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혁신파크 Jul 26. 2019

우리가 버린 그 쓰레기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살아 있다. 먹고, 놀고, 마시고, 일하고, 다니고, ...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로, 또 살아 있다는 그 자체로 우리는 에너지와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한다. 이렇게 생산과 소비를 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쓰레기가 생긴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이동이 잦은 도시에서 생기는 쓰레기의 양은 엄청나다. 서울 같은 도시에서 하루에 생기는 쓰레기가 얼마인지 계산한 통계가 있겠지만 굳이 그 숫자를 가져와 인용하지 않아도, 쓰레기가 가득 쌓인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정말 많은 쓰레기’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버린 그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대도시의 쓰레기 처리 시스템은 신속하고 정확해서 몇 시간이면, 길어야 하루면 쓰레기는 사라진다. 쓰레기는 ‘보이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과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어서 아무 데나 버려진 쓰레기도 청소업체의 직원이 곧 치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덕분에 내 집 앞에, 내가 다니는 길 위에는 쓰레기가 없다. 쓰레기가 있다고 해도 나와 상관이 없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아주 아름다우며 완벽한 삶이다.   


수도꼭지만 틀면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지고 쓰레기를 내놓기만 하면 청소차가 와서 알아서 다른 곳으로 치워주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본인을 행운아로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한 환경에 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요점은 따로 있다. 그건 세상 어디에도 ‘다른 곳’은 없다는 것이다.

[사이언스 앤 더 시티: 과학은 어떻게 도시를 작동시키는가], 로리 윙클리스


하지만 쓰레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이른 바 쓰레기대란으로 불린 사건을 기억한다. 재활용수거업체에서 쓰레기와 함께 가져가던 폐플라스틱과 폐비닐을 더 이상 수거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개인이며 나라며, 아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는 사이에 집안에, 마당에, 거리에 쓰레기는 쌓여 갔다. 뉴스에서는 그동안 폐플라스틱·폐비닐 쓰레기를 사 오던 중국이 수입중단을 선언하면서 쓰레기 가격이 떨어진 게 원인이라고 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국가 간에 대량으로 쓰레기를 사고 팔며 거래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출처 <한겨레>


작년에 한국은 쓰레기 문제로 국제적 망신을 산 일도 있다. 한국은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신고해서 필리핀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출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법플라스틱 쓰레기였고, 이 사실을 안 필리핀 정부와 환경연대에서 강력하게 항의해 결국 6500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우리나라로 되돌아왔다. 내 손을 떠났던, 내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진 줄 알았던 쓰레기였다. 쓰레기는 없어지지 않고 내가 사는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내가 사는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겨지고 있을 뿐이었다. 쓰레기를 ‘다른 곳’으로 보내면 골치 아픈 일이 해결된 것 같지만 사실 쓰레기 문제에서 도시나 국가의 경계는 큰 의미가 없다. 쓰레기는 자연에 바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온 세계가 지구적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 쓰레기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산을 만들고, 바다를 메우고, 공기와 섞이고 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다른 곳’은 없다. 


‘zero-waste’ 그리고 ‘쓰레기 제로’


환경운동가나 관련 전문가가 아니라도 쓰레기 때문에 생명을 잃고 있는 동식물과 황폐화되고 있는 자연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다행히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일상에서 자연과 환경 보호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카페에 갈 때 텀블러를 가져가거나 장을 볼 때 장바구니를 이용하는 등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자는 노력에 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고, 이런 움직임은 유행으로 또 문화로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쓰레기 없는 삶을 지향하는 제로-웨이스트(zero-waste)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도 기존의 생활방식을 바꿔 보자는 반향을 일으키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일회용품 없는 카페나 포장 없이 물건을 파는 가게가 생기는 등 여건과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7월 5일부터 7일까지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적정기술한마당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6개의 주제 발표 중에서 ‘쓰레기 제로’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쓰레기 제로’는 ‘제로-웨이스트’를 한국식 표현으로 바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명의 발표자는 우리 삶 속의 쓰레기에 대해 깊이 고민했을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실천하고 행동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로-웨이스트’, ‘쓰레기 제로’에서 외치고 있는 ‘제로(0)’는 쓰레기를 더했다가 빼서 ‘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쓰레기를 만들지 말자’, ‘쓰레기가 없다’는 의미인 ‘무(無)’에 가까운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똥오줌을 흙으로 


사람은 하루에 세 끼를 먹는다. 아니, 따져 보면 더 먹는다. 우리의 몸은 먹고 마신 것에서 영양분을 흡수하고 남은 것을 똥오줌으로 내보낸다. 동물은 자기가 싼 똥을 덮거나 치울 줄 아는 반면에 인간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그저 버튼을 눌러 흘려보내고 있다. 인간이 만든 최악의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히는 수세식화장실은 적은 양의 똥오줌을 처리하기 위해 그것의 몇 배에 이르는 물과 엄청난 규모의 수도시설을 필요로 한다.  

안철환, 온순환협동조합

온순환협동조합의 안철환 선생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은 흙에서 나오므로 우리 몸에서 배출한 똥오줌도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환을 이야기했다. 강동도시농업공원에서 등애 파리를 활용해 유기성 쓰레기를 퇴비화하는 실험과 과정을 보여 주며, 현재 중앙집중화된 쓰레기 처리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마다 동네마다 시설을 갖추어야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확산될 수 있는데 사람들이 퇴비화시설을 혐오시설로 여기는 부분을 아쉬워했다. 아울러 그는 똥과 오줌을 자원으로 다시 활용해야 한다며 배설물을 퇴비로 만들 수 있는 생태뒷간을 직접 만들었는데 냄새도 나지 않고 자꾸 가고 싶은 화장실이라며 환하게 웃으며 소개했다. 


메이홍웨이, 량슈민 향촌건설센터

중국에서 온 메이홍웨이도 화장실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는 중국의 화장실을 4단계 발전 과정으로 설명하며 현재 수세식 화장실이 인간에게 똥을 처리할 능력을 박탈했다고 강조했다. 그 또한 똥오줌을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화장실 설계도를 띄워 놓고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밖에 그가 보여 준 다른 사례도 매우 흥미로웠다. 흔히 ‘중국’ 하면 떠오르는 대도시나 대자연의 풍경이 아닌 시골에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처음 보고 듣는 것이었다. 가뭄이 심한 지역에서 비를 모아서 반 년 정도 사용한다는 이야기나 버려진 손거울로 태양열을 모아 오븐처럼 사용하는 도구는 무척 생소하고 신기했다. 이렇게 에어컨을 틀어 놓은 현대식 건물에 있는 게 오랜만이라며, 그래서 살짝 배가 아픈 것 같다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그의 말에 왠지 모르게 조금 부끄러워졌다. 


도시에서 먹는 밥  


에코붓다, 최광수 대표

앞에 발표한 두 사람이 도시를 벗어난 곳에서 자연의 순환을 이야기했다면, 다음의 두 사람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에코붓다의 최광수 대표는 소비와 소유에 중독되어 있는 현대인의 마음을 꼬집었다. 정말 이 물건을 사야만 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개인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하며,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는 ‘빈그릇운동’을 소개했다. 나이, 성별, 지역 등을 떠나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항목은 ‘밥’이었다. 사람들은 ‘빈그릇운동’을 통해 하루에 세 번 밥을 먹을 때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끼니당 배출하는 음식물쓰레기의 양을 조사하고, 다른 모임의 데이터와 비교해 보며 음식물쓰레기를 어떻게 줄였는지, 더 줄일 수 있는지를 함께 따져보고 다음에 실천한다. 또한 설거지를 할 때는 통 3개에만 물을 받아 놓고 단계별로 그릇을 닦는데 여러 개개인이 모여서 함께할 때 그 힘이 커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맹@망원기장 프로젝트, 고금숙 매니저

알맹@망원시장 프로젝트의 고금숙 매니저의 말은 조금 거친 데가 있었지만 그의 이야기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기업, 시장, 국가에서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활동하는 개인이 힘들어진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개인의 노력은 사회와 국가의 제도를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끝날 즈음 그의 마무리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는 구의역에서, 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안타깝게 삶을 마감한 두 명의 김 군을 떠올리며 두 사람의 가방에서 나온 컵라면과 일회용젓가락을 가리켰다. 그는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를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사람도 한 번 쓰고 버리는 쓰레기’라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쓰레기 문제는 결코 물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라고 그는 외쳤다. 그 울림이 먹먹하게 발표장을 채웠다. 


모든 것은 돌고 돌게 되어 있다. 상하수도 시스템과 쓰레기 처리 시스템은 우리가 이 책에서 만나는 어떤 시스템들보다 복잡한 주기를 가지며, 매 단계에서 엄청난 엔지니어링과 설비를 요한다. 가까운 장래에 이 주기를 보다 건전하게 관리할 방법들을 도입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야말로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사이언스 앤 더 시티: 과학은 어떻게 도시를 작동시키는가], 로리 윙클리스



조금은 이상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를 말하는, 세네 걸음은 앞서 달리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자니 숨이 가빴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발자국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발표를 다 듣고 나서 문득, 애초에 인간의 삶에 ‘쓰레기’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일이백년 전부터 기술발전과 대량생산의 힘으로 만들게 된 온갖 물건을 쉽게 사고 팔게 되면서, 그 즈음부터 필요 이상의 물건과 순환되지 않는 자원이 쓰레기가 된 것은 아닐까? 그것이 오늘날에 이르러 문제가 될 정도로 많아진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쓰레기를 줄이고 쓰레기를 없애는 데 있어서 삶의 방식을 조금만 되돌려도 괜찮을 것 같다. 어쩌면 앞서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우리보다 먼저 방향을 바꾸어 뒤돌아 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앞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쫓아가야 한다고 하니 막막했는데 되돌아가자고 하니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2018년 서울혁신파크는 '플라스틱 제로'를 선언했다. 혁신파크에 있는 많은 기관, 단체, 회사는 각자 나름대로 쓰레기 없는 삶을 위해 고민하고 움직이고 있다. 이번 적정기술한마당을 통해서 ‘쓰레기 제로’ 운동과 그 가치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넓은 지역으로 퍼졌기를 기대해 본다. 


제로라는 게임이 있다. 참가자에게는 손을 모은 채 엄지손가락 한 개나 두 개를 들거나 들지 않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참가자 중에 한 명이 말한 숫자와 모든 참가자가 든 엄지손가락 수가 같으면 벌칙을 받는다. 이 게임의 백미는 ‘제로’를 외쳐서 걸릴 때다. 아무도 엄지손가락을 들지 않았을 때, 모두가 제로에 동참했을 때만 느껴지는 희열이 있다. 누군가 “쓰레기 제로”를 외치고 모두가 쓰레기를 하나도 내 놓지 않는 삶을 상상해 본다. 생각만으로, 짜릿하다. 



 * 발표자

- 유기성 쓰레기 현명하게 활용하기 / 안철환, 온순환협동조합

- 중국의 적정기술: 생활속의 응용과 보급 ‘허난성 녹색방주 농장과 신향촌 건설운동 / 메이홍웨이, 량슈민 향촌건설센터

- 청정삶터 만들기와 행복한 불편 / 최광수, 에코붓다

- 쓰레기가 되지 않는 삶들 / 고금숙, 쓰레기덕질 오거나이저 


글, 사진 ㅣ 황순규 (빛움 대표)  

작가의 이전글 2019 서울적정기술한마당, 그 열띤 현장 속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