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가의 단어 서른한 번째 키워드 '스릴'
'혁신가의 단어'는 혁신가 개인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서울혁신파크 활동단체 릴레이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슬로리 프로젝트는, 엄청나게 빨리 만들어지고, 쓰이고, 버려지는 쓰레기들 있잖아요. 그중에서도 폐현수막에 대해 천천히 고민하고, 길게 내다보고, 오랫동안 쓰이길 바라는 마음을 바탕으로 업사이클 실험을 하고 있어요. 몇 년 전에, 우연히 기회가 생겨서 아이오와 시티라고 시카고 옆에 있는 미국 중부의 소도시에서 1년 정도 휴식 시간을 보내고 왔어요.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느낄 수 없었던 한적하고 여유로운 전원생활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우리나라는 광고나 홍보물로 소비되는 현수막이 유독 많은데, 그곳은 광고공해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없었죠. 현수막이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많이 쓰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고, 돌아가면 어떤 걸 해볼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죠.”
“제한된 상황과 조건에서 창조적인 일을 할 때 스릴을 느껴요. 특히나 재료나 공간에 제약이 있을 때 더 그런데요, 몇 년 전 해외전시에 연출 보조로 참가했을 때였어요. 영상을 투사하는 설치물이 배송사고가 나서 못 오게 된 거예요. 당장 다음 날까지 전시 세팅이 들어가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갤러리 쪽에 대체할 만한 재료가 있는지 물어봤어요. 결국 폼보드나 천을 모아서 뚝딱뚝딱 조립해서 가변적으로 움직이는 대체 구조물을 만들어서 제안했는데, 작가분이 괜찮은 것 같다고 오케이해 주셨어요. 그때 ‘아, 이런 재미도 있구나’라고 느낀 것 같아요. 어떤 일이든 계획을 짜는 것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해나가야 하지만 생각처럼 안될 때도 있잖아요. 그때 머리를 굴려서 창의적인 방향으로 생각해보는 것, 그런 게 재밌는 것 같아요.”
“영상 쪽 일을 할 때, 사람들이 내가 만든 작업물에 긍정적인 감정만 느끼게 하기보다는,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살아가는 데 힘이 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슬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디자이너의 사회적, 윤리적 책임을 생각하게 됐거든요. 아무래도 업사이클링이다 보니까 책임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런 실험들을 혁신파크에서 오랫동안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저한테는 여기가 첫 둥지거든요. 작업실로 얻은 뜻 깊은 장소이고, 여기 모인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가능성과 확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글┃이나라 사진┃최효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