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프 베송_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아빠가 엄마를 죽였고, 그것을 레아가 목격했다. 레아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온 ‘나’와 레아는 엄마의 사망과 아버지의 구속으로 부모를 잃었다. 그리고 엄마의 죽음은 아빠로부터 발생했다. 사랑 그리고 신뢰로 시작되었을 누군가들의 관계에서 그 신뢰의 대상에게 누군가는 맞고, 의심 받고, 죽임 당하고 있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쩌면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는 낯설지 모른다. 아니 마땅히 그래야할 문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제하는 일이며, ’아빠가 엄마를 때렸어‘란 문장은 일상에서 무수히 잡히는 익숙한 문장 아니 일이란 걸 안다. 나 역시 동생에게 받았던 전화 속 문장이었고, 목격한 상황이었다.
책은 가해자인 아빠로 인해 엄마가 죽고난 바로 당일부터 몇 년이 흐르는 시간까지를 서술하고 있다. 어떻게 일상을 다시 되찾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있는지, ’나‘와 ’레아‘의 사라지지 않는 고통에 대해서. 누구나 치유될 수 있고 치유되면 좋겠지만, 누구나 치유되기 어렵고 고통은 깊이 있기가 쉽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사건 외로 치부되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 사건과 떼지못해 들러붙은 것이 아닌 형태의 치유와 회복에 지원이 필요하다. ’레아‘가 혼자 감당하고 자해하고 갇히지 않도록. 우리에게는 다른 방식의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이 일을 일어나게 한 사건이 없어야 한다. 수많은 시간 은폐되기 쉬웠던 여성 살해, 가정 폭력에 대해 쉬쉬하거나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여김이 아니라 중단될 수 있도록. 부엌은 살인이 일어날 공간이 아니며, 누구도 폭력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어서는 안 되며, 살아남은 자로서 고통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모두가 사랑이 넘쳐 사랑으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지 않는다. 임신 중절이 뭔지도 모르고 정보도 없는 여자들은 사랑이 없어도, 원치 않는 성관계였어도 결혼을 하곤 했다. 아주 많은 경우로 그러했고, 적어도 한 가지 실체는 안다. 그 결과가 나의 원가족의 탄생이고 나의 탄생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폭력으로 시작되는 결혼이나 가정, 폭력이 유지되는 가족 관계 따위가 계속해서 재생산되지 않기를.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필리프 베송 장편소설, 이슬아 옮김, 레모
p17 “무슨 일인데?"라고 묻지 않았다. 레아가 적어도 10초 남짓 흘려보내고 있었으니 질문을 할 시간은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이 정신을 가다듬고,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동생의 목소리에 힘이 없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말을 하려던 참이었기에 그런 질문은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 진실을 말하려 하고, 그 진실은 동생의 것이고, 동생은 오직 그것을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나를 선택할 수밖 에 없었고, 처음에는 얼어붙었다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 말렸지만, 동생은 할 수 있었다. 할 말을 할 것이다.
그리고 동생은 그렇게 했다.
동생이 말했다.
”아빠가 방금 엄마를 죽였어"
p27 "내 방이 더 좋아"라고 동생이 말했다.
동생을 안심시키는 세계이자 보호막,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는 곳. 하지만 부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이다. 부엌에서 사람이 살해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럼 그렇게 해"라고 답했다.
p42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동생은 모든 것을 보았구나.
동생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살해되는 것을 보았다.
곧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몇 년이 걸릴까? 동생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깊은 심연에서 빠져나오려면? 그건 단지 시간의 문제일까?
p77 그날 이후 나는 표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기억의 조각들은 다른 기억들과 이어지거나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단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81 이렇게 쓰는 게 그 사람을 위한 변명거리를 찾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 어떤 변명도. 나는 어떤 설명을 찾았던 것 같다. 때때로 그것은 질식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p113 해결책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머니는 아무죄가 없었기에 아버지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바로잡 을 것도 없고, 내보일 증거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진짜 죄인이라도 된 듯 아버지를 안심시 키기 위해 약속하고 맹세했다. 어머니는 그런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충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절대로 만족하지 않았고, 절대로 그만두지 않았다.
p171 그에 앞서 레아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세심히 물었다. 비극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다른 곳에서 새출발을 하고 싶은지? 아니면 태어나고 자란 곳에 머물고 싶은지? 할아버지의 질문에 레아는 친구들과 헤어지는 건 너무 마음이 아파서 힘들 것 같다며, 기댈 수 있는 이들과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p177 그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은지 물었을 때 답이 없다면 그 사람은 괜찮지 않은 거야." 그러나 그는 다시 묻지 않았다.
p178 그날 늦게 나는 파트리 아저씨의 소극성과 양심과의 타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건 바로 나의 것이기도 했다.
p190 나는 생각했다. 열세 살에 프로작을 복용하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그렇다. 레아는 빌어먹을, 아직 어린아이였다). 단 몇 초 만에 어린 시절이 망가진 아이들. 피비린내와 구타의 기억을 안고 자라는 아이들. 울지 않고는 소리 내 ‘엄마'를 말할 수 없고, 전율하지 않고는 '아빠'를 말할 수 없게 된 아이들 말이다.
p203 우리는 이 사건을 치정이 아닌 사회적 사건으로 보아야 했다. 우리는 비극으로 끝난 부부 싸움이 아닌, 지속적인 폭력과 공포가 어디로 치닫는지에 관해 말해야 했다. 살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내세우며 지배하려는 한 남자의 욕구에 관해 말해야 했다. 눈이 먼 사회를 말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일에 이름 붙이기를 두려워한다는 것 을 말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