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여기에

황정은_연년세세

by 수수

금방이라도 누군가 왜냐고 물으면 눈물이 흐를 것처럼 울상의 얼굴이 되어 책을 덮었다. 읽어가기 위해 손에 책을 들었는데도, 선뜻 읽기를 시작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내버리게 되는, 그러니까 괜히 그렇게 딴 짓을 하는 그럴 때가 종종 있다. 올해에도 몇 권의 책을 읽을 그랬고 올해가 끝나기 얼마 안 남은 어젯밤도 그랬다. 가을에 나와 진즉에 사두고 책장에만 있던 황정은 작가의 신간, <연년세세>를 읽기까지가 어쩐지 자꾸만 뜸이 들어졌다.

살면서 순자, 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을 자주 만났다고 했다. 왜 그렇게 많을까? 작가의 질문은 이 책을 만드는 길이 되었다. 순자, 하면 내가 생각나는 사람은 나기의 엄마 순자. 순자로 인해서 나기뿐 아니라 나나와 소라도 그들의 뼈가 자랐고, 애정을 먹고 살았다고 생각이 든다. 어린이들이 쥔 쉰밥을 바꿔먹자고 이들과 관계를 시작한 후 그들을 먹여 살리는데 정말 먹는 음식과 마음에 담아질 사랑을 자기의 방식대로 주었던 순자. 사랑이 말라버린 애자를 대신해서 나나와 소라를 살려온 순자. 나기가 결혼을 하고 손주를 안게 해줄 수 없는 나기의 엄마, 순자. 그 순자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그리고 이 책에서의 순자. 인민군 치하에 있던 것을 군군에게 자수하러 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 부모를 잃고 들어간 백부집에서도 어른들이 기어서 도망갈 때 제 몫의 것을 하지 못하고 남게된 아이, 순자. 순자는 그렇게 외할아버지에게로 간다. 그에게 버려졌다고 하기엔 많은 망설임이 든다. 순자는 할아버지가 있어 그래도 컸으니까. 순자만이 할아버지의 묘를 찾곤 했으니까. 좋은 거 해준다는 고모 말은 다 거짓말. 오만 고생을 다하며 참 순하게도 견뎌내었던 우리의 순자, 이순일.

그리고 별 수 없이 명자. 이 책에서 순자는 순한 아이라는 의미로 삶을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순한 놈이라고 붙여준 이름이라는 걸 알았을 때, 아니 처음부터 순자에게, 라는 글을 보았을 때부터 나는 명자란 이름을 갖게 된 명자를 생각했다. 그리고 명자에게는 명자와 같은 친구가 있었는지도.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도망치고 싶었던 무수한 순간들은 어떻게 견뎌왔거나 실제 어떤 떠남을 선택했었는지도. 이런 책들을 만나면서 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은 물론, 나라는 사람의 삶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그 여자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넓혀가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런 시간은 언제나 나에게 에너지. 언제나 나의 동지.

명자 생각을 하며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가족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이 책은 한 명 한 명 이름을 가진 여자들 이야기였고, 그 여자들이 가부장제 안에서 경험한 폭력과 슬픔과 감당과 환멸과 분노의 이야기들이었고,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살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온 이야기였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했고, 그런 그들을 보며 무엇이 됐든 가책을 갖는 엄마인 여자의 이야기이도 했다. 그럼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코 말할 수 없는, 분명한 사랑의 이야기였다. 순자, 이순일, 한세진, 하미영, 한영진, 안나, 제이미... 그 여자들이 먹고 입고하는 것 외에도 무엇으로 오늘날까지 살아왔는지 말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저자 사인에 있는 ‘우리는 우리의 삶을 여기서’란 문장을 이해했다. 양갈보라 불리는 소문 속에서 살아야 했던 안나는 한국에서라면 더 행복하고 덜 불행했을까. 그렇지만 제이미는 아니라고 한다. 안나는 이곳에서 안나로서 안나의 삶을 살았다고. 나는 황정은 작가의 말을 그렇게 담기로 했다. 그러니 나는 나의 삶을 여기서, 당신은 당신의 삶을 여기서.

그의 소설은 그 호흡을 따라가다 내가 놓쳐버린 감정이 있진 않을지 고심하게 했는데, 이 책의 순일의 마음을 보며 잃은 것도 거기 있을 테니까, 의 마음으로 가보자 생각했다. 결국 어떤 감정들은 마지막의 내게 충분히 다가와 주었으니까. 시간이 흘러 자신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 치장이 될 수도 있는 말들이 많아졌음에도 황장은 작가의 소개는 짧아만 간다. 그리고 그의 소개는 짧아져만 가지만, 그가 가진 내용들은 다채로워지고 깊이가 묵중해진다. 디디의 우산에 이어 이 책에서도 그는 잊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그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기록한다. 그가 가진 ‘퀴어’한 세계관과 그 세계관을 단절시키지 않고 항상 사람들, 사랑과 함께 하는 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나는 그와 같은 작가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여기에서 쓰는-노동을 응원한다. 글을 쓰는 이가 지금 현 사회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왜 이것이 문제인지에 대해서 고심하지 않으면 납작한 글이 나올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지금 이이들의 이 작업을 기대하고, 응원하고,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황정은 작가. 나는 이 사람의 ‘계속 함’이 정말 눈물 나도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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