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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Dec 12. 2023

부끄러움을 견디며 읽는 책

홍은전_나는 동물

“장애인운동은 나 혼자 장애를 극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을 주었어요." 이 문장은 십년이 이젠 훌쩍 지난 어느 날을 생각하게 했다. 가난을 내 탓이라 여기며 짓눌린 채 극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가슴에 담게 됐던,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던 그때 나의 곁에서 그 이야기를 다정하게 건네주고 내 울음을 지켜봐준 이들은 장애(인)운동을 하고,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견고한, 깨지지 않은 나의 인간중심주의를 계속해서 발견하고 확인하면서 글을 읽었다. 친구가 이 책은 언제 다 읽니?라고 했을 때, 쉽지 않아 그럴 수 없어ㅡ 라고 말했던 것은 그런 이유. 장애인 운동에 대해 내 마음에 걸리는 이물질이 없다. 나의 이물질을 바라보는 일. 비거니즘-동물권을 이야기하며 횡단하고자 하는 이들과 같은 세상에 살아가면서 완벽하지도 온전하지도 않아 무심과 무감각을 만들고 있는, 내가 만들고 있는 세계를 계속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조리 다 놓아버리거나 모르는 척 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며, 그것보단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의 투쟁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때론 연이어 쓰인 글을 읽으며 경계에 대해 생각했다. 경계를 만든 인간들, 나에 대해서. 그 일은 용기에 관해 이어지곤 한다. 나는 홍은전 책은, 그의 책을 부끄러움을 견디며 읽는다.


<나는 동물>, 홍은전, 봄날의 책


p9-10 나는 동물이 되었다. 곰이 인간이 됐다는 것만큼 황당한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지루할 만큼 사실인 그것을 비로소 자각한

'인간 동물'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것은 인간의 확장이 아니라 인간밖에 모르던 세계의 무너짐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고 죽이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고 믿었던 세계가 무너짐으로써, 나의 세계는 빛의 속도로 확장되었다. 이전에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던 목소리들이 쓰나미처럼 나를 덮쳐 왔다.


p26-27 이제 나는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개와 돼지들이 어떻게 살고 살해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그들의 편에 서지는 못할 것 같다. 장애인이 어떻게 살고 죽는지 잘 알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를 정말로 어렵게 하는 건 내가 비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한 번도 '짐승 취급' 당해 본 적 없는, 인간임을 입증하기 위해 이번 생을 다 쓰지 않아도 되는 이미 충분한 인간 말이다.

 그의 문제 제기는 옳았지만 나는 그를 옹호할 수 없다. 동시에 나는 우리를 옹호하면서도 우리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나는 둘 모두를 옹호하는 법을 찾고 싶다. '장애인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는 인간들과 '인간도 동물이다'라고 외치는 동물들의 사이는 내가 경험한 가장 가깝고도 먼 거리다.


p39-40 그리고 격리 해제. 혜경 씨는 썼다.

 “나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이 만들어낸 이 독특한 이중 격리의 공간에 14일간 갇혀 있다 해방된 그의 마음속에 작은 감옥이 생겼다. 그 안엔 집에 가고 싶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 자식들이 사는 곳 근처에 집을 얻어 살고 싶다는 사람, 직접 만든 비누를 서랍에 고이 넣어 두고는 가족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창살에 머리 를 끼우고 울부짖는 사람, 열리지 않는 문을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 갇혀 있다. 자신이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으나 실은 '억압'하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는 처음으 로 돌아간다. 코호트 격리 명령이 통보되자마자 직원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던 그 말.

 “우리에겐 인권이 없나."

 자연스럽게 이 말은 기약 없이 격리당한 이들의 목소리로 변한다. 혜경 씨는 다음엔 자신도 창살을 들고 탈시설을 외칠 거라며 자신 같은 이들이 탈시설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p42 중증 장애인으로 살며 싸운다는 것에 대해 박명애처럼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느 날 집회에서 그는 말했다.

 “우리는 밥을 많이 먹으면 화장실을 많이 갈까 봐 마음 을 졸입니다. 서울에 투쟁하러 올 때면 며칠 전부터 물도 적게 먹고 밥도 적게 먹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찌나 물도 더 먹고 싶고 밥도 더 먹고 싶어지는지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조금 숙연해졌다. 다른 몸을 가진 동지들이 그런 투쟁을 하고 있다는 걸 짐작해본 적도 없었다.


p45 “너무너무 좋았어요. 지금도 야학 이야기만 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그가 ‘너무너무'를 남발했다. 스무 살 남짓한 교사들이 서투른 솜씨로 매일 해주는 밥도 너무 맛있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 알았던 자신이 손이 불편한 누군가에게 밥을 떠먹여 줄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았다. 바람에 머리가 날리는 것도 너무 좋았고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나가는 것도 너무 좋았다.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건 일상이 열렸다는 뜻이고 그건 다름 아닌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일인지도 모른다. 억울한 것도 모르고 살았던 지난 삶이 얼마나 억울한지 명애가 가슴을 치며 증언할 때 무대 위의 그도 울고 무대 아래 사람들도 함께 울었다.


p46 자기 고통의 주체가 되어야만 기쁨도 희열도 선명하게 움켜쥘 수 있다고 명애의 삶이 말하는 것 같다. 그는 더 이상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러 가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더 많은 일상을 원한다"라고 외치며 아스팔트 바닥을 맨몸으로 기어가는 투쟁을 벌이고 노숙을 하고 밥을 굶고 오줌을 참는다.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짐작과 다르고 짐작보다 더 복잡하고 미묘해서 고유하게 근사하다.


p53 한 방에 4~5명씩 촘촘히 살던 시절엔 모든 방의 문을 항상 열어두었다고 직원이 설명했다. 그래야 관리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욕실 문도, 화장실 문도 마찬가지였다. 문이 잠겨 있어서 감옥인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어떤 문도 잠글 수 없어서 감옥 같았다


p56 하지만 믿어지지 않는 말을 진지하게 자꾸자꾸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믿고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믿기지 않는 세상에 살게 된다는 걸 나는 믿는다.

 “탈시설 지원법을 제정하라."

 믿어지지 않는 말을 외치려면 나에게도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내 함께 싸워가겠다.


p60 아무도 이기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면 내가 좀 근사해 보이는데 실은 그 반대였다.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다. 질 것이 분명한 싸움이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과 싸우는 일을 그만하고 싶었다. 싸워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를 억압하는 세상이라고, 노들이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p61 장애인운동이란 이 세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목소리이자 이 사회의 설계를 완전히 바꾸는 운동이다. 버스를 점거하고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뛰어든 그들은 내 인생도 아름답게 망쳐놓았고, 그것이 나를 구원했다.


p65 어떤 인간도 '짐승처럼' 살게 해서는 안 된다며 떠나온 그 자리에 인간은 '짐승들'을 남겨 두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역사상 유례없는 학살이 자행 되었다. 거대한 학살보다 끔찍한 것은 거대한 출생이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이 불의와 폭력이 그들의 숫자만큼 태어난다.


p74-75 “나는 영랑호가 너무너무 좋습니다."

 등산 모자를 쓴 중년의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너무 사랑스러워서 슬며시 웃음이 났다. 그 말을 흘려 보내지 않으려고 끄덕이던 고개를 멈추고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진지하고 무거운 표정이었다. 너무 좋다는 말은 너무 무섭다는 말처럼 들렸다. 가슴이 조금 시렸다. 책 《밀양을 살다》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나는 이 산이 진짜 좋아예."

 그 좋은 것을 지키기 위해 등이 둥그렇게 굽은 할매, 할배들이 맞서야 하는 것은 높이 100미터가 넘는 초고압 송전탑이었다. 무엇을 반대하는지를 아는 것과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를 아는 것은 매우 다른 경험이란 걸 그때 알았다


p90-91 “나는 낮달 같은 존재였어요. 사람들은 내가 거기 있는 줄도 몰랐죠."

 놀랍게도 영희는 자라서 장애여성단체를 만들었고, 진보 정당의 정치인이 되었으며 중증 장애인이 주체가 되는 사회변혁운동의 대표가 되었다. 영희는 너무 일찍 온 존재여서 가는 곳마다 벽이거나 벼랑이었지만 살아갈 방법도 죽을 방법도 없는 그곳에서 줄곧 맨 앞자리의 막막한 슬픔을 견뎌냈다.


p99 당신에게 장애인운동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금호는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운동은 나 혼자 장애를 극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을 주었어요."


p101 나는 어떻게든 그를 지키고 싶고 그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노금호라는 존재는 각자의 어려움을 혼자서 극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 여주는 상징이고 그것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p111 “이제 시설을 나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바깥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노숙 농성을 하면서 우리가 그걸 만드는 싸움을 해봅시다. 믿고 결의해주시면 저희도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정하는 긴장한 채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기약도 없는 노숙이라니, 혹여 노여워하시지 않을까? 싸우면 정말로 살 집이 생기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잠깐의 침묵 뒤에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나, 할게요."

 그러자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그렇게 여덟 명이 그 자리에서 싸움을 결의했다. 많은 걸 설명해야 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2021년의 정하가 말했다.

 ”얼마나 걸리는지,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런 질문 하나 없이 알았다고, 좋다고, 디데이가 언제냐고, 그것만 물으셨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왜 이제야 말하느냐는 듯이. 그날의 이야기는 맥심 커피가 식기도 전에 끝났지."


p119 “웃고 계셨어. 시설에 살 땐 표정이 없는 분이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모르는 희미한 아름다움을 정하는 아주 많이 알 것이다. 그 말을 할 때 정하도 희미하게 웃었다.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 잘 아는 얼굴이었다.


p121 나는 '능력 있고' 돈 있는 사람이 돈을 주고 집을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이었고, 그 논리대로라면 '능력 없고' 그래서 돈도 없는 이들이 집을 가질 수 없는 것 역시 당연하다 여겼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건 바로 장애인들이었다.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어떤 논리가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고 있었다. 그게 뭔지도 모른 채 세상을 향해 마구 던져댔던 짱돌의 실체를 알았던 순간, 균열이 간 건 내 안의 어떤 세계였다. 멈추었던 생각 의 회로가 방향을 바꾸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와…… 이 운동 너무 어이없고 너무 신나네……?!‘

 왜인지 좋아서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p129 ㄱ, ㄴ을 가르치기 위해 때론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필요하다. 그 인생에 휘말려들 준비가 되었는가. 그 눈빛들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길연은 눈을 딱 감고 외치기 시작했다.

 “장애인 교육권 보장을 위해 모금하고 있습니다. 이 껌 씹으면 마음 변한 애인도 딱 달라붙어요!"

 더러는 술 취한 남자들이 "병신 육갑하네" 하면서 지 나갔지만 더는 두렵지 않았다고 길연이 말했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조금 울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은 번번이 나를 구원한다. 차별받는 누군가의 눈동자가 심장에 박힌 이들이 오늘도 머리를 밀고 밥을 굶고 지하철 바닥을 기어간다. 매일 아침 8시, 목이 멘다.


p183-184 “내겐 소중한 사람이 언론에서 그저 ‘불쌍한 장애인’으로 취급되는 건 무척 모욕적이었다. 세상의 말과 글에 반격하고 싶었다. 장애인운동은 싸우는 만큼 세상이 나아지고 가장 약한 곳에서 세계가 확장된다는 믿음을 안겨줬다. 경이로웠고 황홀했다.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 는 존재로 변신하는 일을 이 사회의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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