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금정식당, 강릉

깔끔한 고추기름의 짬뽕, 단호한 주인장의 불맛

by 김고로

이쁜 여자의 서울에 사는 친한 친구는 곧잘 강릉에 놀러 온다. 아직은 혼자 사는 게 편한 그 친구는 강릉에 놀러 오면 이쁜 여자와 강릉에서 가고 싶었던 곳을 돌아다니는데, 어느 날은 짬뽕순두부가 먹고 싶다 하여 이쁜 여자와 서부시장을 갔더랬다.

"친구랑 잘 놀다 왔어?"


퇴근 후 저녁, 뜨끈한 장판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이쁜 여자에게 하루의 일을 물어보는 남편의 일상.


"서부 시장에 금정식당이라고, 걔가 짬뽕순두부 먹고 싶다 그래서 검색해서 가봤는데, 꽤 맛있었어."


"그래? 이름이 뭐라고?"


"금정식당"


"서부시장 어디 있는데?"


"그.... 서부시장 안쪽으로 들어가서, 드립 커피 집 하나 있잖아."


"아... 그 뭐지... 즈므 로스터리?"


"응, 거기 맞은편이야. 바로 앞."


나의 집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탓에, 단골 카페는 아니지만 필터 커피 맛이 좋은 드립 커피 집 앞의 식당이라고 하니 귀가 솔깃하다.


"맛이 어떤데?"


"깔끔해. 매콤하고. 친구랑 짬뽕순두부 먹었는데, 맛있었어."


이쁜 여자는 나만큼 음식의 맛에 미사여구를 자세히 붙이는 사람은 아니지만, 미각도 나만큼 좋고, 나처럼 만성비염이 있지도 않아서 후각도 좋아 이쁜 여자가 '괜찮다' 혹은 '맛있다'라고 하는 집이라면 믿고 갈만한 집이다. 나는 그렇다.


"그래...?"


그 이후로 나는 그곳에 그러한 집이 있다는 기억만 간직한 채로 굳이 금정식당에 가지는 않았다. 직장 근처에 있는 가게도 아니거니와 집에서 엄청 가까운 곳도 아니니까,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맛있는 가게에는 언젠가 갈 수밖에 없게 되어있는 것이려나.


어느 수요일 낮, 서부시장 근처의 태국 음식점인 '스왓띠'에서 균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 자전거를 타고 용강동으로 흘러왔건만, 스왓띠는 곧잘 점심 장사를 하지 않는다. 어쩌겠는가, 내가 먼저 전화를 해서 영업을 하는지 물어보고 왔어야 했는데.


"아.... 공쳤네..."


"어쩌죠, comma씨?"


나는 잠시 내 머릿속의 서부시장의 식당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이전에 이쁜 여자가 말해줬었던 서부시장의 짬뽕순두부가 맛있다고 했던 식당, 금정식당을 생각해내었다.


"균, 짬뽕 괜찮아요?"


"좋아요, 가요."


"오케이, 따라와요."


나는 소중한 점심식사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기 위하여 다시 자전거의 시동을 걸고 시장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영업을 하는지 잘 안 보이지만 자세히 식당의 창문 안을 들여다보니 부엌과 홀에 불이 켜져 있었다.


"오, 영업하네요. 갑시다."


금정식당, 왜 이름이 익숙한가 했더니 할머니 댁이 있는 부산의 '구' 이름이 '금정구'였다. 홀에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몇몇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차림표에는 점심시간에는 짬뽕라면과 짬뽕순두부만 먹을 수 있다고 안내가 되어있었다. 주물럭이나 냉동삼겹살, 곁들임 음식인 볶음밥 등은 저녁 영업시간은 오후 5시부터 가능하다고 한다.


"저는 짬뽕순두부요, 균은요?"


"저는 짬뽕라면...아, 저거 주물럭도 같이 시켜서 먹으면 맛있겠고 배도 부르고..."


"한 번 물어볼까요?"


균은 용기 있게 단아하신 여성이신, 금정식당의 주인장님께 물어본다.


"사장님! 지금은 주물럭 먹으면 안 되나요?"


사장님은 방긋 웃으면서 답하신다,


"네, 안돼요"


"아... 단호박이시네.."


"네, 단호합니다."


"그럼 짬뽕순두부랑 짬뽕라면 주세요, 하하"


"네~"


미소를 지은채 주방으로 들어가셔서 재료를 잡으시고 웍을 돌릴 준비를 하시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며 참 멋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주방에서 들리는 화구의 불꽃, 웍, 그리고 재료들이 어울러 돌아가는 찰그락찰그락 쇠들이 맞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함께 흘러나오는 매콤하고 고소한, 불향의 맛. 나와 균은 곧 면 혹은 초당순두부가 들어간 짬뽕을 먹을 수 있다. 화끈하고 매콤한 훈연의 냄새가 코를 찌르면서 들어오는 것을 무시할 수 없기에 자연스럽게 입안에 군침이 싹 돌기 시작한다.


"와.... 짬뽕 냄새 죽이네요."


"그러게요, 저도 여기 처음 오는데 기대되네요."


요리 시간이 짧은 대표적인 한국식 중화요리의 음식답게, 곧 우리의 음식이 나왔다. 붉고 영롱한 빛을 내뿜는 고추기름을 곱게 차려입은, 불향과 고소한 기름 향이 감도는 짬뽕의 자태에 활짝 미소가 번진다.



"와"


동네 한국식 중화요리 식당처럼 푸짐한 채소와 해물과 고기가 가득한 진득하고 무겁고, 묵직한 짬뽕은 아니다. 채소도 필요한 만큼만, 표고버섯에, 약간의 오징어와 대하, 그리고 대파에 태극기의 윗부분만큼 새빨간 고추기름이 가득한 국물. 가볍고 깔끔한 맛을 상상하게 하는 짬뽕의 모습이었다. 초당동에서 판매하는 짬뽕순두부들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금정식당은 금정식당만의 짬뽕을 선보이고 있었다. 금정식당의 맛이 궁금하다. 수저를 들어 국물을 먼저 한 숟갈 먹어본다, 나에게는 음식의 첫맛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도 첫인상이 중요하듯, 음식도 첫 숟갈의 맛이 중요한 것이다.


"아....."


"와...."


균과 나의 짧은 탄성이 서로의 사회적 거리를 메웠다가 사라져 간다.


아주 살짝 매콤함, 불향이 촉촉하게 혀 끝에 닿으면서 아주 깔끔하고 예리하게 매운맛이 입안과 식도를 강하게 치고 들어온다. 날카로운 매콤한 맛이다, 길고 진하게 여운을 남기는 청양고추나 고추장과도 같은 매운맛이 아닌, 타바스코 소스나 중남미, 동남아 등지에서 곧잘 맛볼 수 있는 짧고 예리하게 입안과 식도를 치고 들어오는 깔끔하고 짧은 여운의 매콤함과 불향. 하지만 신맛은 없다. 와, 깔끔하다. 그리고 뒤이어 느껴지는 고소한 여운. 한입으로는 당연히 아쉽다, 다시 국물 한 숟갈.



"오오...... 고추기름이 정말 좋네요... 좋은 고추로 곱게 빻은 좋은 고춧가루에서 나온 고춧기름.... 일지도 모르겠어요."


끄덕끄덕. 이미 그에게 주어진 짬뽕라면에 몰입한 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 고춧가루가 중국산이나 국내산인지 그건 상관없어요. 이 고추기름이 나온 그 기름의 원산지도 상관없고요.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이 짬뽕에 들어가 있는 고추기름이 맛이 좋다는 거예요. 이 고춧기름을 어떻게 구하셔서 이런 맛을 나게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암흑시장의 밀거래처럼, 어머님들이나 할머님들 사이에 암암리에 소문이 퍼져있는 유명한 고춧가루와 방앗간에서 빻아온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니면 여기 서부시장에 있는 바로 근처의 방앗간에서 바로 짜 온 고춧기름을 사용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갓 빻은 고춧가루려나?"


"그럴지도요."



강하고 고소하고 매콤하게, 짧게 목구멍을 훈연 맛으로 치고 빠지는 맛. 이 고추기름은 무언가 특별하다. 금정 식당의 짬뽕의 뼈대를 맡고 있는 필수 식재료라고 나는 얘기하겠다. 그리고 거기에 적절하게 섞여 들어간 해물과 채소, 표고버섯, 깻가루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는 맛의 균형을 잘 잡아준다.


국물의 맛으로 이 짬뽕을 보았으니, 이제 모든 식재료들과 같이 먹어볼 차례이다. 노랗게 잘 익은 짬뽕 면발은 이미 탱글하고 짬뽕 육수가 잘 묻어 나온다. 내가 주문한 짬뽕순두부에 큼지막하게 담겨있는 초당순두부의 덩어리와 작은 숨구멍들 사이사이에도 영롱한 붉은빛의 기름이 스며들어 간간한 맛을 보장해주고 있었다. 초당순두부는 일반 순두부와는 달리 조금 더 몽글몽글하고 짭짤하며, 콩의 고소한 맛이 도드라지는 맛이다.


촉촉하고 폭신한 순두부가 독특한 숨구멍의 식감과 씹히면서 그 사이에서 해물, 채소 육수로 기본 맛이 튼튼하게 잡힌 강렬한 고추기름의 맛이 혀와 입안 전체로 뻗어나간다. 눈이 감긴다, 혓바닥의 유두와 미뢰 세포 사이사이로 흘러가는 짬뽕의 맛, 그 안의 육수와 고춧기름이 흐르는 그 감각, 맛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기에 잠깐 눈을 뜨고 순두부 조각과 짬뽕국물을 다시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아삭한 채소들과 매끈한 표고버섯, 거기에 부드러운 순두부, 강렬하고 매콤한 짬뽕의 육수, 적절하게 딱 맛있을 만큼만 들어간 식재료들의 다양한 식감들이 섞여서 입안이 즐겁다. 나는 두부, 순두부, 비지 등 콩으로 만든 음식들을 워낙 좋아하기에 순두부의 콩 맛, 그리고 짬뽕의 맛이 혼합된 한국식 중화요리가 뇌리에 깊게 박혔다. 금정식당의 짬뽕, 맛이 좋다. 앞으로 곧잘 와야겠다, 짬뽕순두부 먹으러 굳이 초당까지는 갈 필요는 없겠다. 이런저런 생각들과 맛에 대한 얘기들을 털어내고는 나도 균이 몰입해있는 그 시공간 속으로 합류했다. 이제는 금정식당이라는 공간 안에서, 짬뽕순두부와 나만이 오롯이 존재하고 교감하는 조용한, 또 다른 시공간 안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다.



짬뽕의 깔끔한 매콤함과 그 사이사이에서 기쁨을 주는 얼큰함과, 가벼우면서도 진중한 그 맛으로 인하여 나는 땀으로 세수를 하고 있었다. 그저 매운 짬뽕이기 때문이 아니라, 맛있는 짬뽕이기에 감격의 땀을 얼굴에 흘리며 식사를 했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를 한 이후에, 추후 기회가 있어 J팀장님도 함께 모시고 간 적이 있었는데, 팀장님께서 드시고는


"여기 짱 맛있어, 와"라고 하시기에, 속으로 나는


'균과 팀장님이 맛있다고 한 것이면 대중적인 맛은 보장되었군'이라고 하며 근거가 확실한 뿌듯함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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