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되어 중순으로 넘어가니 9월 초에 금방 다가올 대한민국 대표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와 이쁜 여자에게는 명절에 어디를 가고 싶은지 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우리 집, 우리 가정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독립성과 자유가 있다.
"부산, 춘천, 그리고 제3의 여행지, 어디 갈래?"
나는 이쁜 여자에게 물었다, 시댁, 친정 그것도 싫으면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묻고 있는 나에게 그녀는,
"음..... 이번에는 시댁 갈래, 부산 가고 싶어."
"그래."
"그러니까 우리 8월에는 춘천 가자."
"그러지."
9월 추석에는 나의 부모님이 계시는 부산으로 가기로 이미 결정을 했으니, 추석이 되기 전 8월에는 친정에 가서 본인의 부모님을 먼저 뵙고 싶다는 이쁜 여자의 요청에 따라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정년퇴임 후에 유유자적, 여유 있게 손주를 돌보면서 본인들의 삶을 살아가고 계시는 이쁜 여자의 부모님을 뵙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항상, 언제 가든지 명절에 먹는 음식처럼 당신들의 딸과 사위에게 대접을 거하게 해 주시고 집에 올 때는 우리가 좋아하는 식재료나 주전부리들을 차고 넘치게 주시는지라 처음에는 어색 어색 서먹서먹한 사이였으나 지금은 편하게 안부전화도 드릴 수 있는 사이인 것이다.
우리가 8월에 춘천에 들린다고 하니 이쁜 여자와 자주 들리는 구커피의 구사장님께서 마침 좋은 정보를 건네주신다.
"어느 음식점 프로그램에 나온 족발집이 하나 있는데, 거기 가보시겠어요?"
"어딘데요?"
"춘천에 가신다고 하니까요, 후평왕족발이라고, 우리가 보통 족발은 따뜻하게 먹거나 냉채를 해서 먹는데, 여기는 미지근하게 식은 족발을 썰어주더라고요."
"식은 족발이요? 차가운 것도 아니고요?"
"네, 프로그램을 보니까 식은 족발을 대접하는 곳이더라고요."
지금까지 나에게 족발이라는 것은 서울 장충동이나 시청에서 보았던 뜨끈뜨끈한 한방족발 혹은 오향족발, 아니면 부산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냉채족발. 족발은 완전히 뜨겁거나 혹은 차갑거나 둘 중 하나인데 뜨거운 족발을 식혀서 미지근하고 살짝 서늘하게만 해서 나오는 족발이라니. 호기심이 생겼다, 궁금증이 생겼다.
"이번에 춘천 친정에 놀러 가니까 가면 좋겠네요."
"네, 그리고 거기 비빔국수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꼭 한번 드셔 보시고 오세요."
"네, 제가 대신 먹고 와볼게요."
그리하여, 8월 중순의 어느 금요일, 나와 이쁜 여자는 퇴근하자마자 바로 춘천으로 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고 거의 추석 당일에 먹는 저녁과도 같은 푸짐한 식사로 몸과 마음을 덮인 후 다음 날. 나는 이쁜 여자, 그리고 장인장모님과 함께 후평동의 상점가에 자리 잡은 후평왕족발에 다다렀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4명이요."
홀에서 자리를 크게 잡고 파와 부추를 다듬고 계시던, 사장님의 따님 혹은 며느리분으로 보이시는 분께서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가게는 정말, 어느 동네에나 하나 있을 법한 족발집이었다. 소박하고 단순한 메뉴.
"비빔국수 시키실 거면, 족발 주문하실 때 같이 하세요. 족발과 먹어야 더 맛있거든요."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일반 족발 대와 비빔국수를 2그릇을 주문했다. 냉콩나물국과 간단한 쌈을 위한 반찬들이 나오고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족발을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족발은 빠르게 나왔고, 말로만 듣던 그 미지근하게 서늘한 족발을 마주할 수 있었다.
"...? 아무 냄새가 안 나네? 돼지 냄새가 안 나."
족발은 모두가 알다시피 돼지고기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돼지냄새나 고기냄새가 날법한데,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족발이었다. 후평왕족발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바로 젓가락을 집어 든다.
쫀득하고 쫄깃한 껍질에, 치아 사이에서 튕기듯이 씹히는 쫄깃한 족발의 육질, 그리고 서늘한 그 온도가 어색하지 않고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알맞은 온도로 식은 족발. 씹으면 씹을수록 고기가 고소하고 쫄깃하게 씹혔다, 혀와 치아 사이에서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며 껍질과 육질이 다시 섞이는 사이에도 어떠한 돼지냄새나 잡내도 나지 않고 깔끔하게 씹히는 식감과 육질.
서울 시청 근처에서 먹었던 오향족발이 기름진 쫄깃함, 감칠맛과 부드러움과 단맛 등으로 족발 맛의 극치를 뽐낸다면, 후평왕족발의 식은 족발은 깔끔한 풍미와 쫄깃함과 익숙한 맛으로 정반대에서 족발 맛의 극치를 뽐내는 것이다.
"어떻게 식은 족발이 이렇게 맛있지?"
"냄새도 하나도 안나, 족발이 어떻게 이렇게 맛이 깔끔해?"
일반적인 동네에 하나 있을법한 족발의 모습을 하고서는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깔끔한 족발의 맛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족발을 한점 잡아서 새우젓만을 살짝 찍어 입으로 넣어본다. 새우젓이 주는 그 짭짤함과 바다맛도 이 깔끔하고 잡내 없으며 찰진 족발이 완벽하게 받아들인다. 껍질과 육질이 질기지 않고 부드럽게 사근사근 씹히는 와중에 쫄깃함과 그 안의 고기맛은 잊지 않고, 입안 전체에 구수한 맛도 퍼진다. 하지만 잔미가 거의 없다. 커피, 원두에 비유하자면 클린컵 중에서도 클린컵이다.
족발을 반 정도 비우고 있을 무렵 시기적절한 비빔국수의 등장에 함박웃음을 짓는다. 어디를 가서도 비빔국수는 대체로 맛이 다 괜찮은 음식이지 않은가. 매콤 달콤 짭짤한 맛을 기대했다. 깻가루가 잔뜩 뿌려진 밑으로 깻잎 2장이 아름답게 포개져 있었다. 군데군데 작은 김치 조각들이 보이고 연주홍빛을 내는 양념장에 모든 부분이 완벽히 버무려진 바람직한 비빔국수의 모습. 맛을 어떨까. 젓가락으로 적당히 말아서 한입을 쳐본다.
신김치에서 나는 것으로 느껴지는 아주 약간의 새콤함과 매콤함에 고소함과 짭짤함이 뒤따라오는데, 다시 고춧가루의 매콤함과 김치의 맛이 끝 맛으로 딱, 다시 족발처럼, 깔끔하게 끝이 나는 맛이다. 질펀한 새콤달콤하고, 감칠맛이 흘러내리는 비빔국수를 기대했는데 이렇게 새콤매콤하게 딱 떨어져서 깔끔하게 넘어가는 맛이라니. 비빔국수도 클린컵이네. 다시 한번 면을 말아서 먹어본다.
이번에는 잘게 썰려서 들어간 신김치의 아삭함과 그 새콤함이 더 도드라지는 맛이지만 매끄럽고 찰랑거리는 면발과 국수에 묻은 양념이 적지 않은 양임에도 불구하고 고소함과 매콤함으로 상큼하게 끝이 난다. 이 비빔국수, 족발과 먹으면 어떨까? 궁금증은 잠시, 실행은 빠르게. 바로 족발을 한점 잡아 국수에 말아서 먹어본다.
매끌거리면서 상큼 매콤한 면발 사이로 쫄깃하고 고기의 맛이 구수하게 느껴지는 족발이 고개를 내밀며 서로의 맛을 침범하지 않고 깔끔하게 혀와 만났다가 위장으로 헤어진다. 족발이 어떻게 하면 잡내도 안 나고 깔끔한 맛을 갖고 있는지, 비빔국수는 왜 또 그만큼이나 깔끔한 끝을 내는지, 그것은 궁금하지 않다.
식은 족발과 양념이 넉넉한 편은 아닌 비빔국수가 어떻게 하여, 그 깔끔한 맛으로만 우리의 입과 위장을 즐겁게 하는 방법을 찾았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여백의미라던가, 절제미는 예술에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후평왕족발의 식은 족발과 비빔국수는 그 맛과 풍미로 아주 깔끔한 절제미를 뽐낸다. '딱 떨어진다'라는 말은 후평왕족발에 매우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이 깔끔한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만나면 더 맛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사장님께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