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원희네닭갈비, 삼척

마음의 티끌 날리는, 고소칼칼한 물닭맛

by 김고로

"도계에서 물닭갈비 드셔 보셨나요? 삼척에 속한 지역인데요, 태백과 더 가깝죠."


"도계요..? 그 뭐냐, G대 삼척캠퍼스 있는 그곳이요?"


"네, 맞아요. 삼척은 바닷가의 이미지가 강한데, 도계읍은 탄광촌으로 마을이 시작된 거라 삼척에 속한 지역이지만 삼척의 바닷가 이미지와는 동 떨어진 산동네예요."


"G대 삼척캠퍼스라면 캠퍼스가 산에 있어서 버스로 통학을 하느라 지각이 없는, 출석 아니면 결석 밖에 없다는 그 전설의 대학교잖아요?"


"네... 제가 거기에서 대학교를 다녔었죠..."


"아, 그럼 도계읍을 꽤 아시겠네요."


이쁜 여자와 나는 추석에 부산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여행을 조금 더 하고 싶다는 이쁜 여자의 부탁에 태백에서 1박을 하고 왔었는데 그때 태백과 삼척의 지역음식으로 유명한 물닭갈비를 먹었던 나였다.


태백이 탄광으로 부흥했던 도시라서, 광부들이 퇴근 후 즐겨먹던 물닭갈비가 유명한 식당이 많았고 연휴를 맞아 잠시 태백에 들러 물닭갈비를 먹으려고 줄을 서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서 나도 물닭갈비를 겨우겨우 사람 많은 곳을 비집고 한자리 차지해 먹을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입맛에 맞지는 않았다. 추석 이후에 근처 단골 카페의 사장님께 태백을 다녀와서 물닭갈비에 대한 얘기를 드리니 마침 도계에서 대학교를 다니셨던 사장님은 도계에 있는 맛있는 집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매우 감사하게도.


이런저런 식당들을 추천받았지만 나는 태백에서 먹었던 물닭갈비에 대한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기에 이번 방문은 물닭갈비 집 한 곳과 카페 사장님께서 추천해주신 괜찮은 카페 한 곳, 이렇게만 들렀다가 오기로 결정했다. 한국철도공사에 감사하게도 강릉에서 출발해 강원도 산간지방을 경유하는 산타열차를 타면 도계로 한 번에 올 수 있어서 이쁜 여자와 나는 도계로 향하는 산타열차에 가볍게 몸을 실었다.


도계읍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라 상당히 추운 가을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단단히 껴입고 도착하니 생각보다 도계는 가을이 따뜻한 낮공기였다. 도계에 도착하니 정오가 넘은 바람직한 점심시간이라 우리는 배가 무지하게 고팠다. 도계역에서 오늘 가기로 마음먹은 물닭갈비 집인 '원희네닭갈비'까지는 1킬로미터 남짓, 금방 걸어가면 되는 곳이었다. 가는 길에 불맛의 향기가 엄청나게 풍기는 중국집을 지나가야 해서 그 유혹에 빠져들어갈 뻔했지만 그곳은 나중으로 기약을 하고 우리는 빠르게 걸어 도계5일장 장소 근처에 자리 잡은 원희네닭갈비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기에 주인장을 포함한 2, 3팀이 자리에 잡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근처 캠퍼스의 대학생들이 있지 않은 주말 낮이란 것을 감안했을 때 사람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


"사장님, 물닭 2인분에 우동이요."


원희네닭갈비의 육수는 라면보다는 우동사리가 더 맛이 좋을 거라던 추천에 우리는 우동을 주문했지만 현지 주민들로 보이는 다른 식탁은 모두 라면 사리를 넣어서 먹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물닭갈비에 라면이 기본인가 봐."


"그러게."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먹고 있던 시간대에 우리 외에 5,6 팀이 더 있었는데 우리만 라면이 아닌 우동사리를 주문했으니까.



태백에서도 봤던 커다란, 가마솥 뚜껑과도 같은 무쇠솥에 수북하게 쌓인 닭고기, 쑥갓, 부추, 깻잎, 붉은 양념, 그리고 옆에 얹어진 우동 사리가 금방 준비되어 나왔다. 주인 사장님의 따님으로 보이시는 분께서 홀을 같이 보시는지 양철 주전자를 들고 와서 뜨겁게 달군 무쇠솥에 육수를 바로 부어주신다.


쌀뜨물을 진하게 우려낸 것과도 같은 색깔의 하얗고 맑은 육수가 흘러나와 무쇠솥에 호수를 만들고 붉은 양념과 고기, 채소들과 함께 뒤섞여 무쇠솥에서 끓어오른다. 일반적으로 무쇠 철판에 볶아서 먹거나 숯불에 구워 먹는 춘천식 닭갈비와는 다르게 태백, 삼척에서 광부들이 탄광에서 날리는 재로 인해서 텁텁한 목을 매콤한 국물로 씻어내기 위해 칼칼하게 끓여 먹던 물닭갈비는 마치 춘천식 닭갈비에 육수를 많이 부은 것과 같은 모습이 특징이다. 무쇠솥으로 달궈 끓여먹는터라 닭고기도 빨리 익으니, 조리시간도 빠른 것이 장점이다.


물닭갈비가 완전히 익기 전에 뽀얀 육수의 맛이 궁금하여 숟가락을 들어 한 숟갈 맛본다.


후룩


나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고소하다. 그리고 진하다. 진하고 고소한 닭육수의 맛, 이전에 먹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물닭갈비 육수이다. 도계에서 맛볼 물닭갈비는 태백에서 먹었던 물닭갈비와는 다른 경험을 줄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후룩


양념이 어느 정도 섞이고 있는 물닭갈비의 아직 다 완성되지 않은 국물을 맛본다. 칼칼한 맛이 올라오면서 고소하고 진한 그 육수의 맛은 유지되고 있다. 나를 따라서 한수저 맛보는 이쁜 여자의 반응도 나와 같다. 그리고 우리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말 한마디가 맴돈다.


'도계 물닭갈비, 맛있다.'



강하게 물닭갈비가 끓어 올라서 닭의 속살까지 모두 단단하게 익고 야채들이 슬슬 아삭함과 흐물거림의 사이의 식감을 가지는 형태가 되자 우리는 곧 불을 줄이고 식사를 시작했다. 냉랭하게 굳어있던 우동사리는 이제 물닭갈비의 뜨거운 포옹으로 두껍게 찰랑거리는 어여쁜 모습이다. 붉게 달아오른 물닭갈비의 육수로 함께 껴안아 입으로 밀어넣는다, 국물이 혹여나 옷에 튈까 봐 입술에 가까이 대고 빠르게 흡입한다.


후루루룩


고소하고 짭짤한 고기 육수의 그 맛, 그리고 그 사이로 강하고 칼칼하게, 울대를 손날로 치듯이 '탁' 치고 들어오는 매콤한 양념장의 맛, 그 고춧가루의 맛. 아, 이게 물닭갈비구나. 도계에서는 이것을 물닭갈비라고 부르는구나. 이 기쁨을 나만 누릴 수는 없다, 이쁜 여자도 어서 맛보면 좋겠다.


"어서 먹어봐"


"응응"


그녀도 우동사리를 흡입하자마자 고개를 강하게 끄덕인다, 긍정적인 몸짓, 말이 없어도 대화가 가능한 미식의 신호. 삼척 도계에서의 미식은 시작되었다, 원희네닭갈비에서.


육수를 가득 머금은 우동사리가 그렇게 맛있었다면 우동보다 더 육수에 흠뻑 젖은 부추, 쑥갓, 깻잎은 더 맛있겠지. 나는 흡사 붉은 매생이 혹은 김과도 같이 국물이 녹아있는 채소들을 한 움큼 집어 입으로 넣는다. 아직 죽지 않은 아삭한 쑥갓대의 식감과 아삭하고 사각거리는 부추와 깻잎의 흐물거리는 그 결들 사이로 닭육수의 진함과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물들이고 이번에는 조금 더 빠른 타이밍에 칼칼한 맛이 목젖과 식도를 강하게 치면서 뜨겁게 위장으로 흐른다. 황홀한 얼큰함과 고소함, 매콤함에 눈이 자연스럽게 감기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맛은, 퇴근이 기다려지는 맛이구나. 광부들은 하루 동안 힘겹게 노동을 하고 나서 이 칼칼한 맛으로 몸을 정화하기 위해서 물닭갈비의 시간을 기다렸을 거야. 다시 한번 와서 먹고 싶은 맛이다.'


촉촉하게 익은 모습의 닭살을 들어서 앞니로 살며시 긁으며 물어뜯는다. 염지가 속살까지 되어 부드럽고 쫄깃하다, 국물의 간과 양념도 염지처럼 그 살에 이미 깊숙이 배어들어 간간하게 고소한 맛이 살에서 느껴지고 닭살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소한 육즙의 맛, 껍질이 어금니 사이에서 씹힐 때마다 나오는 닭기름의 맛과 어우러져 쫄깃하고 탱탱한 식감이 나의 시공간을 즐겁게 만든다. 이전에 내가 알던 퍽퍽하고 뻑뻑했던 닭갈비나 물닭갈비의 속살의 식감들은 이미 잊혀 없어진 지 오래다. 원희네닭갈비에서 먹은 닭살은 촉촉하고 쫄깃하고 육질도 고소하다, 심지어 닭가슴살마저도.


원희네닭갈비에서 물닭갈비의 식사를 시작한 이상 시작된 고소함과 칼칼함의 연속적인 작용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진한 육수맛과 매콤한 양념이 우리의 수저를 옭아매어 뜨겁고 붉은 호수 속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릇 위에 올라타서 저어 가게 하는 것이다. 촉촉한 닭살을 다시 고소하고 매콤한 육수에 담가서 한입을 물어뜯는다, 씹을 때마다 따뜻한 맛에 미소 짓는다. 살짝 입안이 무겁다고 느껴지면 생생하게 살아있는 식감의 채소, 향긋한 쑥갓과 깻잎, 부추를 사각거리며 씹으며 다시 물닭갈비를 향해 젓가락을 집어 든다.



"에이, 오늘은 주말이라서 사람이 없어요, 평소에는 학생들이 가득 차서 여기 앉을자리도 없다고요."


도계로 놀러 온 친지를 대접하기 위해 어느 부부가 손님들을 이끌고 우리 뒷자리에 앉았다. 그들의 대화가 꽤 흥미롭다.


"도계에서 여기, 원희네닭갈비가 물닭갈비 중에서는 제일 오래되었을 거예요, 저기 옆동네에 잘 되는 곳 사장님도 여기서 배워서 열었으니까."


진짜인지는 알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나와 이쁜 여자는 재미있는 지역민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이윽고 그들에게도 물닭갈비가 나오고, 그들은 도계 물닭갈비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는지, 태백의 물닭갈비집 사장님들이 들으면 화날만한 소리를 한다.


"에이, 태백 물닭갈비는 도계에서 물닭갈비로 쳐주지도 않아. 물닭갈비는 도계가 맛있지."


"맞아, 태백 물닭갈비는 싱겁고 희여 멀건 한 게 사람만 많고 맛은 없더라고."


다른 지역에서 온 손님도 그들의 도계 물닭갈비 맛자랑에 맞장구를 열심히 쳐준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들의 의견에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태백의 모든 물닭갈비 집을 가본 적은 없으니 그들의 말에 동의를 할 수도 없다. 모두에게는 개인의 취향과 입맛이 있는 법이니까, 누군가는 태백의 물닭갈비가 더 맛있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미식과 맛에 대한 기준이 있을 뿐.



그렇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움직여 정신없이, 고소함과 진함, 칼칼함의 황홀경에 빠져 식사를 하다 보니 건더기가 없다. 그렇다면, 이제 마무리를 할 차례다. 볶음밥을 한 공기 주문한다.


넉넉한 밥 한 공기에 투박한 유리병에 담긴 참기름을 한 바퀴 휘익 두르고 남아있는 육수와 양념을 간으로 삼아 무쇠솥 위에서 바삭바삭하게 국자로 철판볶음밥을 만드는 사장 따님의 손놀림이 매섭다. 어느 정도 다 볶아지니 무쇠솥 바닥에 밥을 고르게 펴 눌러서 밥이 구워질 수 있게 하고 그 위에 간이 안 된 김조각들을 수북하게 올린다. 타코야끼 위에 올라간 가다랑어포처럼 김가루들이 팔랑거리면서 밥 위에서 춤을 춘다, 여름날 아스팔트 위에서 뜨거운 아지랑이가 올라와 일렁이듯이 무쇠솥 위의 김가루들의 모양이 꼭 그렇다.



숟가락으로 무쇠솥 위의 볶음밥을 스르륵 긁어 입 안으로 후후 불면서 가져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육수의 고소함과 진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양념장의 맛까지, 밥알 하나하나에 스며들어서 씹을 때마다 다시 물닭갈비의 간간한 육수의 맛이 다시 한번 입안을 채운다. 완벽한 마무리다, 수미상관이다, 처음과 끝의 맛을 동일하게, 물닭갈비의 전체적인 맛을 잊지 않도록 볶음밥은 철판의 눌어붙은 누룽지와도 같은 구수함과 바삭함, 그리고 육수에 젖은 부들거림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나와 이쁜 여자는 무쇠솥에 눌어붙은 밥알들이 아까워 거기에 물과 남아있던 물닭갈비의 국물을 부어 불려서 긁어먹을 정도로 끝까지 물닭갈비의 맛을 입안에 남기고 식당을 나가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원희네닭갈비의 사장님은 아마도 못 보셨겠지만.



'고요한 삼척의 산속 마을에 이런 음식이 있을 줄이야.... 도계에는 원희네닭갈비 말고도 다른 맛있는 집들이 더 있다고 하셨지... 도계에는 앞으로 종종 와야겠어.'


물닭갈비의 감동을 그대로 이어갈 도계 방문을 하겠다는 다짐을 남긴 채, 나는 미식을 마치고 식당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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