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_지구 끝의 온실
2024년 올해 1월에 독서 모임으로 (다시) 읽었던 <지구 끝의 온실>을 올해가 가기 전인 12월 연말에 또 다시 읽게 되었다. 역시나 독서모임 때문인데, ‘피난처에서 만나요’ 시즌3의 마지막 책으로 이 책을 정했다. 앞서 읽었을 때를 구분하고 싶어서 빨간색과 분홍색으로 글귀를 표시해두었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초록색으로 구분을 했다. 읽을 때마다 여전히 같은 곳에 밑줄을 긋고 마음에 담고 싶은 부분들이 있다. 그곳에는 세 가지 색깔이 차곡차곡 모였다. 그런데 또 그렇게 동일하지만은 않더라. 읽을 때마다 밑줄을 새로이 긋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렇게 책은 알록달록해졌고, 나는 이번에도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다(이번에 읽으며 이전엔 집중하진 않았던, 지수가 만든 레이첼의 ‘호의’ 작동과 그 결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올 초에 읽을 때, 돔이나 새로운 공동체나 온실이 오직 인간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에 내 시선이 향했다. 그것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지금의 나까지 그 사이에 존재하는 변화들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 다시 읽은 지금도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라는 김초엽 작가의 말에 울컥하고, 마음에 담고 담는다. 아영이 담은 나오미의 이야기가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비난이 되기도 할 때, 누군가는 그 이야기로 자신이 평생 이해하지 못했던 이를 이해하며 매일 울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과 동일하지도 이해시키지도 못했던 어떤 과거나 마음을 담고 있는 이들에 대해 생각하며 왈칵 눈물이 났다.
2024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나는 역사책에서 보던 계엄령을 경험했다. 정말 자꾸만 사랑하기 어려워지는 세계의 다양한 면면들을 마주하고 있고, 그럼에도 그 세계를 지켜나가려고 멈추지도 않고 그만두지도 않는 사람들 그리고 새로이 시작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떠올랐던 구체적 이름의 얼굴들뿐만 아니라 미처 다 알지 못하지만 너무 많이 존재하는 얼굴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버림 받았던 이들이/도 거리에 나와 변화를 요구하고, 함께 하기 위해 작은 몸짓들을 보태었다. 광장이 혐오와 차별이 아닌 다른 광장일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었다. 나를 미워하고 버린 세계처럼 세상을 미워하거나 버리지 않고 재건하고 나아가려는, 어딘가의 사람들이 자꾸 자꾸 생각이 났다.
지키고 싶은, 영원이 없대도 지속되기를 바라던 관계, 공동체, 공간이 있는가. 끝이 오리라는 걸 알았다고 해도, 나오미에게도 하루에게도 ‘프림 빌리지’는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취약하단 이유로 버림 받지 않는 곳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꼈을 그곳은 결국 떠나게 되었다 해도 잊혀지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희미해지더라도, 공간은 사라지고 흔적을 찾을 수 없대도 남아있다.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아마 그런 마음 조각들이 지금은 엉망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곳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이어가게 하고,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것 아닐까.
불안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같이 느끼고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 불안 속에서도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지수처럼. 모든 것을 해결할 것만 같은 확신을 줄 수 없겠지만, 불확정과 불확실 속에서도 안정을 쥐고 옆의 얼굴에게 미소를 지어줄 수 있는 사람. 그 손에게 내 안정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보았다. 완벽하지 않지만, 분명한 안식처로 존재했을 ‘프림 빌리지’를 생각하며, 더해지는 파국 속에서도 같이 살아가기를 궁리하고 피난처를 (재)구축하기 위한 마음을 나누고 담아보기 위해 마주하였던 ‘피난처에서 만나요’ 시즌3의 마지막을 그려보았다. 당신에게 어떻게 가 닿았을지 궁금해지네요. 우리의 마음에 작은 안식처가 되는 시간이었기를.
덧: 그런데, 나와 당신은 돔 안에 있는 걸까? 돔 밖에 있는 걸까? 어디에 있건 돔을 부수는 데 동의하나요?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장편소설, 자이언트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