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글쓰기도 그렇다.

이길보라,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by 수수

언젠가부터 잘 쓴 글을 보면 감탄이 나오거나 그런 글을 만난 것이 반갑고 즐거워진다. 읽기를 계속 하다보니 이 작가의 이 글을 만났잖아! 하면서. 물론 이전의 나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발견하는 지점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 그럴 때 내가 늘 생각하는 사람은 크큭, 김애란 작가이다. 나에게 김애란 작가는 질투와 배 아픈 사람이었다. 대학을 다닐 때 읽었던 그의 글은 너무 잘 쓴 글이라고 생각되어서, 그런 그는 대학생 때부터 글을 세상에 보였던 사람이라 그런 시도를 하지도 않았으면서 질투가 났다. 그렇게 어느 시점부터의 나는 책과 글에 대해 구분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글을 나도 쓰겠다.’ ‘이런 글로 책을 냈다고?’ 평가하며 세상에나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책을 내는 것인가, 배가 아팠다. 이런 마음은 몇 년 전, 좋아했던 에세이 작가의 글을 한 편 컴퓨터로 옮겨본 후 조금씩 바뀌었다. 그걸 해본 건 나도 글을 쓰고 싶으니 이만한 책이 나오려면 적어도 이 정도 분량의 들은 쓰며 모으자, 라는 생각때문이었는데 그때 글을 한 편 한 편 쓰는 사람의 태도와 작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행위의 쉽지 않음에 대해서 말이다. 그때부터는 어떤 책을 골라 읽을 수는 있지만, 그 책과 책을 만든 사람을 쉽게 무시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고등학교 때,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뒤로 본격적으로 글쓰기 대회에 나갔다. 그때를 생각하며 그 상 때문에는 허세가 있었던 거 같고, 그 상 덕분에는 그래도 글을 계속 써보고 지금까지도 만남을 갖는 친구들이 생긴 것이겠다. 하지만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그때도 글쓰기를 지도해주는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했고, 문창과 같은 창작을 할 수 있는 대학에 가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나는 글이 쓰고 싶은데 과연 내 글은 괜찮은 글일까? 하고 좌절감을 곧잘 갖게 되는 겁쟁이가 되었다. 사실 그때 책도 잘 읽지 않고, 쓰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해나간 것도 아닌데 그런 바람만 자꾸 늘어나가다 보니 ‘유령 선배’에 나오는 거구의 침대 인간같은 마음이 들었던 거 같다. 아무때나 성차를 갖다 붙이는 게 아니라 ‘내가 무슨’이란 생각은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상성의 몸 되기’에 끊임없이 부합하려 노력하고, 실패라고 판정받고 또 계속 요구받으면서 몸과 마음이 여러모로 움츠려들게 했다. 내게는 그렇게 습득되어온 것들이 나를 사랑하기 어렵게 하고, 내가 쓰는 글도 보듬어주기 어렵게 했던 것 같다.

그런 나의 지난한 삶의 과정들은 무수히 많은 목격과 눈물과 인식을 가지며 변화해왔다. 요즘의 나는 질투가 아닌 방식으로 타인의 글을 읽고, 또 내 글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단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나는 타인의 글을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매일 조금이라도 읽고, 또 매일은 아니지만 쓰려고 노력하며 지금을 살고 있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 다 해보았다’는 말에 그럴 수 없었단 사람은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 드는 처음을 발견하고 차분해진 뒤 다시 그 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럴 수 없었다고 대상도 없는 원망을 하거나, 그러지 못했다고 스스로 죄책감으로 갉아먹는 시간을 갖는 대신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고 시도해보는 것이다. 최근에 목요일 저녁마다 글쓰기 워크숍에 가고 있다. 아직 2번밖에 참여해보지 않았고(총 7번),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는 아니지만, 담담하게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 있어 마음에 든다. 또 이 워크숍에 신청하기 전에는 온라인으로 3주 동안 매일 10문장 글쓰기를 하는 시간에도 참여했다. 매일 글을 쓴다고 생각했지만, 매일 SNS를 하는 것은 ‘글쓰기’ 작업과는 또 달랐다. 끄적이거나 한숨 쉬거나 욕하거나 웃거나 하는 것들 말고 ‘글’이라는 건 역시 쉽지 않았다. 또 이전에는 내가 쓰고 싶은 소재가 있을 때 쓰는 것이었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매일 글주제가 정해졌기 때문에 그에 맞는 재료를 내 안에서 찾아 잘 다듬는 작업은 고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신청할 때의 마음을 착실히 가지고 3주 동안 성실히 해나갔고 완료할 수 있었다.

다시 지금으로 돌아가서 소수의 사람들과 진행 중인 글쓰기 워크숍은 사람들과도 아직 데면데면하기도 하고 그것이 아니어도 이들과 내가 글쓰기 작업에 새로운 네트워크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장담되진 않지만, 나름의 흥미가 있다. 수업을 이끌어가는 분은 하고 싶은 것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에 대해 말하고 중심만이 아닌 귀퉁이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이야기했다. 그의 말들은 어떤 사람이 ‘지금의 나’로서 존재하며 바로 글을 써내려 간다고 할 때 긍정할 수 있는 말들이라고 생각되었다. 오늘까지만 해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글을 내가 쓸 수 있다면 캬- 너무나 신나겠지만, 그건 그 바람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슬픔만 가득 찰지 모르니 그런 바람은 잠시 포개두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로 한다. 글을 잘 쓰고 싶고 또 계속 쓰고 싶다면 현재 나에게 있는 재료들을 잘 찾아야 한다. 그 재료가 가진 감정이 넘치든 조금 바삭하든 여부는 일단 차치하고 내 안에 소재를 찾아야 네가 아닌 내가, 혹은 나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 그러니 이건 정말 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나는 일기만이 아닌 독자가 있는 글, 누군가가 보는 글을 쓰며 살고 싶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는 것 뿐. 누구보다도 걱정에 걱정을 달고 사는 사람이었지만, 해보지 않으면 알 수도 없고, 말 그대로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지금 나 그대로를 사랑하며 나는 오늘도 읽고, 쓰는 것이다. 이상한 글이 되건 허둥지둥 글이 되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제치고 일단은 쓰는 게 중요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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