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페미니즘(feminism)은 여성의 사회적·정치적·법률적 모든 권리의 확장을 주장한다. 라틴어의 페미나(femina;여성)에서 파생된 말로, 여권주의·여성존중주의를 뜻한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온 여성들이 사회가 정해놓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등 ‘성(sex, gender, Sexuality)에서 기인하는 차별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한다. 페미니즘 영화비평은 영화를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분석해내는 것을 말한다. 여성의 억압과 차별의 문제를 다루어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편견이 지배하는 고정관념들을 비판할 수 있다.
<델마와 루이스>는 1993년에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이다. 감독은 DVD에 수록된 코멘터리에서 예전 자신이 제작한 <에일리언>에서 전통적으로 남성이 맡아왔던 역할에 여성을 캐스팅했던 경험을 토대로 <델마와 루이스>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영화에는 남성 중심적 사회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이는 가족 내 폭력에서 시작하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차별과 폭력으로 나타난다.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델마와 루이스는 살인과 다소 폭력적인 방법으로 남성중심의 폭력적 상황을 헤쳐나가지만 오히려 이들은 법적 이탈이라는 현실 한계에 처하게 되어 도망자로 전락한다. 그러나 이들은 정체성을 찾기 위해 끝까지 굴복하지 않는 점을 희망적으로 제시한다. 본론에서 영화 속 인물의 대사, 장면 분석 등을 통해 남성 중심적 사회를 어떻게 탈피하고자 하는지 페미니즘 시각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감독의 의도를 구체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주인공에게는 언제나 해결하거나 성취해야 할 목적이 뒤따르게 된다. 목적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발생하여 갈등이 생기고, 갈등이 고조됨으로 관객은 흥미를 얻게 된다. <델마와 루이스> 내에서는 어떤 갈등이 나왔는지, 등장인물이 어떻게 장애물을 극복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델마는 가정주부이고, 남편 데릴은 아내의 순종만을 강요하는 가부장적인 사람이다. 델마의 친구 루이스는 식당 웨이트리스이고, 남자친구가 있다. 루이스는 과거 텍사스에서 강간당한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한 상처를 간직한 채 살고 있다. 델마와 루이스는 이러한 힘든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잠시 여행을 가게 되었다. 델마는 차 안에서 루이스에게 총을 건넸다. 델마는 “남편의 권총인데 연쇄살인범이나 산짐승을 만나면 쓸려고 가져왔다”고 농담 섞인 어조로 말했다. 두 사람은 저녁이 되자 잠시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바에 갔다. 델마가 한 남자에게 주차장에서 강간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를 발견한 루이스가 남자를 쏴 죽였고, 여기서부터 델마와 루이스는 도망자 신세에 놓인다.
이들은 경찰의 눈을 피해 도망친다. 그 과정에서 델마와 루이스는 끊임없이 남성으로 인해 폭력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차 뒤를 따라오는 대형 트럭들이 경적을 울리며 위협을 가하고 성희롱하며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델마가 루이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카우보이 차림의 전과자 J.D를 태워 주었다가 돈을 모두 잃게 되기도 한다.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나 트럭 운전사, J.D, 루이스의 남자친구, 델마의 남편 등, 이 영화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남자는 델마와 루이스를 위협하는 경직되고 폭력적인 남성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델마와 루이스는 이와 같은 남성의 폭력성을 알게 되고, 거침없이 저항하기 시작한다.
델마: 루이스, 너 깨어났니? 난 변했어, 루이스.
루이스: 그래, 이제 너는 처음으로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거야.
착하고 순진했던 델마는 사기꾼 카우보이 J.D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서 대범한 성격으로 변한다. 권총으로 점포를 털어 돈을 마련하기도 하고, 고속도로에서 자신들을 위협하는 경찰관을 트렁크에 감금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을 바탕으로 남성의 폭력에 가장 쉽게 노출되고 희생되었던 델마가 순종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가부장적 사회의 폭력에 대해 맞설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은 도주로 변해버린 여행을 통해 자신들을 억압해왔던 남성적 폭력에 저항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로 인해 자신을 억압하는 부조리한 상황에 굴복하지 않게 되었다. 델마와 루이스는 진정한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며 그랜드 캐년 절벽 위에 차를 멈춘다. 이때 경찰은 그녀들에게 총을 겨누며 확성기로 “손을 들고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저항의 의미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즉, 남성 권력에 항복하지 않으면 죽음 뿐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요구한다. 하지만 델마와 루이스는 항복하지 않는다.
델마: 가자.
루이스: 정말이지?
…(중략)… 두 사람은 손을 꽉 잡은 채 절벽을 향하여 액셀을 힘껏 밟는다. 차가 절벽을 넘어 허공에서 스톱모션으로 잡히고 영화는 끝난다.
델마와 루이스가 선택한 자살은 남성으로부터 그리고 자신들을 이해하지도 용서하지도 않을 사회로부터의 자유이자 마지막 저항이 된다.
이렇듯 <델마와 루이스>는 여성의 일상을 지배하는 남성과 이러한 가부장적인 사회를 고발하는 영화이다. 즉,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저항을 담은 페미니즘 영화라 할 수 있다. 델마와 루이스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남성 범죄자에게 그들과 똑같이 폭력, 살인, 성적 능멸 등으로 갚아준다. 관객들은 폭력적 남성들을 응징하며 통쾌하게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찾는 주인공들을 보고 덩달아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주인공들의 저항 방법으로 살인, 폭력 등이 나타났다. 이들은 살인과 폭력적인 방법으로 남성 중심 사회에 저항하지만, 머지 않아 법적 이탈이라는 현실의 한계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여기서 주인공들이 처한 갈등 상황은 그들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델마는 가부장적인 남편에 의해 억압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갈등에 직면해 왔고, 델마에 비해 주도적으로 보이는 루이스는 과거 경험한 강간에 의해 갈등 상황에 직면해왔다. 루이스가 강박적으로 자신의 주변을 통제하려는 건 과거 상처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남성중심의 폭력적인 세계와 극단적인 대립상황을 맞게 되면서 델마와 루이스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저항하게 된다. 여행에서 경험하게 된 가부장제 의식에 의한 남성중심 사회의 모순적인 현실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사건이 전개되면서 더욱 큰 위기를 맞게 되지만,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모습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루이스는 델마에게 “남편은 아빠가 아님”을 가르친다. 이것은 가부장적 폭력의 시발점에 대한 정확한 지적이다. 결국 델마는 루이스의 말을 듣고, 델마의 상황은 안중에도 없이 거칠게 귀가를 명령하는 남편을 제외한다. 델마와 하룻밤을 보낸 카우보이 청년 J.D.는 사기꾼이었고, 든든한 지원군으로 보이던 루이스의 남자친구도 끝내 소리를 지르며 폭력적 성향을 드러낸다.
폭력적 성향을 드러내는 남성들 사이에서 델마와 루이스는 끊임없이 연대한다. 루이스는 자주 실수하는 델마에게 리더쉽을 발휘했다. 두 사람의 관계에도 위기가 찾아오지만 델마는 이를 창의적으로 극복한다. 카우보이 청년과 하룻밤을 보내고 도주비용을 모두 잃게 되자 강도로 돌변하는 대범함으로 이를 만회한다. 루이스가 총격을 통해 폭력적 가부장의 법적 선을 넘어섰다면 이번에는 델마가 이러한 법의 경계를 넘어선다. 성폭력의 피해자인 루이스가 수동성을 극복하면서 전투적으로 변한다면, 델마 또한 이러한 행동방식을 공유한다.
본격적인 도망자 신세가 되어 멕시코 국경으로 가는 도중, 그들은 사막 한가운데 황량하게 위치한 휴게소에 들린다. 그곳에서 편한 복장을 한 그녀들은 화장기 없는 자신의 모습을 더는 신경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노인과 사회적으로 규정짓고 있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교환한다. 델마는 여성용 시계와 귀걸이를 노인이 쓰고 있던 카우보이 모자와 교환한다. 도망가기 편한 차림이라는 현실적인 논의를 떠나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회적 여성성을 버리고, 여성에게는 허가하지 않았던 사회적 남성 이미지를 가진다.
스콧 감독은 <에일리언>(1979), <블레이드 러너>(1982), 블랙레인(1989) 등의 작품으로 할리우드에서 확고한 인지도를 쌓았다. 그는 현실에 기반 하든, 가상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이든 간에 어둡고 남성적인 세계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여성 차별을 주제로 하는 영화인 <델마와 루이스>를 만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의외의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주요 영화사의 제작자들은 제작을 꺼리는 상황이었다. 한 제작자가 이 영화에 대해 “두 계집이 차 안에 있는 얘기라니. 나는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비단 그 개인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 제작 현실 전반에 깔려 있었던 남성 우월적인 성향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소규모 예산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개봉과 함께 제작비의 세 배 이상을 거둬들이는 성공을 거둔다. 뿐만 아니라 그 해 주요 대중 매체들과 학술매체에서도 이 영화에 대한 포럼을 개최할 정도로 많은 대중 및 평론의 관심이 쏠린다.
이 영화는 1991년,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고 얼마 되지 않아 개봉하였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의미를 시대적 맥락과 연결하여 찾아볼 때, 이제 임기를 1년여 마친 새로운 대통령보다는 막 8년의 임기(1981-1989)를 마치고 난 전직 대통령이 레이건의 시대와 함께 생각해보는 게 좋다. 레이건의 1980년대는 미국 사회에서 특히 남성적 힘의 정치 및 권력이 재생산되며 각광받고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는 베트남전의 패배와 경제적 불황, 그리고 제3세계와의 잇따른 협상의 실패로 미국이 한참 위축되었다고 여겨지는 1970년대와의 종언을 고하기 위하여 시작부터 강렬한 국가적 이미지를 내세우던 시기였다. 제포드가 레이건 시대의 할리우드 영화를 분석하면서 이 시대 및 당시 영화의 특징을 백인 남성들의 “강한 몸”으로 정의했듯이, 이 시대는 강인한 국가적 이미지와 위상을 제고하기 위하여 이를 상징할 수 있는 강한 남성성을 대중 매체를 통해 적극 홍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델마와 루이스>는 미국 사회에 페미니즘과 관련된 논의에 새로운 방향성을 던진 작품이었다. 영화는 기존에 있던 가부장제를 고발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전복시킨다. 델마와 루이스는 피해자 여성의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남성들의 폭력과 남성 중심 사회에 저항한다. 피해자에서 범죄자로 변해가며 그들은 자신들을 감싸고 있던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주체적이고 강인한 정체성을 갖춘다. 이런 서사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에서 나오던 남성성과 여성성을 전복시킨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델마와 루이스가 기존 가부장제에 저항한 방법과 그들의 변화, 영화가 제작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델마와 루이스>는 등장인물이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바꾸었고, 끊임없이 저항하는 인물을 통해 기존에 있던 할리우드 영화와 사회에 깔린 가부장적 의식들을 가차 없이 고발했다. 현재 사회에도 가부장적 인식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사회에서는 소극적이고 연약하고 항상 아름다운 모습의 여성성을 요구한다. <델마와 루이스>는 과거의 모습뿐만 아니라 현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과 가 인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페미니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영미문학 페미니즘』 제23권 2호(2015),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의 장르의 전복과 관객성의 문제」, 이형숙
네이버 지식백과, 페미니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15802&cid=43667&categoryId=43667)
네이버 지식백과, 가부장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520081&cid=42121&categoryId=42121)
『인문학연구』 제34집, 「페미니즘 영화에 나타난 가부장 의식의 극복에 대한 연구」, 배미정
「저항하는 여성: 여성해방과 여성연대알프레드 되블린의 소설『두 여자 친구와 독살사건』과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중심으로 -」, 한국헤세학회, 2017, 오동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