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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an 14. 2022

감귤, 우연한.

어느 어머니의 자식 사랑과 그리움

프리랜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친구와 이런저런 통화를 하던 중, 밤낮으로 커피에 헌신하느라 정신도 그라인더에 갈아 내려먹는 녀석이 뜬금없이,



"형, 귤 먹을래요?" 란다.



따로 과일을 사서 챙겨 먹는 친구가 아닌데, 삼시세끼 밥이라도 잘 챙겨 먹으면 좋겠구먼.



"귤?"



"갑자기 생겨버려서요"



"갑자기 생기다니, 니가 산거 아냐?"



"아, 그게...."



커피장이의 말은 이러했다. 며칠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단다.



"여보세요"



"아이구, 형식(가명)아 엄마다. 왜 그리 연락이 안되니."



"예? 엄마요? 제 어머니는 이 번호가 아니신데, 전화를 잘못 거신 것 같습니다."



"엣? 그래요? 에구, 죄송합니다. 이상하다... 이거 우리 아들 번호가 맞는데"



"음, 이 전화를 제가 살 때 번호를 안 바꾸고 그대로 쓰고 있기는 하거든요"



"아.... 아들이랑 연락 안 한 지 오래되어서요, 그래도 귤이나 보내주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그렇게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형식(가명)이네 어머님은 그대로 전화를 끊으셨다는데,



"형, 근데 다시 전화가 오셔서는 그냥 감귤 아들한테 이제 못 보내니 그냥 저 받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죄송하기는 한데 계속 괜찮으니 받으라고 하셔서 큰 박스로 1개 받았지 뭐예요. 제주도에서 온 감귤이에요."



그렇게 어떻게 하다가 건네받게 된 제주감귤의 양이 너무 많아 나도 나눔을 받게 되었다. 올해 코로나와 태풍에도 불구 역경을 이기고 태어난 감귤이 탱글하고 달고 입안에서 약간의 신맛과 청량감이 울려 퍼진다. 말랑거리는 감귤을 씹으며 생각해본다.



커피장이 친구의 말을 들은 바로는, 분명 그 어머니와 아들은 제주도에서 함께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 아들은 섬이 싫증이 나던, 먹고살기가 쉽지 않던, 혹은 본토에 올라와 살고 싶은 마음에 타지에서 살았을 것이다. 아니면 제주도 본가에서 부모님과 크게 다툰 후 집을 떠났을 수도 있다.



한반도로 올라와 살던 중 부모님과의 관계가 더 악화되었거나, 부모님과 연락하는 것도 싫어져 버린 아들은 휴대폰을 바꾸며 자신의 번호도 바꾸고 부모님께는 알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때, 부모님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 손절과 호적파기까지 생각했던 나로서도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관계가 되어버렸음에도 불구 매년 본가에서 수확한 달고 맛있는 상등품 감귤을 자식에게 보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며,



나는 쉽게 그 한쪽의 마음에 손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남보다 더 못한 관계가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자식에게 뭐라도 보내주려는 부모의 마음, 그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걸까.



그리고 자신의 아들과 비슷한 연배인 커피장이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니 아들에 대한 아쉬움, 미안함, 섭섭함 등이 밀려 나오지만 그래도 그 밑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끝까지 남아있으셨나 보다. 감귤을 보내면서 사과 혹은 관계 회복을 원하셨던 것은 아닐까 싶다.



아들에게 보낼 수 없으니, 그 미안한 마음이나 이유 없는 죄책감을 해소 혹은 속죄하려나마 커피장이 친구에게 감귤을 대신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나마 몇 마디 남겨야겠다



커피장이야, 네가 건네준 감귤 줜나 맛있다. 와이프도 많이 좋아해, 고마워.



제주도에서 복잡한 마음으로 감귤 보내셨을 이름 모를 누군가의 어머니, 이렇게 대신 먹어서 참 송구스럽습니다만, 뭉클한 마음 한 박스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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