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그런 경험이 있다면-

구병모, <버드 스트라이크>

by 수수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에서는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 –도덕적 공동체- 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즉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라고 말하는데, 루가 익인 공동체에서 지장을 처음 만났을 때 자각했던 장면, 비오의 가족이 루에게 행했던 보살핌들이 떠올랐다. 루는 그 안에서 ‘사람’으로서 ‘인정받은’ 것이다. ‘왜 여기까지 말했지? 그거야 지장이 중단시키지 않아서였다. 그의 입가에 번져 나가는 미소를 보자 루는 자신이 청사 안에서 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에 목말라 있었다는 걸 알았다(125).’ 루에게는 청사에서 사는 시간이 ‘시민권’이 중단되었거나 박탈되어 있는 상태였다. 비-사람의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군대 내의 군인이 그러하듯 루는 청사 안에서 존재했으나 보여 진다 여겨지지 않는 사람(성원권의 여부 상관없이 그저 존재의 사람)으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비오가 말한 ‘이상하지만’ 자신들의 방식이라고 했던, 익인 사회에서 루를 대하는 모습과 또 책의 말미에서 지요와 루가 나눈 편지를 읽으면서 환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낯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적대시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루에게 보인 모습들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그들은 대체 뭘 믿고 낯선 이에게 마음을 베풀 수 있는가. 그들의(익인) 공동체에 존재해온 환대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지장과 익인 사회에서 비오에게 행했던 마땅하다 여겨진 ‘규율’을 생각하면 그 사회에서 과연 절대적 환대가 가능했던 것인가 고민하게 한다. 지장과 비오의 공동체는 있는지 몰랐던 차별에 대해 인지하고 결국 그것을 깨트릴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걸 보면서 절대적 환대라는 것이 그렇기에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불안과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조치가, 생각보다 너무 길고 가혹한 대가가 되어 그 애에게 영원한 유목민 내지는 이주자의 낙인을 찍어 버린 걸까(146).’ 사람들은 자신이 차별한다고 (잘) 생각하지 않는다. 지장과 익인 공동체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그러나 선의 혹은 대의를 위한 행위들은 실은 ‘선량한 차별’이 되어 누군가를 계속 사회의 바깥으로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속도가 느려서 눈에 잘 보이지 않았을 뿐.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돌리는 것. 어떤 것이 문제이고 나쁘다고 생각할 때 정말 그것이 문제인 것일까, 아니면 단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비폭력대화에서는 분노를 이야기할 때 원인이 아닌 자극인 것을 원인으로 착각하고 쏟아내는 사람들의 폭력을 짚어내는데, 이 사회에서 행해지는 많은 혐오발화들은 사실 이런 과정들이 먼저 필요한 것이 아닐까. 과정 없이 공기 중에 내뱉어지기 전에 말이다. 사람들은 때론 정말 함부로 말한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면서.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무언가를 옳고 바람직하다거나 다른 것은 그릇되었음을 말하지는 않아(348).’ 서로 다르다는 것, 마음이 무언가를 향해 있는가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지며 도덕적 위계에 놓지 않는 것. 어쩌면 이건 생각보다 쉬운 일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너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몸 밖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결핍과 없음에 대해 놓치지 않고 만져주었던 비오와 루가 서로를 향해 그것이 ‘비정상’이라고 판단하고 위계로 두었다면,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의 무엇이 나에게 있음으로 더해지는 것이기에 네가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고, 너의 없음이 나에게 쓸모없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것이 그뿐인대로 서로를 발견할 수 있는 것. 어쩌면 그것이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전제와 조건 속에 두지 않고 나눠질 수 있는 환대할 수 있는 용기가 말이다.

물론 이것은 여전히 너무 고민이고, 어려움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들은 상처받고 배신당하더라도 또 다시 누군가를 믿고 길을 찾듯 꼼꼼히 사랑한다. 언젠가 물을 퍼내듯 다시 꺼내야 할지 모르지만, 또 다시 확신하듯 마음에 담는다. 결국 울고 찢기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 건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

루를 위해 노력하며 낮고 천천히 날았던 비오에게 루가 이제 멀리 빨리 날아도 된다고 말했듯이 우리도 서로에게, 누군가일지 모르는 당신에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멀리 날아가고 싶은 만큼 날아가도 돼- 내가 갈 테니까. 수많은 절망이 파도처럼 거세게 존재하는 세상에서 내가 온전히 받아들여진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 조금 두렵고 무서울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다른 이에게 내가 가진 그 치유의 곁을 건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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