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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an 12. 2022

[미식일기] 마르게리따

얇고 단순한, 이탈리아식 백반

처음 이탈리안 피자를 맛봤던 것은 20년도 더 된 조금 오래된 기억.



어머니를 따라간 서울의 어느 동네에 있는 롯데백화점의 맨 위층 고급 푸드코트들이 즐비해있는 곳에서였다.



여태까지 피자라고는 냉동피자와 피자헛이나 동네 피자집들이 내놓던 두껍고 토핑이 가득한 미국식 피자만 알고 있던 나에게 상아색의 칠을 한 둥그스런 이탈리아식 전통 화덕에서 기다란 막대기판으로 구워내던 전통 피자는 생소한 것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하니 어머니를 졸라 피자 1판만 4달라하여 조금 기다린 후에 내 앞에 등장한 이탈리안 피자는 생각보다 작은 것이었다. (그때는 이탈리아에서 피자는 1인 1 피자라는 것을 몰랐으니) '왜 이리 작아?'라고 생각했던 나는 파사삭하며 가볍게 갈라지던 피자 1조각을 집어 들어 물었다.



새하얀 두꺼운 종이와도 같이 얇은 두께에 살짝 화덕에서 그을려 누르스름한 자욱들이 남아있는 도우가 입안에서 바스락거렸고 새콤하고 진득한 토마토 맛이 갓 나온 치즈와 어울려 입안에서 금세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이탈리안 피자'라는 맛의 신세계를 경험한 나는 그 피자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러한 맛을 경험하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해외의 어느 지역에서 몇 년을 살았었는데 그 동네에 마침 이탈리안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피자와 파스타집이 있었고 그 이탈리안 피자 맛을 다시 볼 수 있었지만, 한국에 들어와서는 다시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의 피자 선호도를 생각한다면 쉽지 않은 일이라, 서울에나 가야 겨우 맛볼 수 있는 이태리식 피자.



그 피자 맛을 오랫동안 찾아다녔고, 요즘은 동네에서 단골로 다니는 피자집에서 맛볼 수 있게 되어 참 즐거운 것이다. 바삭하고 얇은 도우에 산뜻하고 새콤한 토마토 페이스트에 올라간 약간의 치즈와 향긋하고 달달한 냄새를 뿜는 생바질.


'마르게리따'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레시피와 재료가 거의 정형화되어있기에 요리사의 기술과 장비에 따라 맛이 갈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적어도 이 피자펍을 왕래하며 내 어린 시절 맛보던 그 이탈리아식 피자의 추억을 되찾을 수 있음이 기쁠 뿐이다. 구관이 명관이고, 단순한 것이 최고라는 말도 있듯이 마르게리따가 딱 그에 걸맞은 피자다.



얇고 단순하고 심심하네? 라고 생각하고 먹다 보면 그 바삭함과 심심한 맛에 피자도 1,2판 먹고 맥주도 1,2병 따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적어도 다시 내가 어릴 적과 사춘기로 돌아간 기분을 느낀다.



나에게 적어도 음식은 끼니와 맛을 즐기는 그 이상이다. 맛은 추억이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사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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