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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an 15. 2022

사라진 추억의 맛들, 속초

다시는 맛볼 수 없는 애석함과 공격적 홍보의 중요성에 대하여

그저 다른 도시에서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이유로 강릉으로 이사를 와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살기 전까지, 나는 고성과 속초에서 수년간을 살며 이런저런 맛집들을 다니며 즐거운 미식 생활을 했었다.



나에게 맛집은 간단하다, 누구에게나 맛집은 맛있는 메뉴가 있으면 그만이지만 '아, 맛있다'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집이다. 메뉴 하나, 음식 하나만으로 맛과 사장님의 실력과 철학이 듬뿍 담겨있는 집들을 나는 개인적으로 맛집으로 부르며 선호하는 편이다.



속초에서 살 때, 곧잘 가던 맛집은 수제 햄버거집, 일식 라면집, 일본 가정식 집, 경양식 돈가스집, 파스타집, 수타 가락국수 집과 아인슈페너가 훌륭한 카페 2곳이 있었다. 속초도 강릉만큼이나 더 관광객들에게 도시의 수입을 의존(?)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외식, 요식업소들이 흥망성쇠를 이어가며 그 시내를 꾸미는 곳이었다.



이전에 호텔에서 스페인 요리를 전문으로 하던 사장님께서 직접 40도가 넘는 온도에서 8시간 이상 돼지 사골육수 등을 졸여가며 정성으로 만들어낸 돈코츠라멘과 육즙이 넘쳐흐르는 수제 교자만두를 주력으로 하던 일식 라멘집이 있었다. 매일 '죽겠어요'라고 비명을 지르지만 묵묵히 수제 라멘 수프와 입안에 고기 맛이 흘러넘치는 부들거리는 차슈, 교자만두를 내놓으시는 가성비 맛집이었다. 돈코츠 라멘 국물을 한입 머금으면 친가가 있는 부산의 어느 돼지국밥집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훌륭한 국물이었고, 강릉의 있는 사업가들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속초에서 계속 장사를 하셨었다. 단골들이나 지나가는 손님들도 많아서 지금도 이 라멘 가게의 상호를 검색하면 다수의 블로그 글이 결과물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라멘 외에도 시즌별로 내놓는 쌀국수와 수제 일식 돈가스도 잊지 못할 메뉴들이다. 아직도 매일 아침마다 시장에서 직접 장을 봐오실 때 가끔 마주치던 사장님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일본과 대한민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며 일본 불매 운동이 일어났는데 속초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 라멘집도 불매할 곳으로 (아마도 일식 스타일의 요식업들은 대부분 포함되었을 것이다) 지목되었다. 사장님은 물론 모든 식재료들은 국산 혹은 중국산이었는데 말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이후로 코로나19가 터지며 가게는 많은 단골들과 손님들을 확보했음에도 불구 경영악화 및 사장님의 건강문제로 작년 가을 '이제는 폐업했어요'라는 한마디와 함께 내 기억에만 남아있다. 아마 강릉이나 좀 더 큰 다른 수도권의 도시에서 했다면 적어도 중, 대박은 했을 곳일 텐데.



속초의 부둣가 뒷골목에는 정육점 사장 출신으로 매우 양심적인 운영을 하던 돈가스 가게도 있었다. 그날 팔리지 않은 고기들은 모두 폐기하시고 그날그날 2~30개의 돈가스만을 만들어 운영하시던 가게였다.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던 상큼하고 감칠맛 넘치고 알싸한 매운맛이 있던 청양고추간장 드레싱이 그립다.



속초 먹자골목 근처에 있던 다른 경양식 돈가스와 초밥을 주력으로 하던 돈가스 집은 매장에서 메뉴를 시키면 일반 돈가스를 한 그릇 더 주던 인심이 후한 가게였다. 주로 근처의 직장인과 가정집에 배달을 주력으로 돈가스, 치즈돈가스, 생선가스와 연어초밥을 주로 하던 가게였는데 지리적 위치상 그리 눈에 띄지는 않았다. 하지만 돈가스등의 품질이 어디서나 비빌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가게였고 나는 갈 때마다 사장님이 서비스로 주시던 돈가스를 1~2개씩은 더 얻어먹으며 즐거운 곳이었다. 단골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돈가스라는 메뉴가 매일 먹을 수 있는 메뉴도 아닐뿐더러 그 외에는 손님들이 많이 있지는 않았다. 위의 가게와 이 가게는 어느 날 조용히 소리 소문 없이 그 자리에서 증발했다.


강릉의 키아오라 버거만큼이나 훌륭한 홍두깨살 수제 패티, 브리오슈 번, 시그니처 특제소스를 자랑으로 하던 카페를 겸하던 수제버거 집도 있었다. 가격은 꽤 있는 편이었지만 누구나 맛을 보면 '차원이 다르다'라는 평을 할 정도의 수제버거로 한국인들보다는 외국인들이 주로 단골로 오던 가게였다. 사장님 부부는 한국 모대학의 영양학과를 졸업하고 북미로 넘어가 호텔의 어느 유명한 주방장에게 직접 수제버거를 전수받아온 분들이셨다.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 가득 넘치는 훈연 맛과 고기 맛,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폭신하고 버터향이 가득한 브리오슈와 그에 어울리는 알싸하면서 고소한 소스. 하지만 가격이 높아서 단골들도 자주 오지는 못했고 주로 동네 어르신들이나 여사님들의 커피 모임 장소로 많이 활용되었지만 일일 매상이 불규칙적이며 높지는 않았다. 내가 일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며 집으로 퇴근하던 어느 날 밤, 사장님 부부가 매장의 물품들을 정리해서 SUV와 트럭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았고 나는 '그냥 옮기시는 거죠..? 폐업 아니시죠?'라고 한마디 말 묻지도 못한 채 내 인생 버거집이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눈앞에서 본 것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가게는 일식 라면집, 일식 가정식 집, 돈가스집 2개, 카페 2개, 파스타집, 수제버거, 수타 가락국수 집이다. 그중 아직까지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가게는 5개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는 바에 의하면 이 남아있는 5개 중에서도 2곳은 사장님의 개인적인 사정이나 코로나19에 의한 영향을 많이 받아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 몇 개의 업소들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자면...



파스타집은 테이블은 3,4개 정도이고 7500~9500원 정도의 가성비 집이지만 이탈리아 어르신들이 오셔서 파스타들을 맛보시고는 엄지를 들어 올릴 정도로 훌륭하며 외국인들이 한국인들만큼이나 많이 찾는 것을 눈으로 직접 자주 보았다 (그만큼 내가 이 파스타집의 죽돌이였다는 뜻이다, 영업 마감 이후에 사장님과 노닥거리고 마감을 같이 할 정도로). 알리오 올리오, 크림 베이스 파스타, 뽀모도로, 라구 등 모든 메뉴들이 거를 타선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스파게티, 링귀니 등의 면 선택이 가능하다. 그리고 제일 좋은 점은 사장님께서 손님들과의 대화를 선호할 정도로 인간적이며 인테리어가 독특하다. 비록 사장님의 건강과 개인 사정에 의해서 휴업하는 시간이 곧잘 있지만.



그리고 나머지 수타 가락국수 집과 카페들은 지리적인 이점이 많이 없음에도 불구 손님들의 웨이팅이 길거나 끊김이 없거나 건물주시거나 원래 재정적으로 보유하신 것이 많아서 아직까지는 성업 중이다. 이전 글의 마지막에 내가 왜 이런 글들을 작성하고 있는지 질문했었다, 답을 드리자면.... 지금은 없는 업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장님의 실력과 음식들이 평균 수준 이상으로 훌륭했고 대도시에서 영업을 했어도 지지 않을 만큼 저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홍보'가 매우... 그것도 매우 미비했다. 당시에는 지금만큼 인스타 홍보가 활성화되어있지 않아서 네이버 블로그와 페이스북 홍보가 주를 이었는데 주로 1명, 2명의 사장님들이라 홍보할 시간이 없거나, 홍보에 관심이 없거나, 홍보할 줄을 몰랐거나 등의 이유다. 지금도 생각하건대, 지금은 사라진 그 안타까운 가게들이 당시에 온라인 및 오프라인 홍보에 공격적인 투자를 했다면 지금은 좀 어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자칭 '미식가'로서 그저 가슴이 미어지게 슬프지만.


SBS 골목식당에서 백종원 대표는 '손님들의 반응이 오기까지는 최소 6개월이 걸린다'라고 했었다, 음식의 맛과 서비스 등이 가게의 매출과 성공적인 손님들의 꾸준한 방문으로 이어지기까지는 꾸준한 시간이 걸리고 순간적 혹은 반복적인 실수와 잘못으로 손님들이 사라지는 것도 한순간이라는 부연 설명을 했었다. 실력과 메뉴가 훌륭하다면 손님들이 찾아올 수 있는 기반은 잡혀있는 것이며,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릴까?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강릉에 있는 여러 요식업 사장님들(특히 내가 단골로 가는 사장님들)께서는 매우 희망적이며 긍정적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점이 있으면 '나만 알고 싶다' 혹은 '이렇게 맛있는 것을 나만 먹을 수는 없다'는 반응으로 갈린다고 생각한다. '나만 알고 싶다'라는 손님들은 입소문에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후자의 경우 입소문으로 이어지며 손님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하지만 문제는 후자와 같은 손님들을 유치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SNS 등을 통한 공격적인 온라인 홍보는 그러한 손님들이 찾아올 확률을 더 높인다.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던 시절에는 입소문으로 사람들이 찾아왔기 때문에 신장개업을 하는 업소에서 그 시절을 생각하며 메뉴가 정립된 이후 홍보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내가 알던 그 역사 속의 맛집들과 같아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릉에 계신 사장님들께서는 SNS와 배민 댓글을 통한 홍보, 손님들과의 소통에 열심이신 분들이 많고 유튜브도 아주 지혜롭게 활용하신다. 국지적인 영역으로만은 손님들을 가게가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유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고정적인 단골들의 수를 유지하면서 전국적으로 오며가며하는, 지나가는 손님들을 늘려야 하는 것이고 온라인 홍보는 그것에 안성맞춤이다. 요즘 시대에는 어르신들도 SNS를 많이 하시는데 젊은 손님들은 그에 더 영향을 받지 않겠는가?



그리고 사족을 더하자면.... 나와 같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입맛을 인정받으며 입소문 내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응 자화자찬 거기까지, 뇌절 그만)만 많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진 손님들을 늘리는 것이 적극적인 홍보이고 (그리고 그만큼 진상 손님들이 올 확률도 조금 늘겠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면 안 된다) 최선이다. 강릉에 있는 수많은 요식업, 그리고 소상공인 분들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온라인 홍보는 업소의 지리적인 취약점과 불황을 타파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체계적인 통계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닌, 여러 요식업 사장님들과의 교류와 대화를 통한 정보수집과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지만 홍보의 중요성은 요식업뿐만이 아닌 일반 기업에서도 중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강릉에 계신 요식업 사장님들께서는 앞으로도 꾸준한 홍보를 이어가시기를 소망한다.



내가 이렇게 진지하게 각 잡고 쓰는 이유는... 속초에 있던 그 사라진 단골가게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슬프기도 하고 본인은 단골 가게를 매우 아끼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맛집들에 애착을 갖고 지금도 사라진 집들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도시를 다니며 (물론 도보와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는 곳) 음식점들을 들쑤시며 찾아내는 것을 좋아하고 정말 맛있는 집에는 진심 어린 칭찬과 피드백을 아끼지 않으며 사장님들의 이야기와 철학 경청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내 단골집에 애정이 가고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누구에게 내놓아도 아깝지 않은 맛을 가진 집들이 가능하면 최대한 오래 영업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인스타에 가끔 음식점들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



차설, 개인적인 경험과 부족한 지식 그리고 자화자찬이 가득한 글을 읽어주심에 감사드린다. 진지한 글은 나중에 또 무언가 생각이 나면 쓰게 되겠지. 강릉 요식업과 소상공인 분들의 꾸준한 성공을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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