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내린 폭설이 아직 채 녹지도 않은 2월 중순, 이쁜 여자가 몇 년 전부터 공부하고 있는 사이버 대학의 대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 우리는 경상북도 경산시로 반강제적인 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강릉에서는 자동차로 약 4시간 정도 소요되는 먼 여정이고 (이 정도면 부산을 가고 싶은 수준) 이후에 또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곳이라 가는 김에 괜찮은 음식점이나 카페가 있다면 꼭 들렀다가 오고 싶었다.
늦은 밤, 경산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지내며 다음 날 오전에 이쁜 여자를 대학교 행사에 데려다주고 나는 그 사이에 괜찮은 커피를 내리는 곳이 있으면 다녀올까 싶어서 지도 어플을 열고서 검색을 시작했다. 경산에서 드립커피를 하는 곳이라면 거의 다 환영,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평을 받는 드립커피집이 많지 않았다. 검색을 하던 도중 내 눈에 들어온 카페의 이름, '커피고래'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곳이었는데 그 이름과 상반되는 한줄평이 내 눈에 띄었다.
'여기 원두가 괜찮습니다, 꼭 드립커피를 마셔보세요.'
댓글이나 리뷰 알바가 아닌, 일반적인 손님의 입장에서는 좋은 리뷰를 남긴다고 해서 재정적인 이득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진정성이 담긴 평이 있다면 한 번 믿어볼 만한 것이다.
"내일은 너 대학교에 내려주고, 드립커피 마시러 가볼까 싶어. 너 끝날 때 연락 주면 데리러 갈게."
"그래. 그러고서 점심 먹으러 갈 거지?"
"응, 그러자."
경산에서의 점심은 이미 예약을 해놓은 한식당이 하나 있어서 별 걱정이 없었는데,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도시에서 괜찮은 드립커피 집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나는 미리 검색을 한 것이었다. 강릉, 대구, 청주 등 커피나 카페거리가 유명한 도시들의 경우에는 현지인이 아니더라도 괜찮은 드립 커피집이 워낙 많아서 카페 검색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도시의 규모가 워낙 큰 곳은 카페가 심히 많아서 오히려 좋은 카페를 찾기가 쉽지 않고, '지방 소도시'로 분류되는 곳도 지역적, 지리적인 한계로 인하여 카페를 찾아가기 쉽지 않아서 그랬다. 적어도 맛 좋은 식사 후에는 향긋하고 깔끔한 커피와 디저트로 마무리하고 싶으니까, 내가 어디를 가든지 말이다.
다음 날 아침, 잔뜩 흐리고 쌀쌀한 날씨, 덥지 않고 비도 적당히 추적추적 내려서 돌아다니면서 밥 먹고 커피를 마시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인 것이다. 사실 밥 먹고 커피 마시기 나쁜 날씨가 어디 있으랴, 음식이 맛있고 맛없음은 내가 정하는 법. 이쁜 여자를 대학교 행사가 열리는 캠퍼스에 내려 주고는 나는 다시 커피고래가 자리 잡고 있는 경산시 세무서와 법원이 있는 사동으로 향했다, 지도에서 본 것처럼 20~25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
아직 오픈 시간 전이고, 늦은 오전이라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으니 한적한 골목에 주차하기도 좋았다. 골목에 주차를 하고서 귀를 간지럽히는 라디오를 적당히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11시 30분 즈음해서 카페로 들어간다. 예상했던 대로 이제 막 오픈을 해서 베이커리는 나오지 않았고, 커피는 내릴 준비를 막 마치신 모양이었다. 매장은 매우 넓었다, 바깥의 정원까지 포함하면 거의 체육공원의 풋살장의 1.5배는 되어 보이는 면적.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카페 마스터의 수상경력과 대회에서 입상한 원두들, 그리고 다른 카페의 바리스타님들과 협업해서 제작한 캡슐과 드립백 등 여러 제품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카운터로 다가가니 지역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디자인 협업을 해서 제작한 드립백 세트가 귀엽게 앉았다. 디지털 액정에 꾸며진 메뉴판의 솜씨가 좋다.
여느 카페처럼 싱글 오리진 원두들의 이름을 길게 써놓기보다는 원두들 풍미의 특징을 분류해서 과일향과 산미, 균형, 고소함 등으로 분류해서 원두를 추천해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싱글 오리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어떠한 원두를 골라야 하는지 컵 프로필을 보아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간단한 분류를 해서 보여주면 드립 커피와 싱글 오리진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것이다. 나는 과일향과 산미가 있는 원두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코스타리카에서 날아온 어느 농장의 원두를 선택했다.
"따뜻한 커피지요?"
"네, 따뜻하게 주세요. 마시고 갈게요."
깔끔하게 앞치마를 둘러매고 차려입으신 마스터가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릴 준비를 하신다. 베이커리를 담당하는 직원분께서는 부엌의 오븐 근처에서 한참 분주하시다. 마스터께서 원두를 꺼내서 준비를 하는 동안에 잠시 나는 카페를 여기저기 둘러본다. 바깥의 정원은 아직 다 정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동네 길고양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어주고 있었다, 통유리로 된 벽면으로 바깥 풍경이 보이니 꽤나 커피 마시기 좋은 풍광이 카페 안으로 들어온다.
한쪽 구석과 화장실로 가는 통로에는 카페가 지역에서 선한 영향력을 많이 끼치고 있다는 증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역의 경제적, 가정적으로 삶과 공부가 쉽지 않은 학생들에게 과외로 재능기부를 해주실 선생님과 그러한 학생을 중계하고 있으니 카페 마스터에게 말해달라는 게시판에서, 지역 노인대학에 커피강습을 제공한다는 협력서약서와 사진에서, 참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선한 카페라는 인상을 받았다.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내 마음이 이미 따뜻해지는 중이었다.
바에서 커피 그라인더의 소리가 '차라락'하면서 들리고 코스타리카 원두의 향기가 내가 앉아있는 카페의 먼 구석까지 날아오니 마스터가 커피 내리는 모습을 꼭 지켜보고 싶었다. 약간의 실례를 무릅쓰고 마스터가 커피를 내리고 있는 카운터 근처, 바로 다가가서 가능한 가까이 지켜본다. 약간의 산미와 고소함이 섞인 베리류의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이미 커피가 맛있다.
"마셨을 때 딸기맛을 느끼신다면, 잘 내려진 커피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커피고래의 코스타리카 싱글 오리진
이쁜 드립잔에 정갈하게 내려진 커피 향에서 딸기맛이 느껴진다.
후룩
한 모금 마시니 머릿속에 딸기맛 폭죽이 터진다, 잘 내리셨구나. 커피를 참 잘 내리는 곳이구나, 강릉에서 내가 가는 단골 커피집들만큼. 커피를 반쯤 마시고 있으니 갓 구워져 나온 피낭시에, 에그타르트, 소금빵들이 줄줄이 디저트 선반에 올려진다. 커피가 이렇게 맛있는데, 디저트는 어떠려나. 나는 베이커리들이 올려진 선반으로 돌진해서 따끈따끈한 피낭시에, 에그타르트, 소금빵을 접시에 담아서 카운터로 가져간다.
"피낭시에는 2개씩이에요, 하나 더 담아 오셔요."
"아, 네넵."
급하게 피낭시에를 하나 더 접시에 담자, 마스터께서 말을 걸어오신다.
"커피는 좀 어떠십니까? 먹을만하세요?"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이 살짝 섞인 예의 바른 말씨, 친가가 부산인 나는 그러한 억양이 반갑다.
"햐, 멀리서 오셨네요. 산미랑 과일맛 좋아하시면, 저희 가게가 갖고 있는 재밌는 원두 몇 개 소개해드릴까요."
"좋지요, 혹시 c.o.e?"
마스터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젓는다.
"c.o.e. 까지는 아닙니다만 어제 막 들여온 젠슨 게샤와 시드라가 있는데 그거 맛 좀 한 번 보실래예?"
'한 뚝배기 하실래예?'와 비슷하게 들리는 구수한 권유를 내가 거절할리 없다.
"환영이죠."
"그럼 곧 내어드릴게요."
잠시 대화를 하는 사이 정오가 다 되어가자 손님들이 하나둘씩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 갓 나온 베이커리들을 맛보기 시작했다. 사실 갓 나온 빵은 무조건 맛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맛있는 빵은 따로 있었다, 커피고래의 피낭시에.
커피고래의 에그타르트, 피낭시에, 소금빵
짙은 갈색에 단단한 겉면, 달달한 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강릉에서 먹던 피낭시에들은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이었는데, 신기하다. 바로 입으로 넣어본다.
바사사삭
겉면이 튀긴 것처럼 살짝 단단하면서 바삭하다, 설탕이 얇게 굳은 것과도 같은 식감이 나의 치아들을 즐겁게 한다. 속을 곰곰이 씹어보니 촉촉하고 쫀득한 식감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을 뿜는다. 나의 동공이 확장되고 있었다. 피낭시에가 갓 나와서 더 맛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여태껏 겉이 촉촉하고 부드러운 피낭시에만 먹었던 나에게는 새로운 세계였다.
'피낭시에가 이렇게 될 수도 있구나. 혼자 먹기에는 참으로 슬픈 맛이다. 이쁜 여자도 먹어보면 좋겠는데.'
그 사이, 마스터는 분주하게 커피를 내리다가 창고로 들어가 아직 밀봉을 뜯지도 않은 원두를 들고 바로 들어온다. 그 사이에 나는 첫 커피를 다 마시기 시작했고 마침 이쁜 여자에게 연락이 왔다.
[앞 일정 때문에 행사가 일찍 마친데, 5분 안에 끝남.]
앗, 마스터께서 지금 막 내어주신다는 젠슨 게샤와 시드라를 가져오신 것 같은데, 지금 커피 내리면 안 된다고 말씀드려야 한다. 나는 자리를 얼른 정리해서 나갈 채비를 하고 카운터에서 이제 막 원두의 밀봉을 열려고 하시던 마스터에게 급하게 얘기한다.
"선생님, 제가 여기 혼자 마시기에는 너무 아쉬워서요, 점심 먹고서 아내랑 같이 올게요. 그때 내려주세요. 이제 막 내려주시려고 하신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엇, 그래요? 알겠습니다, 점심 먹고 오셔요~"
"네, 감사합니다. 점심 후에 뵐게요."
"다녀오셔요~"
나는 부랴부랴 차를 운전해서 아내를 데리고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얘기했다.
"오전에 커피 마신 커피고래라고, 드립 커피하는 곳인데. 점심 먹고 가자, 커피가 괜찮아."
"그래, 좋아."
경산에서의 일정이 마치고 나면 태백으로 가기로 했는데, 호텔의 체크인은 늦은 시간이어도 상관없으니 우리에게 경산에서 머무를 시간은 넉넉했다. 경산의 어느 공단 근처에 있는 진량돼지찌개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후, 우리가 다시 커피고래를 방문한 시간은 대략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다시 왔어요."
"오셨어요~? 커피 준비해 드릴게요~"
우리는 궂은날임에도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창가의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구커피에서 커피를 마시던 시절에, 구사장님이 커피를 내리는 장면을 보면서 커피를 기다리던 추억이 있는 우리는 커피고래의 마스터가 커피를 내리는 장면도 지켜보고 싶었다. 우리가 가까이 바로 다가가니 마스터께서 갓 갈아진 원두를 컵에 담아 주신다.
내가 다시 원두를 건네어드리자 그 커피로 드립을 내리실 준비를 하는 마스터, 나는 그 옆 카운터에서 커피값을 결제하며 직원에게 말을 건넨다.
"여기 피낭시에가 바삭하고 쫀득한 게 정말 훌륭하네요."
직원은 수줍게 웃으면서 답한다,
"저희는 피낭시에 반죽을 발효하지 않고 바로 굽는 게 특징이에요. 그래서 저도 좋아하는데요, 저 말고도 많은 손님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나는 아직 넉넉히 베이커리 선반에 올려져 있던 피낭시에들 중에 두어 개 담아서 커피들과 함께 계산한다. 커피가 나오기 전에 피낭시에를 먼저 우리 자리로 가져와서 먹어본다.
"피낭시에 먹어봐, 바삭하고 쫀득해."
내 말을 듣고 이쁜 여자가 바로 피낭시에를 한입 베어문다. 그녀의 밝은 눈동자, 휘둥그레 빛난다.
"오, 이거 맛있네."
"그치? 강릉에서 먹어본 적 없는 방식이야."
물론, 내가 안 먹어봐서 그렇지 강릉 어딘가에는 바삭하고 쫀득한 피낭시에를 하는 곳이 있겠지만,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처음이니까.
(강릉에 돌아와서 카페정화의 사장님께 커피고래의 피낭시에 얘기를 해드리니, '바삭하고 쫀득한' 식감이 원래 피낭시에의 맛이라고 하셨다.)
커피고래의 싱글오리진 젠슨 게샤(좌), 씨드라(우). 거기에 더해진 이쁜 여자의 손.
우리가 피낭시에를 먹고 있으니 파나마에서 날아온 젠슨 게샤와 시드라가 나온다.
"젠슨 게샤는 고소하면서 상큼한 풍미가 좋고요, 시드라는 내려보니까 모과의 맛이 가득하네요. 정말 잘 빠진 커피예요."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나는 젠슨 게샤를 먼저 잡았고, 이쁜 여자는 시드라를 잡는다. 동시에 한 모금을 마시며, 작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와"
"음~"
젠슨 게샤는 고소한 풍미에 잘 익은 멜론과 상큼한 베리의 맛이 물씬 풍긴다.
"젠슨 게샤는 고소하고 멜론 맛이 나는걸?"
"내 거는 모과맛이야, 진짜 모과맛. 나도 그거 마셔볼래."
서로 커피 원두를 바꿔서 다시 한 모금, 그리고 다시 작은 감탄사. 씨드라는 모과의 풍미가 한가득이다. 커피가 아니라 모과주스를 마시는듯한 맛이다. 내가 블렌딩보다도 싱글오리진 커피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각 원두마다 갖고 있는 개성과 풍미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커피라는 음료를 입으로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향미를 통한 감정적인 행복으로 쉽게 도달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복을 위해서는 당연히 커피를 잘 내리는 바리스타의 실력이 필요하고, 이러한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의미로 보면 강릉은 참 커피로 행복해지기 좋은 도시인 것이다.
"커피 맛은 어떠세요? 마실만 하십니까?"
"커피가 아니라 과일을 가득 먹는 느낌이에요."
"그러면 제가 마지막 한잔은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와! 감사합니다!"
마스터께서 우리 자리로 오셔서 커피 맛의 안부를 물으시고는 웃음으로 다른 손님들께 가신다. 다른 손님들께도 간간히 찾아가서 커피 맛이 어떤지 물어보시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자리들이 가득, 만석이다. 손님들이 발산하는 구수한 사투리가 매장 가득 울려 퍼진다. 손님들의 안부를 물어보신 마스터는 우리에게 약속한 서비스 한잔을 그라인더에 내리신다. 커피를 내리는 장면을 놓칠 우리가 아니다. 바로 찾아가서 커피 내리는 장면을 보려고 하니 마스터께서 갓 간 원두를 컵에 담아서 주신다.
"맡아보세요, 참기름 향이 날 겁니다."
이쁜 여자와 내가 다시 코를 킁킁거리며 원두의 향을 맡아본다. 마스터의 말 그대로다, 원두가 아니라 참깨가 컵에 담긴듯하다.
"이 원두는 제가 청포도사탕이라고 부릅니다. 청포도의 맛이 독특하고 재밌는 원두라서, 대회에 주로 갖고 나가는 원두입니다."
"하하, 그럴만하네요. 이 고소한 원두가 맛은 청포도사탕 맛이 난다고요?"
"그럼요, 커피를 드셔보시면 바로 아실 겁니다."
마스터께서 '청포도사탕'을 아담한 유리주전자와 더 아담한 유리잔에 가져와주신다.
커피고래의 '청포도사탕' 싱글오리진 드립커피
"드셔보십시오. 사탕 하나 드시는 겁니다."
작은 유리잔에 약간 연하게 내려진 커피를 따라 마신다. 얼굴 가득 청포도의 풍미가 가득하다. 아, 청포도 맛이면 아이스로 마셨을 때 더 맛있었을 텐데, 아쉽다, 아이스로 내어달라고 할걸. 따뜻한 것도 좋지만 여름날에 아이스로 내려마시면 더 청량감 있고 가벼우니 좋을 원두다.
"이거 여름에 시원하게 마시면 더 맛있겠다."
나는 내 생각을 한마디도 안 했는데, 이쁜 여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역시 '이쁜 여자'라는 생각을 했다. 커피를 거의 다 마셔갈 때쯤, 사장님께서 오셔서 커피 맛이 어떠냐고 물으신다.
"선생님 말씀대로인데요, 하하. 청포도사탕이에요."
"그지요? 아까 내어드린 젠슨 게샤와 시드라에는 못 미치는 풍미이지만 재미있는 원두라서 제가 좋아하는 원두입니다."
그러고 나서 마스터는 카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운영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어떠한 애로사항들이 있는지 등등 오늘 처음 만난 손님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 강릉에서 경산으로 일 때문에 와서 드립을 마시러 커피고래에 처음 온 손님에게 카페의 속사정이 담긴 얘기를 풀어놓으시는 것을 보니 오죽 답답하셨으면 그러실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손님 입장에서 도와드릴 수 있는 이런저런 솔루션과 답변을 해드리고, 내가 취미로 뭘 하는 사람인지도 알려드리며 말씀드렸다.
"지역적인 특성을 살린 커피고래만의 메뉴를 만드는 건 어떠세요? 경산에 특산물이 있나요?"
"음.. 여기 경산에 대추 많이 납니더."
"그럼 대추라떼 어떠세요?"
"대추라떼요?"
사장님의 머릿속에 전구가 켜지는 듯한 표정이다.
"네, 잘 익은 대추의 달콤한 맛은 우유랑 잘 어울릴 거예요. 그러면 달달하고 향도 좋으니까 남녀노소 상관없이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게요.... 여기 대추 많은데, 청을 만들어서 따뜻한 우유랑 만들어 볼 수 있겠는데요. 오늘 당장 대추를 주문해야겠군요."
"네, 한 번 시도해 보세요. 선생님의 실력이라면 금방 연구해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대추가 설익은 것도 있고 잘 익은 것도 있을 테니 둘 다 연구해보세요, 제 생각에는 푹 익은 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지만요. 테스트 음료가 만들어지면 연락 한 번 주세요, 제가 나중에 부산 내려가는 길에 마시러 들려볼게요."
커피고래의 마스터와 나는 SNS계정과 명함을 서로 교환하고 정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지역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커피고래라서, 고민을 나눠주시니 더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대추라는 것이 경산만의 특산물은 아니다. 예를 들면 충남 보은군의 특산물 중 하나도 대추라서, 보은에서도 대추라떼를 하는 카페가 여럿 있고, 경산시에는 이미 대추라떼를 하는 카페가 있다. 하지만 커피고래와는 지역적으로 적당히 거리가 있는 곳이라서 커피고래만의 특출 난 메뉴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해서 말씀을 드린 것이다.
"선생님, 그리고 SNS를 통한 홍보는 꼭 하셔야 합니다. 이건 지금 시대에는 무조건이에요. 선생님께서 못하시면 담당자를 섭외해서라도 하셔야 해요."
"아, 그래요? 야, 이거 주변에 SNS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꼭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보다 더 고객층도 늘어나고 모객도 하니까요."
커피고래의 마스터님과 카페운영과 메뉴 등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피드백을 드린 후에 나와 이쁜 여자는 커피고래의 마스터께 반듯하게 인사를 하고는 태백으로 가는 길을 나섰다.
"선생님, 신메뉴 나오면 꼭 연락 주세요. 들릴게요."
"네, 먼 길 조심히 가세요~"
올해 추석, 부산 내려가는 길에 커피고래에 꼭 들릴 수 있기를. '고래의 꿈'이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