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언니에게

최진영, <이제야 언니에게>

by 수수

눈물이 서서히 차오르면 반짝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차오르는 눈물로 시야가 흐려지기도 하고, 빛에 반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희미한 앞을 다시 바로잡기 위해 두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뜨면 받치고 있던 눈물이 새듯이 주르륵 흐른다. 도중에 놓을 수가 없어 나는 ‘이제야’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었다. 가슴이 자꾸만 답답해지고 대상이 불분명한 화가 자꾸 생겨났다. 잘못하지 않은 이가 죄인 취급 받는 이 너무나 익숙하고 익숙해서 진저리나게 진부한, 그러나 너무나 서글프고 화가 나는 이야기 속 ‘이제야’를 보며 자꾸만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눈물이 났다.
‘이제야 언니에게’라는 제목은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이제야, 언니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야라는 이름을 가진 언니에게 쓰는 표현인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이 흘러 이제라는 시점에 누군가로 지칭되는 언니에게 오는 어떤 변화를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야 언니에게 온 어떤 편지나 글 자체를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화자가 ‘이제야’인데도 여러 의미로 생각하게만 된다.
세상은 어제와 같지 않다. 아주 더딜지 모르지만, 세상은 오늘도 바뀌고 있고, 내일도 바뀔 것이다.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믿을 수 있게 내 곁에도, 더 먼 곳에도 분투하는 이들이 있고, 반란하는 발화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세상은 너무나 별 수 없이 그대로이다. 성폭력 피해 경험자를 대하는 태도들에서 ‘이제야’는 부끄러운 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죄를 짓지도 않았지만 모든 화살은 ‘이제야’에게 날아온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난 것 자체가 문제임에도 사람들의 말은 가해자에게 따지는 것으로 가지 않고, 피해경험자에게로 돌아온다. 조용하라고, 창피한 줄 알라고, 너도 잘못했다고. 경찰이라고 다르지 않는 합의의 귀재가 되는 모습들이 과연 소설 속이라 존재하는가. 아무리 판타지라고 해도 소설과 영화는 현실을 따라오지 못한다. 언제나 현실이 앞서 있다. 절망에서도 아픔에서도 슬픔에서도.
제야에게 사과해야할 사람들 중 누구도 제야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말할 필요가 없는 곁의 사람들만이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대신 화를 내고, 애를 쓰며 아낌을 준다. 때론 모진 말을 건네고 얼굴 마주하기도 싫어 피했지만, 알고 있어 제야도 너무나 절실히. 옆에 그렇게 남아 곁이 되어주고자 했던 이모, 승호, 제니의 노력을, 그 마음을,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하지만 나대신 그 사람을 때리고, 나를 위해 그에게 침을 뱉고, 나를 지키기 위해 나와 함께 삶을 꾸려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오히려 그건 미안함을 갖게 되는 일이야. 고마우면서도 죄책감이 드는 것들. 그러니 당신들이 그러지 않아도 내가 나로 서 있을 수 있도록 내가 해볼게. 나도 해볼게. 걸어볼게.
사과를 해야 할 사람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 피해경험자의 자질을 논하지 마라. 피해경험자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당신 마음대로 이미지에 구겨 넣고 그것을 요구하지 말란 것이다. 원치 않는 폭력의 경험이 물리적 폭력으로 몸에 멍이 들어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고자 한 이의 발화를 묵인하지도, 묵살하지도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 후의 일들. 그 많은 과정의 경험 이후를 겪고 몹시 어려웠지만, 지금 이렇게 여기에 있는 제야는 애를 쓰며 살아갈 것이다. 폭력의 경험에서 매일 매순간 벗어날 수 없이 그것이 이미 일어난 이후의 삶의 모습, 삶의 현실이 되었지만 제야는 살아갈 것이다. 가방 속에 과도가 여전히 들어있더라도 제야는 오늘도 어디선가 살아갈 것이다. 폭력은 그 순간의 경험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또 다른 불안과 또 다른 의심을 자꾸만 만들어낸다. 넘치는 불안과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갖게 되곤 하는 의심들 속에서도 제야는 살아가고 있다.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내 옆의 제야도, 당신 옆의 제야도 그리고 제야인 당신도, 나도.
얼마 전, 소설책을 읽으면 그 작가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최선이 너무 절망과 닿아서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이 책을 읽고서 나는 최진영 작가를 만나고 싶어진다. 그의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나는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나는 이 사람을 만나고 싶고, 이 사람 앞에서 펑펑 울고 싶어진다는 생각을 책을 덮으며 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정말 그런 마음이 든다. 최진영 작가가 써내려갈, 그려나갈-이 아닌 쓸 삶의 어떤 지점들을 나는 오늘부터 또 기다린다. 이 책을 만나 단박에 읽어간 것처럼. 황현진 작가의 말처럼 ‘우리’라는 단어를 ‘불행의 연대로 이루어진 무리’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이가 최진영 작가라면 그 불행 속에서도 무리를 이뤄 ‘우리’가 되었으니 그 애씀으로 함께 뺨을 비비듯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은 끝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노래가 아니라도 계속된다. 우리는 제야를 모를 수 없다. 우리는 안다. “나를 견디지 않고, 나와 잘 살아보고 싶다.” 해가 지는 곳으로 달리고 있을 그녀들처럼 나는 ‘이제야’의 걸음과 또 달림을 생각합니다. 제야, 나는 네가 어딘가에서 비오와 루를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봐. 제야, 내가 필요할 때 언제든 말해줘. 우리 그저모이기 가서 비엔나커피를 마실까. 아니 뭐라도 좋아, 그렇게 마주할 시간을 나도 기다리며 오늘도 애쓰며 살아가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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