나누며 살아갈까? 같은. 우리가 무사히 할머니가/노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부디-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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