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역에나 지역 사람들도 잘 알지만 하나의 광고나 홍보도 없이 관광객들에게도 널리 널리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곳들이 있다. 지역민들은 '우리만 맛있는 것을 먹겠어, 남들까지 몰려들어서 줄을 서서 먹을 수는 없어'라는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맛있는 음식과 술에 환장하는 한국(사실 어느 나라나 안 그런 곳이 있을까)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이라는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전국에서 몰려드는 민족이다. '너네만 맛있는 거 먹냐! 우리도 먹자!'라는 강한 일념으로 맛있는 음식점에서 다 같이 줄을 서서 먹게 만드는 엄청난 민족이 우리 한민족이다. 좋은 것은 널리 알려 모두가 이롭게 하라는 단군 할아버지의 '홍익인간'의 정신을 항상 받들어 모시는 그런 민족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단군왕검의 어머니 되시는 웅녀님처럼 거의 모든 한민족은 마늘을 항상 많이 자주 먹는다, 아마 단군왕검께서도 지금의 후손들처럼 많은 마늘을 드시지 않았을까. 마늘을 자주 많이 먹는 후손들은 김치와 더불어 함께 잘 먹는 음식이 있으니 그것은 빠르게 나오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든든한 국밥. 국밥도 한반도의 어느 지역에 가든지 맛있는 곳이 많다. 강릉에는 대표적인 소머리국밥이 있는데 중앙시장 외에도 맛있는 소머리국밥집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으로 지역민들에게 (이제는 많은 관광객들에게도) 알려져 버린 소머리국밥집이 있으니 이름하야 '금성해장국', 속을 든든하고 뜨끈하게 풀어주는 소머리국밥의 맛이니 '해장국'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인정하는 바이다. 나도 몰랐던 곳이지만 주변의 친한 음식점 사장님들에게 소문을 듣고 찾아간 곳이다, 잡채밥과 고기튀김으로 내가 좋아하는 원성식당의 바로 뒤편에 있는 집인데 처음 갔을 때에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어서 먹을 수 없었다.
어디서 다들 그렇게 알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강릉 지역민으로 보였다, 11:30 점심시간이 '땡'하고 울리자마자 바로 출발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집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한 나는 그 이후에 혼자서 직장의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나의 자전거를 이끌고 강릉 남대천의 길을 내달려 금성해장국으로 향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근처 직장에서 끼니를 먹으러 온 단골손님, 직장인들과 소문을 듣고 온 관광객들이 어울려 약간의 줄이 형성되고 있었다.
"영업시간이 아침 7시부터인데 아직까지도 줄을 서서 먹는다고?"
사실 아침 7시부터 줄을 서서 먹는 집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혹여나 새벽에 일하시는 분들이 아침을 드시러 오시면 줄을 서서 먹을 수도...?), 나 같이 아침형 인간이 아닌 사람은 그런 상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슬리퍼와 민소매 티를 입고 스쿠터와 오토바이를 끌고 온 젊은이들, 산뜻하고 이쁘장한 옷을 입은 관광객들, 근처에서 일을 하다가 점심을 드시러 온 것처럼 보이는 어르신 등등... 남녀노소가 가릴 것 없이 좋아하는 금성해장국이었다.
줄을 가만히 서서 있노라면 주인장의 따님 혹은 며느리로 보이시는 분께서 문을 열고 손님들을 부른다. 번호표가 아니라 양심적인 순서로 이루어진 입장 체계. 그래도 국밥이다 보니 회전율이 빨라서 사람들이 들어갔다가도 금방 금방 나오는 것이 눈에 보인다.
"몇 분이세요?"
"혼자예요."
"들어오세요. 메뉴는 보통? 특?"
"특으로 주세요."
금성해장국의 메뉴는 간단하다, 소머리국밥 종류인 '해장국'이다. 보통 혹은 특으로 주문하면 된다. 특이 보통에 비해 다른 점은 밥과 고기, 육수의 양이 조금 더 많다, 가격은 2천 원 차이. 나는 밥을 많이 먹기 때문에 주저 않고 특으로 골랐다. 4인용 식탁을 혼자 앉아 먹으려고 하니 왠지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하다고 생각이 드는 찰나, 단골처럼 보이시는 분이 들어와서 주위를 둘러보시더니 나와 눈이 마주친다.
'어라, 합석하자고 해볼까. 안 그래도 식탁이 너무 커서 부담스러웠는데.'
"저기..."
"저..."
서로 눈이 마주치고는 동시에 입이 떨어진다, 그리고 나의 말이 더 빨랐다,
"선생님, 합석하실래요?"
"오, 고마워요, 사장님 나 여기 합석요, 보통에다가 다대기(다진양념의 일본 외래어) 없이 줘요."
사람이 많은 식당에서 좌석이 남는 경우에는, 서로 간에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합석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회적인 거리가 멀어져 버린 지금은 그것이 어색하고 불편한 일일 수도 있지만. 주문을 하는 방식으로 보아하니, 금성해장국의 단골손님으로 보였다.
주방에는 사장님 내외와 아들 혹은 따님 내외가 설거지, 재료 손질 등으로 바쁘셨고 여사장님은 밥과 국밥 육수 앞에서 뚝배기에 연신 뜨거운 육수로 토렴을 하시는 동에 매우 바빠 보이셨다.
'금성해장국으로 성공한 사장님들이 돈을 꽤 버셨는지 옆에 새 건물을 짓고는 자녀분들을 불러 모아 같이 건물에서 같이 산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금성해장국은 여사장님이 계셔서 토렴을 해주실 때 더 맛이 좋아요. 이전에 여사장님이 아프셔서 토렴 없이 나오던 때가 있는데, 이상하게 평소에 먹던 것에 비해 맛이 떨어지더라고요...'
금성해장국을 소개해 주신 자주 가는 카페의 사장님께서 해주셨던 '카더라'통신의 일부분을 상기하면서 여사장님께서 매우 건강해 보이는 모습으로 토렴을 하는 것이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역시 국밥이라, 푸짐하고 새빨간 다진 양념과 대파, 소고기 조각들이 푸짐하게 올라간 커다란 뚝배기, 특 해장국이 나의 식탁에 등장했다.
"선생님, 먼저 먹을게요"
"일행도 아닌데 뭘 그런 걸..."
"헤헤..."
육수의 맛이 궁금한 마음에 아직 붉게 물들지 않은 육수를 한 숟갈 들어
후루룩
'음....?'
생각보다 진하지 않고 가벼운 질감, 깊지는 않은 맛이다. 얼큰하거나 진한 고기 맛은 아니다. 그런데, 묘하다. 아주 묘한 매력이 있다, 아주 묘한 고기의 감칠맛이 입안에서 계속 맴돈다. 와, 이 육수 뭐지? 굉장히 가볍고 진하지 않은데, 맛있다. 계속 입 안에 남아 겹겹이 쌓여가는 감칠맛이 훌륭하다. 맛있다.
나는 놀란 토끼눈이 되어 이제는 붉은 다진양념을 슬금슬금 숟가락으로 으깨고 국물 안에 불어넣는다. 주홍색으로 물들어가는 육수를 보면서 다진양념과 이 육수가 만나면 무슨 맛을 낼지 호기심을 참지 못한다. 숟가락을 다시 들어 파와 고기를 적지 않게 올리고 밥과 육수도 함께 퍼올린다.
아삭아삭
다진 파가 잔뜩 씹히는 알싸하고 매운맛 사이로 거의 녹아내릴 듯이 삶아져서 썰려 나온 머리 고기들이 이 사이에서 씹힌... 아니 흘러내린다는 표현이 맞겠다. 가마솥에 넣어서 푹 고아서 삶은 질감의 머리 고기, 쫄깃하고 부드러운 육질과 식감을 넘어, 흘러내리는 고기들 사이로 다진양념이 스며들어간 육수가 입안에서 맛을 발휘한다.
'다진양념이 섞인 이 육수, 미쳤네.'
극강의 진한 감칠맛이 머릿속 깊숙이 박히는 그런 느낌. 매운맛은 없다, 아주 약간의 매콤함만이 남아있는 이 붉은 양념장 안에는 진한 감칠맛과 고소함과 깊은 짭짤함이 들었다. 다진양념을 만들 때 주로 고춧가루, 간장, 액젓 등이 사용이 될 터인데 비밀은 이 양념장 안에 활용되는 짠맛 나는 재료에 있을 터이다.
'비밀이 뭘까? 다진양념에 들어가는 간장일까? 아니면 액젓...? 아니면 요리에 대한 열정과 사랑, 손맛....? 뭐 그런 건가...?'
다시 한번 육수와 고기, 파, 밥 등을 푸짐하게 떠서 몇 번이고 입안에 밀어 넣는다. 밀어넣는다라기 보다는 나의 위장이 원하고 있다, 계속해서 이 해장국이 뽐내는 감칠맛과 진한 고소함과 짜지 않고 계속 혀 위에 떨어지기를 원하는 짭짤함. 먹으면서도 나의 고개가 끄덕임을 멈추지 않는다. 맛있다, 끄덕끄덕.... 그래, 감칠맛과 고소함이 폭발하는 이 요물과도 같은 다진양념과 쇠고기 육수가 섞인 가볍고도 침 고이는 이 맛, 미쳐버린 맛.
내가 식사를 반 정도 했을 때 내 앞에 합석하신 단골손님인 선생님께도 국밥이 나오고 있었다. 나보다 크기는 작고 다진양념이 함께 나오지 않은 단순한 소머리국밥. 국물의 기초적인 맛과 단순한 고기의 맛을 즐기기에는 이러한 주문이 좋겠지. 다음번에 온다면 나도 저렇게 먹어볼까, 생각해본다. 중간중간 소머리고기의 비계 부분이 쫄깃하고 찐득하게 씹히면서 그 안에 품고 있던 단순하지만 감칠맛 폭발하는 맛을 뿜어내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매력적이겠지. 그러고 보니, 단골손님으로 보이시는 분들은 대부분 다진양념이 들어가지 않은 희고 맑은 해장국을 드시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호.... 단골손님들이 저렇게 먹는 것을 보면 근본은 양념 없이 먹는 것인가...? 아니면 양념장이 들어간 해장국을 많이 드셔서 이제는 양념장이 없어도 맛있게 드실 수 있게 된 것인가..?'
아직 금성해장국은 처음이고, 양념장이 들어간 소머리국밥을 먹고 있는 나 같은 초보자는 알 수 없는 질문이다. 그렇게 금성해장국의 맛에 빠져 정신없이 먹다 보니 다 먹고 가게문을 열고 나간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선생님. 먼저 일어납니다."
"예, 들어가요."
오늘 처음 본 사이이지만 원래 알던 것처럼 인사를 하고 합석의 연은 헤어진다. 문을 열고 나오니 내가 식사 전에 봤던 줄보다 더 긴 줄이 기다리고 있다. 경찰관 분들부터 공무원, 직장인, 관광객 등등.... 다양한 손님들이 이 요망한 국밥에 홀려지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
'30분 동안의 황홀한 국밥 맛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기다릴만하지..'
나는 아직도 감칠맛과 짭짤함이 맴도는 입안을 쩝쩝 다시고 혀로 쓰다듬으며 다음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