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가의 자리 #01 함승호의 적정기술공방
“적정기술하는 기쁨은, 누구나 따뜻한 방에서 살 수 있다는 파장을 만드는 거예요.”
세 평 남짓 작은 방에 책상과 의자가 흐트러져 있다. 비교적 가지런히 정돈된 옆 사무실에 비해 꽤 오랜 시간 방치된 듯하다. 불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두 공간의 공기도 사뭇 다르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흐트러진 방의 공기가 햇살을 더 오래 머금은 듯 온기가 느껴진다. 이 두 공간은 겨우내 적정기술공방의 실험기지였다.
사람들이 쓰지 않던 안 쪽 방에 단열 창호를 설치하고 단열재로 벽을 만들어 공간의 에너지 효율을 높인 것이다. 실내온도를 비교했더니 차이는 확연했다. 지난겨울 서울혁신파크 내 에너지 TF에서 활동하며 함께 시도한 로켓매스히터에 이은 적정기술공방의 두 번째 프로젝트인 셈이다. 적정기술은 적은 비용과 노동,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소재로 누구나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안 기술을 말한다.
“건강한 집을 고민하다 적정기술을 만났어요”
함 대표가 적정기술을 만난 건 10년 전. 뇌졸중이 온 뒤 잃어버린 운동신경을 회복하고 새 삶을 계획하면서 부터다.
“가장 어리석은 방법으로 인생에 대한 자각을 한 거죠. ‘아, 내가 잘 못 살았구나...’ 자연스레 건강한 삶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그동안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나.’ 생각했어요. 가장 큰 원인이 ‘불안한 미래’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그때부터 한 1년 남짓 밀양에서 농사지으며 살았어요. 나한테 필요한 최소한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거든요. 5일장 설 때마다 문화생활도 즐기고 한 달에 영화도 두 편씩 봤는데, 핸드폰 요금 포함해 딱 60만 원이 들더라고요. ‘아, 이 정도면 충분하구나.’ 그때부터 무슨 일을 하건 자신이 생겼어요. 건강한 삶, 건강한 집에 대해 계속 고민하다보니 생태주택과 인연이 닿았고, 집짓는 기술을 영상으로 찍기 시작했죠. 그땐 그게 적정기술인지 몰랐지만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큰 추동력은 ‘자발성’
생태건축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건강한 소재, 건강한 기술과 관계를 바탕으로 집을 지었다. 무엇보다 경험과 지식을 대가 없이 인터넷을 통해 공유했다.
“저도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라는 온라인 카페에 글로 이해하기 힘든 생활 기술을 영상으로 공개했어요. 반응이 어마어마했죠. 우리 모두 전문 기술자가 아니었는데 전문가들이 기술적인 코멘트를 달고 더 업그레이드한 방법을 이야기했어요. 다중이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었던 셈이에요. 정말 멋진 결과물들이 만들어지더라고요. 지금까지도 벽난로, 전통구들, 스트로베일 건축 등 적정기술 전반에 걸친 다양한 네트워크 그룹에 함께하고 있어요. 난로는 그룹 ‘난장’이, 생태건축은 건축가와 소비자들의 네트워크인 ‘빌더들의 수다’가 비상시로 운영하죠. ‘적정기술공방’은 작년부터 도시적정기술 분야를 새롭게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건축재생이나 주거, 난방분야는 도시 문제가 더 심각하거든요. 혁신파크에서 만난 두꺼비하우징을 통해 실상을 알았어요. 적정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연구 중이고 혁신파크에서 하는 여러 시도들이 결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적정기술은 조금의 불편함을 견디는 것”
그는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지만, 점점 거꾸로만 가는 사회에서 그럼에도 그가 치열하게 ‘적정기술’을 연구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이유는, 적정기술이 합리적인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적정기술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해요. 다만,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선 배우는 사람의 노동이 필요하죠. 적정기술은 그 조금의 불편함을 견디는 거예요. 적정기술공방 활동이 개인에게 요구하는 건 ‘자립을 위한 기술’,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와 태도예요. 사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적정기술을 쓰고 있었어요. 산업시대가 도래하면서 100년 사이 그것을 잃어 온 거죠. 일방적 시장의 공급으로부터 길들여진 거예요. 산업자본주의가 독점해버린 기술을 다시 사람이 갖고 와야죠. 사실, 사회 문제들 대부분이 산업과 자본, 기술의 종속으로부터 시작됐어요. 인간관계가 재편됐고, 네트워크와 네트워크의 반목이 생기기 시작했죠. 적정기술운동은 그것을 자각하는 과정이에요. 다시 모두가 기술을 공유하는 문화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리겠지만, 누구라도 안 하면 안 돼요. 각 분야에서 인류가 만든 잘못된 문명을 회복하는 과정을 뼈아프게 해야만 해요.”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의 얼굴을 한 기술
“제가 한창 강의할 땐 1년에 20일 정도 밖에 집에 못 들어갔어요. 밥만 줘도 교육을 하러 갔죠. 한 번은 그렇게 전국을 돌다 집에 왔는데 택배가 하나 놓여 있었어요. 비를 맞아 라벨이 다 지워졌지만, 얼추 보니 지리산 어디예요. 지리산에 할머니 세 분이 함께 농사지으며 사시던 낡은 집 구들을 고쳐드린 적이 있거든요. 고맙다며 수확한 작물을 보내주신 거예요. 그때 느꼈어요. 사람에 감동을 주는 기술이란 이런 거구나. ‘아, 이 일을 계속 해야겠구나.’”
지난 10년 전국을 돌며 적정기술공방이 만들어 온 파장은 조용하고 거침없었다. 밀양송전탑투쟁현장과 제주강정마을, 지리산 기슭의 낡은 주택과 서울 은평 구산동에 위치한 어느 작은 빌라까지 적정기술이 만든 공간은 온기를 만들어냈다. 돌고 돌아, 이젠 서울이다.
글, 사진ㅣ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문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