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어느 월요일, 14일이었다. 사실 무언가를 계획해서 휴가를 낸 거라기보다는 휴가를 써야 하기 때문에 휴가를 썼던 날이었다. 이전에 삼척의 도계읍에서 물닭갈비를 먹고 와서는 도계의 또 다른 맛집을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14일은 마침 도계 5일장이 열리는 날이 아닌가.
'도계에는 5일장이 열리는 때에만 문을 여는 순대국밥집이 있어요. 얇게 부쳐주는 배추전과 순대국밥을 같이 파는데요, 꼭 드셔 보세요.'
G대의 도계 캠퍼스에서 대학교를 졸업하신 구커피의 구사장님의 조언이 나의 머릿속을 영롱하게 울리니 나는 홀린 것처럼 이쁜 여자에게 말했다.
"월요일에는 도계에 가야겠어."
"응? 도계에?"
"도계 5일장은 4일과 9일에 열려, 마침 14일이네."
"그렇네! 또 가서 맛있는 것 먹고 오자."
이전에 도계로 향할 때에 탔었던 산타열차는 주말에만 운행을 하기 때문에 나와 이쁜 여자는 동해로 누리로를 타고서는 무궁화호로 환승해서 도계역으로 향했다. 평일 오전인지라, 고향을 갔다가 다시 도계캠퍼스로 돌아오는 대학생들과 함께, 나와 이쁜 여자는 도계역에 다시 한번 도착했다. 다시 만나서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하는 캠퍼스 커플이나 후드티를 뒤집어쓴 대학생들 등등, 여러 모양으로 의외의 젊음이 느껴지는 도계역이다.
우리가 도계역에 내린 시간은 오후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서 점점 배가 고파오고 있었고, 이쁜 여자와 나의 위장이 광폭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도에는 제대로 나와있지 않은, 말로만 전해 들은 맛집을 잘 모르는 지역에서 찾아가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나와 이쁜 여자는 지도 어플에 의지하여 도계 5일장의 어느 부근에 자리 잡고 있을 전설의 순댓국밥집을 찾아다녔다. 도계읍 행정복지센터와 5일장의 구석구석을 한 바퀴 돌았을 때 배추전과 해장국을 팔고 있는 곳은 찾을 수 있었지만 배추전과 순대국밥을 함께 파는 곳은 찾지 못하였기에 우리는 한 바퀴를 더 돌았고, 이쁜 여자와 나의 인내심은 곧 돌아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근처에 배추전과 국밥 같은 음식을 파는 곳은 여기뿐이네."
"그래, 일단 여기 가자."
이전에 작성되었던 블로그 글들과 비교를 했을 때에, 우리가 판단하기로는 배추전과 해장국을 팔고 있는 실내 포장마차에서 이제는 5일 장날에 배추전은 팔아도 순대국밥은 팔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아쉬운 마음에 잠시 허기도 달랠 겸 배추전과 메밀전병(혹은 '총떡'이라고도 부른다)을 시켜 먹는다. 갓 구워져 나온 메밀반죽에 노릇하게 구워진 배추전은 바삭하고 쫀득하다. 아, 그 전설의 순대국밥을 먹지 못하여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어쩌지? 순대국밥은 없는데"
"그럼 우리 맛있다고 하신 그 중국집 가보자."
"그래, 그럼 여기서는 대충 먹고 거기로 가자."
우리는 매우 가볍게(?) 배추전, 메밀전병, 동치미국수로 허기를 달래고 구사장님께서 추천해주신 도계읍의 중국집, '래성각'으로 향했다. 래성각은 마침 도계 5일장이 열리고 있는 장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기에 우리가 찾아가기도 어렵지 않았다.
외관은 허름해 보이는, 진한 코팅이 붙은 두꺼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홀과 넓은 방안이 보이는 천장 낮은 중화요릿집이었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은 오후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니 점심 장사는 이미 마감한 것 보였지만, 밥을 먹으러 왔다고 하는 젊은 외지인 부부의 등장에 래성각의 사장님은 신기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주문을 받으신다.
"뭐 드셔요?"
"짜장면, 짬뽕... 그리고 앗!"
"텐푸라(중화요릿집에서 파는 대만식 고기튀김) 있다! 텐푸라 먹자!"
"텐푸라 주세요!"
'텐푸라'라는 이름을 듣자 사장님이 놀란 표정을 살짝 짓는다. 그렇다, 어느 중화요릿집을 가던지 다들 탕수육을 시킨다, 젊은 사람들은 더더욱. '텐푸라'라고 부르는 대만식 고기튀김은 먼 옛날 탕수육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먹던 요리류이기 때문에 주문하는 사람들은 잘 없다. 그런데 젊은 외지인들이, 처음 와서는 고기튀김을 시키니까 신기하게 생각하시나 보다.
"텐푸라..텐푸라 맞죠?"
"네, 텐푸라 맞아요."
우리의 주문이 들어가자 무언가 고수 혹은 달인의 분위기를 풍기시는 나이 지긋하신 여사장님께서 방에서 나와서 주방의 튀김 솥 앞으로 가신다. 불이 꺼져있던 화구에 다시 불이 붙고 우리가 주문한 요리들이 부엌에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음식들이 나오고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요리류인 고기튀김이 선봉장으로 우리의 식탁에 먼저 올라왔고, 우리의 입맛을 한 번에 만족시켜주었다, 정말로 그랬다.
노릇노릇하고 누르스름한 튀김옷 사이로 거뭇거뭇하게 잘 튀겨져서 익혀진 돼지고기가 보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우리가 으레 알고 있는 어느 중화요릿집에서나 먹을 수 있는 탕수육의 고기튀김이라고 생각했다.
바삭
바사삭
귓속의 외이도, 내이도를 거쳐 고막까지 두드리는 입속의 튀김이 씹히는 소리에 고소한 기름 맛이 입안에 한 번에 펼쳐진다.
"와!"
나의 눈이 순간 번쩍 뜨이며 턱의 저작운동은 급격히 빨라진다. 고기튀김을 씹으면 씹을수록 부드럽고 쫄깃한 살점의 식감, 세상에. 튀긴 돼지고기가 이렇게 맛있을 일인가, 그냥 단순하게 튀기 돼지고기처럼 보이는데 이거 왜 이렇게 맛있냐.
"얼른 먹어봐, 빨리."
내가 고기튀김이 가득 담긴 그릇을 열정적으로 가리키며 이쁜 여자에게 고기 튀김을 재촉했다. 그녀도 그녀 나름 간장을 콕 찍어 먹는다. 그리고 그녀도 눈이 동그래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와, 맛있다"
처음 맛은 바삭바삭하고 단단한 느낌이지만 생각보다 단단하게 씹힌다, 내가 좋아하는 고기튀김들처럼 씹으면 씹을수록 바삭바삭하고 그 사이에서 고소한 기름 맛이 새어 나와서 입안에 가득 찬다. 그리고 튀김옷 안에 숨어있던 고기 맛은 쫄깃하고 부드럽다, 이것이 과연 돼지의 다릿살로 튀겨낸 튀김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고기가 이 사이에서 널을 뛰듯 쫄깃하다. 그리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고기튀김이 너무 맛있는 덕분에 빛바랜 짜장면
함께 주문했던 짜장면과 짬뽕이 맛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여느 중화요릿집에서 먹는 것처럼 맛이 좋았으나 래성각의 고기튀김에 비하면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래성각의 고기튀김은 훌륭했다.
우리는 이미 도계 5일장의 포장마차에서 배추전과 동치미국수를 먹고 와서 배가 반 정도는 차있었지만 래성각의 고기튀김만은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남긴다기보다는 지금 이 음식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뜨겁게 튀겨져 나온 이 '살아있는' 고기튀김을 놓칠 수 없다.
'강릉에도 고기튀김을 하는 곳이 있지만, 래성각의 고기튀김은 정말 차원이 다르구나. 엄청나다.'
내가 래성각의 고기튀김이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어도 아마도 래성각의 사장님들은 '우리 튀김은 원래 이렇게 맛있다'라고 하시면서 무심하고 시큰둥하게 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서는 고기튀김을 먹는 것이 당연한 듯, 우리 옆에 오래전에 와서 낮술을 걸치고 계시는 어르신들도 고기튀김을 하나 안주로 두고서 시간을 보내고 계셨으니까.
바삭함에 고소함, 쫄깃함에서 부드러움으로 이어지는 중화요릿집 고기튀김의 정석. 고기튀김이 이렇게 맛있다면 탕수육은 또 얼마나 맛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아, 이 맛있는 고기튀김을 먹기 위해서는 도계로 와야 하는 것인가, 슬프지만 괜찮다. 고기튀김 말고도 도계에는 빵을 맛있게 하는 '카페로이'도 있으니 그곳의 빵도 먹을 겸 오고 싶어지는 이유들이 많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아직 곱창전골이나 즉석떡볶이도 먹어보지 못했으니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도계에 또 올 것이다.
식사를 즐겁게 마치고, 또 다른 방문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강릉으로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