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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an 13. 2022

[미식일기] 작은성, 강릉

화재를 딛고 일어난 작지만, 중식 거인

재작년에 서부시장 옆에 자그마하게 오픈하는 것을 보고 여태까지 지나쳐왔던 중국집. 작년 해당 건물에서 크게 일어났던 불로 인해서 한번 전소가 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그 이름 '작은성' 그대로 작지만 단단하게 다시 재건하시고 일어난 중국집.



나이가 좀 있으신 사장님 혼자서 하시는 중국집이라서 왠지 사연 있을 것 같은 그런 작은 식당이라 가볍게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터미널 간이식당과 같은 작은 규모와 너무나도 저렴한 가격에 놀란다. 어떤 중국집인지 궁금하니 가장 기본적인 짜장면에 탕수육 1인 세트를 시킨다. 중국집 1인 세트가 8,000원이라니 요즘 같은 시대에 대학교 앞도 아닌 강릉 서부시장에서 실화인가 싶다.



홀과 뻥 뚫려서 그대로 보이는 부엌에서 웍질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음식이 빠르게 나온다. 내가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는 동시에 부엌에서는 본인 점심 드실 것을 같이 하셨는지 짜장면 면치기 하는 소리가 후루룩하며 들려온다.



내가 좋아하는 달큰하고 고소하고 기름진 짜장에 적당히 큼직한 감자와 양파가 슴슴히 들어가고 고기가 틈틈이 보이는 옛날 짜장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 단품으로 시키면 3,000원이라는데 이게 3천원짜리 짜장면의 양인가 싶다.



탕수육은 옛날 어릴 적 동네에서 많이 팔던 케첩과 설탕을 적절히 넣어 달콤하고 감칠맛 나는 옛날 탕수육 맛. 후지에 입힌 쫄깃하고 바삭한 튀김이 잘 어울리니 다음에 오면 튀김만 시켜서 간장을 찍어 먹을까 싶다. 옛날 스타일대로 부먹으로 나오니, 부먹에 덮여 살짝 눅눅해진 탕수육이 제법 달큰하니 맛이 좋다.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으니 옛날에 처음으로 친구들을 불러서 생일잔치했던 날이 기억난다.


음식 솜씨가 생일잔치를 할 수 있을 만큼 좋지는 않았던 어머니는 집에서 생일파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었나 보다. 생일에도 친구들 데려오라는 말을 하지는 않으셨었으니.



어느 날은 내가 뒷동 살던 태원이와 아래층 살던 주현이에게 오늘은 내 생일이니 집에 놀러 오라고 말했었다. 그러고서 어머니께 내가 친구들한테 생일이니 집으로 놀러 오라고 말했다는 것을 얘기하던 동시에 얼마 있지 않아 그 친구들이 선물을 들고 집으로 바로 왔다. 적지 않게 당황하신 어머니께서는 동네 중국집에서 빠르게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주셨고 친구들과 처음으로 함께 한 생일잔치는 짜장면과 탕수육 파티였다.



옛날에 먹던 중국음식들에 대한 추억에 빠져 작은성의 1인셋을 게걸스럽게 먹다 보니 부엌에 있던 사장님이 나와서 앉으신다.



"사장님, 짜장면이 어마어마하게 맛있는데요"



엷게 웃음을 띄며 사장님은 "입에 좀 맞으세요?" 하시고는 말을 이어나가신다.


"어차피 이거 음식이란 게 나도 나와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니까, 내가 먹는 것만큼 하는 거예요. 반죽도 손으로 해놓고 그날그날 나와서 뽑고, 재료도 오늘 아침에 나와서 썰어놓고, 면이나 양념에 들어가는 감자가루나 조미료도 좀 덜 넣고.... 괜히 돈만 생각해서 만들면 안 돼, 어차피 나도 먹을 건데. 그 정도는 만들어야지."



사장님의 검은 앞치마와 바지에 묻은 밀가루와 웍질의 흔적들이 그 말을 대변하는 듯하다. 짜장면과 탕수육이 정말 맛있으니 짬뽕 맛이 궁금하여 짬뽕도 영접해본다. 시뻘겋고 매콤한, 텁텁하지는 않은. 진한 해물맛이 난다. 어디 8,9천 원씩 받는 식당처럼 커다란 새우나 전복, 굴이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일 끝나고 둘러앉아 소주 1잔 곁들이며 먹는 그런 동네 흔한 짬뽕. 마른 대왕오징어살과 국물에 젖어 질겅거리기까지 하는 홍합살이지만 매콤한 국물에 면을 들이키며 '크으-'하고 마음을 뜨끈 거리기에는 충분하다.



작은성은 분명 그 음식들의 맛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SNS와 방송을 오르내리며 소문이 나고 사람들이 몰려서 사 먹고 한입 먹자마자 머릿속에 우주와 '미미'가 울려 퍼지는 그런 중국집은 아니다. 혼자 운영하셔서 배달이 되는 곳이 아니다. '꽤나 맛있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가면 실망할 수도 있다.



다만, 착한 가격과 그 가격을 훨씬 뛰어넘는 따뜻하고, 푸짐하고,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맛을 가진 그런 중국집이다. 소박한 맛이다.



"사장님, 오늘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또 올게요, 오래오래 장사하세요."



평소에는 잘 듣지 못하는 말이신지 머쓱해하시며 어색하게 사장님은 웃으신다.



내가 가게를 나올 때쯤에는 근처에서 스쿠터를 타고 나온 동네 아저씨, 근처 시장에서 일하는 가게 직원 등이 짬뽕과 짜장면을 하나씩 시켜 몸을 녹이고 있었다.



다음에 또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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