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단양면옥, 양양

감칠맛에 담긴 차가운 메밀국수

by 김고로

출장을 위해 시외버스를 타고서 내린 양양버스터미널은 내가 알고 있던 양양시외버스터미널과는 완전히 다른 장소의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양양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방문했던 것은 수년 전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 양양에 새롭게 시외버스터미널이 건설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와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내가 출장이 없었다면 굳이 올 곳도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어느 대도시에 있을 법한 깔끔한 외관과 내부, 거기에 직원들이 상주하는 관광안내센터, 편의점과 카페까지 갖춘 '신' 양양시외버스터미널에 내가 내린 날은 매우 더운 어느 여름이었다.


출장을 왔기 때문에 업무용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나는 해가 따갑도록 내리쬐는 흙먼지 가득한 양양읍내 외곽의 어느 도로를 터벅터벅 걸었다. 시외버스터미널은 양양읍내에서 두어 정거장 정도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시내버스를 타야 했으니까. '두어 정거장 밖에 안 되는 거리야'라고 만만하게 보고서 도보로 이동을 시작했다가 땀에 절은 양복을 입고서 일을 시작하는 열정과 청춘이 다른 방식으로 가득하게 되어버린 모습이 될 수 있기에 나는 함부로 여름 날씨에게 까불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약속시간은 13시가 넘어서 잡혀있었지만 내가 양양에 도착한 시간은 11시가 넘어서였다. 양양 시장 구경을 하고 싶기도 했고 미리 가려고 마음먹은 양양의 전통적이며 오래된 막국수 집 중 하나인 '단양면옥'에 가기 위해서였다. 양양에 있는 면옥인데 왜 이름부터가 '단양'으로 시작하냐고 나에게 묻지 마라, 나도 모른다. 다만 내가 짐작하는 것은 이 '단양면옥'을 시작한 창업자분과 충청북도 단양이라는 도시가 어떠한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가게 여는 시간이 오전 11:30부터 구나... 그동안에는 양양시장을 좀 돌아봐야겠다.'


내가 기억하는 양양 시장의 모습은 매번 5일장이 열리던 사람 가득하고 활기차게 바쁜 그 모습들. 오늘처럼 5일장이 없이 상인들과 어르신들이 시장을 가득 메워서 발디딤이 없이 살아가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장악하기 이전의 모습들이었다. 나의 마지막 기억으로부터 수년이 흘러 양복을 입은 회사원이 된 내가 방문하는 현재의 양양은 바쁜 에너지보다는 여유로운 기운이 현대적인 건물들과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닭강정, 찐빵, 어묵, 나물, 버섯, 칼국수, 백반 등등.... 그 와중에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팥이나 고기가 아닌 우유커스타드가 들어간 찐빵을 파는 새로운 찐빵가게들의 모습. 시장에서 '우유찐빵'을 팔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할 정도로 나의 음식에 대한 편견이 굳어져 있었나. 나이 지긋한 어르신께서 우유찐빵을 찜통에서 꺼내 가져가시는 모습이 왜 나에게는 놀라운 모습으로 보이는지, 시장의 음식도 시간의 흐름에 발맞추어 가고 있는 혁신적인 모습이었다, 나에게는.


'닭강정과 옹심이, 구미가 당기지만 오늘은 목표로 하고 온 곳이 있으니....'


나는 시장의 터줏대감분들께서 내놓으시는 음식을 보느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서 양양시장을 빠져나와 단양면옥이 자리 잡고 있는 양양시장 근처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영업 시작시간이 막 지난 참이라 손님은 아직 없고 내가 첫 손님으로 보였다.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 사장님께서 나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혼자 왔어요?"


"네, 혼자 왔어요."


"편하게 앉아요"


평소 같으면 함부로 앉으려고 하지 않을 4인용 식탁에 혼자 턱 하니 앉았다, 손님이 아직 없을 시간이니 누릴 수 있는 넓은 사치였다.


"사장님, 물막국수 하나요, 그리고 면 추가요."


"홀에 물막국수, 면추가!"


방문하기 전에 단양면옥에 대해서 조금 찾아봤을 때에 가자미회가 들어간 기본적인 영동식 회막국수도 아주 잘하는 집이라고 보았지만 나는 막국수 중에서도 제일 기본적인 형태인 물막국수를 주문했다. 막국수가 좋은 점은 음식이 나오는 데까지 시간이 짧게 걸린다는 점,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막국수 1인분과 추가로 시킨 면에 물막국수의 육수가 담겨서 나왔다, 면이 마르거나 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부엌의 배려.



나는 육수의 맛이 궁금해서 양손으로 그릇을 들고 육수를 살며시 들이켰다.


"어라....?"


영동권인데, 막국수 육수의 맛이 짭짤하고 감칠맛이 있다? 달달하고 시원한 맛이 나는 동치미 육수의 맛이 아니다...? 다시 한번 마셔본다.


후룹


"와.... 허허...."


시원하면서 짭짤하며 감칠맛이 넘친다, 그리고 약간의 바다향기가 올라온다. 살짝 달콤한 멸치육수다. 해물육수를 쓰는 막국수라니, 연하고 시원하게 우려낸 진주냉면 육수를 마시는 맛이다. 이게 뭐람, 양양에서 멸치로 육수를 낸 막국수를 한다니. 이게 뭐람, 멸치로 육수를 낸 막국수가 맛이 좋다니.


"막국수를 멸치육수에 말아먹는데, 맛이 좋네."


메밀면도 껍질이 적당히 섞여 목구멍을 간지럽힐 정도로 까끌까끌한 느낌이 좋다. 거기에 탄력도 어느 정도 갖춘 배합이 잘된 메밀반죽이다. 그러면 결정된 것이다, 나는 내가 주문한 이 1.5인분의 막국수를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누어 먹기로 했다. 전반전은 아무런 추가 조미료 없이 부엌에서 나온 그 맛 그대로 먹는다. 젓가락이 멈추지 않는다. 찰랑거리면서 부드럽게 끊기는 메밀면이 미끄러지듯 들어가며 식도를 긁는다. 메밀국수를 먹을 때는 이 식도를 면으로 긁어주는 느낌이 시원하다.


단양면옥의 무채절임. 달착지근하며 새콤한 요물이다. 막국수를 먹는 동안 두번이나 다시 가져다 먹었다.


그리고 스테인리스 사발을 양손으로 잡고 들어 한 모금 들이킨다. 짭짤하면서 감칠맛 넘치는 멸치육수, 차가운 온도로 입안을 다시 적신다. 혀의 표면에, 입안의 표면에 소금기가 아닌 고소하게 짭짤한 멸치육수의 맛이 오랫동안 남아서 입맛을 계속 다시게 만드는 맛이다. 시장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처음 먹어보는 멸치육수 막국수의 맛이 중독적이라 금방 막국수의 반이 사라진다.


'후반전 시작이다. 선수들을 입장시켜 볼까.'


동치미 혹은 비빔 막국수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추가 조미료는 설탕, 식초, 겨자. 나의 주 활동지역인 영동지방의 대부분의 막국수 집들에는 설탕, 식초, 겨자, 이 3가지가 식탁마다 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단양면옥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추가적으로 나온 메밀면을 잡아 원래 먹던, 멸치육수가 아직 남아있는 그릇에 집어넣고


"설탕을 한두바퀴 정도 뿌리고, 식초 한 바퀴, 겨자 반 바퀴."


이 정도로 넣는 것이 나의 입맛에 잘 맞는다. 평소에는 이러한 추가적 조미료를 넣어서 먹지는 않지만, 멸치육수에 영동적 막국수의 추가적 조미료가 들어가면 어떠한 맛이 날지 굉장히 궁금한 것이다.



살며시 달달하고 새콤하며 알싸한 맛이 멸치육수와 섞여 이전보다는 조금 더 대중적인, 내가 잘 알고 있는 영동식 막국수의 맛과 비슷해졌지만 나는 추가 조미료를 넣기 전, 전반전의 멸치막국수의 맛이 더 마음에 닿는 맛이다. 다시 한번, 멸치육수옷을 반짝이게 입은 메밀국수가 입안으로, 젓가락에 말려, 빨려 들어간다.


"후아....."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사발을 보니 막국수가 비어있다. 국수는 없지만 남겨져있는 육수가 아쉬워 그것마저 비워낸다, 입안에 남아있던 감칠맛과 함께 바다의 향이 녹아들어 간다. 약간의 해물맛이 끝 맛에 남아 이것이 어떤 분들에게는 어색하거나 거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묘한 감칠맛이다, 젓가락을 당긴다.


"맛있게 드셨어요?"


"네, 너무나 맛있게 잘 먹었네요."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진심을 담아 사장님께 답을 건넨다. 다시 큰 길가로 나와보니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어느 베이커리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그 안으로 보이는 진열대 안에 가득 쌓인 깜빠뉴와 크루아상, 방금 전까지는 배가 부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까지 온 이상 깜빠뉴와 크루아상을 보고 그냥 넘어갈 내가 아니다. 스마트폰을 확인해본다, 아직 약속시간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다, 막국수 1.5인분을 먹는데 30분밖에 사용하지 않은 나였다.


"가볼까. 참새는 방앗간을 지나치지 않지."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저 빵집의 맛을 확인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나는 다시 한번, 오늘의 점심을 처음 먹는 모습으로 '봉희당'이라고 적힌 베이커리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의 미식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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