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바라보는 태도.
좋아하는 부채가 있다. 몇 년동안 여름이 되면 꺼내들던 부채. 아트박스에서 산 부채였는데, 나무 대에 종이로 만들어진 부채로 생각보다 꽤 튼튼하고, 접이식이라 가지고 다니기 용이했다. 몇 천원밖에 하지 않았지만, 몇 년을 사용해도 그대로 그 쓰임을 이어가고 있었다. 문제가 생긴 건 작년 여름부터였다. 나사 부분이 고장이 나서 자꾸 부채 대가 흐트러지는 것이 위기 상태였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싼 것도 아니어서 그깟 부채 새로 사면 그만이지만, 나는 마음이 속상했다. 이 부채를 좋아한다고 기존에도 알고 있었지만, 더욱 그렇다는 걸 발견했다.
별 수 없이 작년 여름을 보내고, 해가 바뀌어 봄을 맞이했다. 내일이라도 여름이 오고 말겠는걸! 싶은 날씨에 부채를 사두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며칠 전, 아트박스에 갔지만 몇 종류 없는 부채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그냥 나왔다. 그리고 오늘 모임에 오는 길에 핫트랙스와 에스닷에 들렀지만 허탕이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부채가 보이지 않아 직원께 문의하니 그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뭔가 요즘 부채 찾는 사람이 있다구? 의 느낌이랄까. 아직 여름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기엔 미니 선풍기들은 너무 많은 종류가 판매대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뭔가 이젠 부채의 시대가 아닌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하나, 뭐 그런 기분이 들었다.
상점들에 부채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지, 몇 종류의 부채는 지금의 계절에도 있다. 다만 나는 나무 대에 종이질감으로 만들어진 부채가 필요할 뿐이다. 너무 요란하지도 하얀 종이만이지도 않는 부채. 아직, 이란 말이면 좀 더 더워지면 더 많은 부채가 나오려나 아쉬워하며 걷는 길에도 부채를 생각했다. 이윽고 잠시 멈춰 핸드폰으로 쇼핑몰을 검색했지만, 역시나 마음에 딱 들어오는 부채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나마 지브리 부채가 귀엽다고 부채 하나를 몇 만원이나 주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모름지기 부채란 그런 가격 따위가 아니어도 자신의 쓸모를 펼쳐야 사용하는 맛이 있는 것이다.
이쯤되니 이것은 부채에 대한 집착인가 뭔가 싶어졌지만, 나뿐 아니어도 사람들에겐 각자의 손에 익은 혹은 각자의 손에 맞아떨어지는 물건이 있기 마련일 것이다. 내겐 그 부채가 그랬다. 결국 부채를 새로 사지 못한 채 걸으면서 ‘아 내가 혹시 그 부채를 버렸던가?’ 하고 기억나지 않는 부채의 행방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낱 부채에도 이리 큰 마음을 두어 서성거리는 나를 바라보았다. 익숙함으로부터의 결별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때 내 마음에는 그것이 갖는 커다란 의미에 대한 항변이 늘 존재했다. 요즘의 나는 그래 까짓, 새로워지자! 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나란 사람이 붙잡고 있는 ‘익숙’에 대해 여러 갈래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살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때론 익숙이란 늪에 빠지게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도망치지도 외면하지도 않고 자신의 것들을 지키는 사람의 모양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언가와의 익숙을 만드는 게 이제 쉬이 일어나지 못하기도 한 세상이니까.
그러니까 요즘 내게 ‘익숙함’이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나란 사람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인식하게 하는 요소. 그러나 더 이상 나란 사람을 나약하게 여기며 무너뜨리게 하지는 못하는 새로운 요소. 오늘 부채를 사러 다니며 나는 또 나에 대해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