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종수반점, 강릉

내가 교동의 짬뽕이다, 묵직한 국물 한방

by 김고로

이전 글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었지만, 강릉도 지방의 군소도시들답게 오래되고 역사가 제법 있는 중화요릿집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강릉의 '종수반점'은 강릉 교동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함께하는 중국집 중 하나이다.

"제가 아는 목사님이 계신데 그분 고등학교 때부터 다니셨데요."


"오, 그래요?"


"네, 거기 가면 무조건 짬뽕을 먹으라고 하시더군요."


단골 카페의 구사장님에게도 말을 들었던 적이 있지만 사실 그 이전에 이쁜 여자가 일하는 갤러리숍 '오어즈(Oars)'의 나훔 작가님도 이 종수반점에 대해서 언급하신 적이 있어서 그분께 이 강릉의 전설적인 중화요릿집에 대한 짤막한 평을 들을 수 있었다. 갤러리숍 '오어즈(Oars)'는 종수반점의 맞은편에 있는 곳이라 종수반점에서 몇 번 식사를 하셨었는데, 이쁜 여자가 종수반점에 대한 얘기를 묻자,


"잔재주 없이 기본에 아주 충실한, 묵직한 맛"


이라고 하셔서 더욱 가보고 싶었던 중화요릿집이었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쉽게 가지 못했었는데, 어느 날은 '너의 짬뽕, 나의 짬뽕,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 직장 동료인 균과 함께 자전거를 달려 종수반점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는 강릉의 날 좋은 낮, 종수반점의 홀과 주방은 이런저런 소리와 전화벨 소리, 배달음식 어플 소리 등으로 시끄러웠고 이미 1, 2팀이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균과 나도 제법 배가 고팠기 때문에 얼른 착석하고 주문을 빨리 했다.


"저거 시킵시다, 짬뽕, 짜장, 탕수육 세트"


"좋아요."


기본에 충실한 맛이라는 평이 기억에 남아서 한국식 중화반점의 기본기를 맛볼 수 있는 요리인 짬뽕, 짜장면, 탕수육이 모두 들어간 세트요리를 주문했다. 우리가 자리를 차지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12시가 넘자마자 더 많은 손님들과 전화벨, 배달 어플의 소리가 폭풍처럼 들이닥치기 시작했고 홀에서 주문을 받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점원은 곧 정신이 어느 아득한 영의 세계로 떠나려는 것이 처음은 아닌지 잘 버티다가 얼마 안 되어 넋이 나가버린 채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와, 일찍 안 왔으면 못 먹을 뻔했네."


"그러게요."


주변을 돌아보니 주변의 직장인, 학생들, 근처 건설현장에서 일하시는 노동자분들이 모두 종수반점에 모여 음식을 기다리는 풍경이 펼쳐졌다. 어쩐지 가게 앞에 전용 배달원분들과 오토바이들이 2,3대가 보이더라니, 역시나 장사가 잘되는 중국집의 특징은 무시할 수 없다. 전용 배달원이 있고 배달 어플을 사용하지 않는 중국집이다? 그것은 굉장히 맛있는 중국집들의 특징이라고 나는 규정한다, 배달어플과 배달 용역을 사용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알아서 몰려드는 집이라는 의미이니까. 그리고 강릉에는 이러한 중국집들이 포남동에도 여럿 존재한다.


균과 나는 종수반점에 일찍 도착해서 주문한 덕분인지 주문이 밀리지 않고 일찍 나왔다, 헬멧을 머리에 착용하고 홀에서 서빙을 잠깐 도와주시는 배달원분께서 우리의 음식을 가져다주셨다. 이런 풍경은 어릴 적 가던 동네 중국집에서 보던 모습이었는데, 순간 특별한 날에 중국집을 갔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comma씨, 뭐 드실래요? 짜장? 짬뽕?"


"음... 고민되네요, 일단 한 숟갈 먹고 결정해볼까요."



균은 짜장 그릇을 잡았고 나는 짬뽕을 잡았다. 각자 한 젓갈, 한 숟갈, 한 입을 들었다. 진하다는 말로는 표현 못할 농후한 고춧가루의 칼칼함과 굉장히 무겁고 묵직한 짬뽕 국물이 입안과 식도에 강한 훅과 어퍼컷을 동시에 날리는 느낌이다. 짬뽕 국물이 이런 맛을 낸다고?



"어억...... 오..... 와..... 균, 이거 어서 먹어봐요, 빨리"


"그래요? 그런데 짜장이 무지하게 진하고 고소한데요? 여기서 간짜장 먹으면 진짜 맛있겠어요."


균도 종수반점의 짬뽕 국물 한 숟갈을 호록하고 먹더니 눈이 번쩍 뜨이면서 놀란 표정을 짓는다.


"와, 이게 짬뽕이지. 묵직하고 무거운 한방."


그리고 나는 짜장면의 짜장을 한 숟갈 퍼서 먹는다. 끝까지 고소하고 농도가 높은 짜장의 맛이 매끈하고 부드럽게 입안에 퍼진다. 감칠맛과 단맛이 균형 잡힌 짭짤한 짜장의 맛과 향, 기본기 탄탄한 짜장의 맛이다. 이제 어쩌지, 고민이 가득하다, 둘 다 맛있다, 이 점심시간의 대전 상대를 누구로 정할 것인가.


"comma 씨는 뭐 먹을 거예요?"


"나요? 둘 다 맛있어서 둘 다 좋은데, 고민되네요."


"저도 그래요, comma씨가 정하세요."


나는 내 앞에 놓인 두 그릇의 강력한 싸움꾼들을 보면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누구와 싸울 것인가. 좋아, 정했다. 종수반점의 짬뽕을 나는 상대하겠어.


"그러면 저는 짬뽕 먹을게요."


나는 비장한 각오와 표정으로 짬뽕 그릇을 잡았다, 후추와 산초 가루가 살짝 섞인 새카만 글러브에 피처럼 붉은 피부를 가진 이 싸움꾼과의 대결을 나는 피하지 않겠어.


"오케이, 그러면 나는 짜장."


짜장면도 좋아하는 균은 옆에 놓여있던 백설탕처럼 곱게 빻은 고춧가루를 한 움큼 짜장면 위에 뿌려댄다, 매콤한 짜장을 먹으려는 모양이다. 자, 균은 균의 싸움을 시작했다. 나도 나의 싸움을 시작해야겠지.



'오너라, 종수반점의 짬뽕. 상대해주마.'


때앵!!!


권투경기장의 공이 울리며 comma와 종수반점 짬뽕의 라운드가 시작된다.


나는 우선적으로 짬뽕의 건더기들을 해치우며 조심스럽게 짬뽕에게 잽을 날린다.


'오른손잡이, 오소독스 아웃복서인 comma, 젓가락과 왼손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홍합과 오징어, 양파, 당근을 건져 먹으며 거리를 재며 들어갑니다!'


오징어와 홍합 등의 해물이 비린내 없이 매콤한 불향을 입어 쫄깃하고 살아있다. 입안에서 씹힐 때마다 매콤한 맛과 향기가 머금은 국물을 내뿜으며 함께 반격한다.


'왼손잡이, 사우스포 인파이터 종수짬뽕! 함께 잽을 날리며 반격합니다. 머리와 턱으로만 꽂히는 변칙적인 박자의 주먹이 매섭습니다!'


알싸하며 칼칼하고 매콤한 맛에 점점 내 입안이 물들어가며 진한 해물맛과 불맛이 쌓여가고 있다. 점점 빠져든다.


'comma 선수,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위빙으로 주먹을 피해 보지만 종수짬뽕 선수의 강한 잽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요!'


나는 다시 국물들을 마셔본다. 묵직하고 무겁다, 곱게 쌓인 고춧가루와 진하게 우러나온 해물, 그리고 바닥에는 갈린 돼지고기들이 든든한 짬뽕국물의 맛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당했다, 이럴 수가, 해물과 고기가 함께 들어간 육수였다니, 입안과 목에 점점 묵직함이 쌓여간다.


'종수짬뽕 선수의 강력한 훅과 어퍼컷이 comma 선수의 안면과 턱에 강하게 꽂힙니다!'


짬뽕 육수의 묵직함과 진한 고춧가루가 한꺼번에 나를 덮쳐온다, 칼칼하게 내 식도에 꽂히는 고춧가루가 나로 하여금 젓가락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면발에 묻은 짬뽕과 국물이 후추와 산초가루의 향과 함께 뒤섞여 알싸한 매콤함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간다. 여기서 질 수 없어, 면치기로 승부수를 띄운다.


'comma 선수, 이대로 질 수 없다는 건가요, 종수짬뽕 선수의 복부와 간장을 집중적으로 쳐봅니다.'



하지만 한입 한입 먹을 때마다 함께 들어오는 알싸한 매콤함과 무거운 맛이 계속 남아서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얼굴에서 땀이 비처럼 내린다. 나는 붉은 얼굴로 세수를 하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무겁고 튼튼한 복부를 가진 종수짬뽕, 눈도 깜짝 안 합니다! comma의 얼굴에 그대로 카운터를 먹입니다! 스트레이트! 아, 정타가 터집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어퍼컷! 턱에 꽂히는데요!'


나는 순식간에 면을 흡입하고는 종수반점의 짬뽕에 얼굴을 묻고 국물까지 마시고 있었다. 나의 식도를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칼칼함과 무거운 맛, 그리고 고춧가루의 텁텁한, 기분 좋은 질감. 강력하다, 종수반점의 짬뽕. 나는 비 오듯이 내리는 땀을 소매로 훔치며 식사를 끝까지 이어간다.


'다운! 다운! comma선수 따운!'


'레프리! 심판! 경기 속행 가능한가요!!'


아, 종수반점 짬뽕의 이 중후한 매콤함. 이 진한 무거움과 묵직함을 나는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교동 짬뽕'이라는 이름으로 짬뽕을 하나 정해야 한다면, 나는 무조건 종수반점의 짬뽕을 꼽겠다. '교동짬뽕'이라는 타이틀은 종수반점에게 돌아가야 한다.


'레프리! 양손과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젓습니다! 레프리 스톱! 종수짬뽕의 K.O. 승입니다!! 종수짬뽕, 교동짬뽕 타이틀 벨트를 지켜냅니다!!'


첫 입에 들어오는 무겁고 알싸한 매콤한, 해물과 고기가 들어간 묵직하고 진한 불맛. 그리고 가면 갈수록 입과 몸에 쌓여가는 강한 짬뽕의 풍미. 종수반점의 짬뽕이 교동에 존재해서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사실 내가 짬뽕과의 미식 한판을 즐기는 동안, 균은 그가 만들어낸 붉은 짜장면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매콤함이 곁들여진 감칠맛 넘치고 짭짤한 짜장맛은 그에게 큰 만족감을 주었다고 했다.



"와, 제가 이렇게 짜장을 따로 퍼먹지는 않는데, 여기는 그렇게 퍼먹게 되네요."


균은 숟갈로 짜장을 크게 떠서 먹으며 말한다. 짜장과 짬뽕의 충격이 너무나도 큰 탓에,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하는 종수반점의 탕수육은 이미 우리에게 존재를 크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식사류가 요리보다 맛있는 중화요릿집이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짬뽕과 짜장면이 압도적으로 맛있었던 덕분에 주목 받지 못해 아쉬워하는 탕수육의 모습이다.
탕수소스에 몸을 담그며 분을 삭히는 모습이다


서로의 싸움을 마무리하고 땀을 닦으며 슬슬 회사로 돌아갈 준비를 나와 균의 눈에 메뉴판에 있던 다른 음식의 이름이 들어온다, '쟁반 짬뽕-2인분 이상'.


쟁반짬뽕은 또 어떠한 맛일지, 나는 궁금해졌다. 저 쟁반짬뽕을 먹기 위해서는 두 명의 태그팀을 이뤄서 프로레슬링을 겨루러 와야 하는 것인가. 좋아, 그다음 대전 상대는 쟁반짬뽕이다. 다음에도 즐겁게 다운당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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