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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an 28. 2023

[미식일기] 비안리안, 부산

23년 양식 달인의 중화요리, 몸 쪽 꽉 찬 일품 변화구.

명절인 설을 맞아 내려간 부산에서 돌아오기로 한 날, 친지가 모였던 집에서 필자 가문의 (조상님들과 원만한 협의를 거쳐 가까스로 타결된) 마지막 제사를 드리고는 숙소인 어머니댁으로 돌아왔다. 심야 버스를 타고서 강릉으로 복귀하기 전 저녁을 배불리 먹고서는 부산을 떠나고 싶었다.


무얼 먹을지 궁리하다가 '중화요리'를 먹자는 얘기가 나와서 집 근처에서 찾은 독특한 이름과 이미지의 중화요리 주점. '비안 리안', 우리나라 말로는 '변검'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점이다. '변검'이 뭐야?'라고 물으신다면 중국의 전통 연극인 천극 중 하나로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가면을 바꿔 쓰는 기술이 포함된 연극으로, 검색엔진에 '변검'을 검색하시면 그 독특한 가면들과 현란한 가면 바꿔 쓰기 기술을 직접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것이다, 그리고 변검을 보시고 나면 왜 식당의 이름이 '비안리안(변검)'인지도 함께 납득이 갈 것이다.


곧 갈 것이기에, 영업을 하고 있는지 연락을 드렸더니 전화를 안 받으신다.


'지도 어플에는 영업 중이라고 쓰여있었는데, 안 하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찰나, 바로 전화가 온다.


[비안리안입니다, 전화 주셨었나요?]


[아, 네, 영업하시나요?]


[영업합니다. 오실 계획이신가요?]


[네, 3명이서 가려고요.]


[그러시군요, 혹시 몇 시에 오시려나요?]


[18시 30분 정도에 가겠습니다.]


[네~ 그때 뵙겠습니다.]


그저 영업을 하는지의 여부만 알아보려고 전화를 했던 것인데, 순식간에 테이블 예약까지 이끌어내는 홀 담당하시는 분의 영업수완에 훌륭한 홀 직원의 예라고 생각이 들었다. 예의를 지키면서 적극적인 대화로 고객을 잡다니, 마음에 들었다.


"여기 장사 잘하네. 부재중 전화를 연결해서 손님 유치를 바로 하시네."


"그러게, 너 원래 영업하는지 안 하는지만 알아보려는 거 아니었어?"


"그랬는데, 전화해 주시는 분이 적극적이셔서 마음에 들어버렸지 뭐야."


어머니댁에서 도보로 얼마 걸리지 않을 거리기 때문에 우리는 나갈 준비를 해서 금방 '비안 리안'에 도착했다. 변검에 사용하는 가면이 인상적이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서 상을 받은 우수한 식당이라는 소개 등이 가게의 겉면에 붙어있었다. 검은색 벽면에 통유리, 아주 약간의 중화스러운 장식품들로만 인테리어로 투박하지만 매우 간결한 중화식 요리주점이었다.


'23년 양식 요리사의 중식 요리주점'이라는 소개와 함께 장관상을 받는 주방장 겸 사장님의 커다란 사진이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양식을 하신 요리사님의 중화요리는 어떤 맛이려나, 아직 주문도 하지 않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저랑 전화하신 분이죠?"


까랑까랑하고 높은 톤으로 앞으로 멀리 뻗는 목소리를 가진, 홀 담당 겸 사모님께서 홀로 서빙과 손님 응대를 하신다. 가게는 개업한 지 몇 년 되었다고 봤는데 여전히 직접 손님들을 응대하고 친절하시다. 가게와 메뉴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시니 식당의 사장님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환영이다. 물론 너무 적극적으로 대화를 붙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손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그 와중에 친절함과 예의를 적절히 지켜주시는 모습이 프로답다.


우리는 사장님께서 추천해 주신 연근만두와 깐풍가지볶음을 주문한다. 튀긴 가지는 맛없을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거기에 매콤 달콤한 소스를 끼얹었다니, 완벽이다. 중국에서는 '풍미가지(펑웨이체즈)'라는 이름으로 현지인들도 많이 즐기는 음식인데, 한국의 중화요릿집에서는 보기가 어려운 메뉴라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동네 중화요리 주점에 이런 메뉴가 있다니, 운이 좋다.


"앞에 메뉴가 많이 밀려 있어서요, 그리고 주방에서 남편이 혼자 요리를 하는 식당이어서 요리가 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무조건 맛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좋아요, 맛있으면 그만이죠."


주방장이자 남편인 사장님의 요리솜씨에 대해 말씀하시는 아내분의 말에서 맛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 나온다. 내 입장에서는 처음 온 식당에 신뢰감 100%다. 말하신 것처럼 음식이 나오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그동안에 주변의 손님들을 둘러본다.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이 단골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정이 넘치는 목소리로 함께 대화하고 음식에 대해서 얘기하는 홀 사장님의 모습이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인가 싶다. 그리고,

비안리안의 깐풍가지볶음, 직접 먹어보시길 추천한다.

"주문하신 풍미가지 나왔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그래도 우리 남편이 음식에 진심이라서 음식은 맛이 엄청 좋거든요."


"죄송하다니요, 별말씀을요, 잘 먹을게요."


깍둑썰기로 네모나게 노릇노릇한 튀김옷을 입고 울긋불긋한 건고추와 함께 나온 깐풍가지볶음에서 매콤 달콤한 중화식 향미가 뿜어져 나온다. 배가 고팠던 터라 입안에 홍수가 날 지경이다.


바삭!


바사삭!


튀김옷이 환상적, 완벽해.

가지튀김의 겉면은 매우 단단하게 느껴지지만 씹으면 과자처럼 쉽게 부서진다, 바삭한 튀김옷과 함께 입에 느껴지는 달콤함과 약간의 매콤한 깐풍소스. 깐풍소스가 과하지 않고 옅게 튀김옷에 코팅되듯 묻어서 자극적이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든다. 거기에 입안에서 녹듯이 사라지는 부드러운 가지튀김이라니, 바삭함과 부드러운 식감에 달콤함과 매콤함의 조화, 황홀하다, 환상적이다. 이것이 꿈은 아닌가 싶어 가지튀김을 하나 더 들고, 소스가 조금 많이 묻은 다진 파를 잔뜩 묻혀 입안으로 가져간다.


"와, 가지가 입안에서 녹아요, 진짜 맛있어."


이쁜 여자와 나의 어머니도 나와 같은 황홀경에 빠져계신 모습이었다. 맛있는 시간이 끊어질 새라, 나도 얼른 가지를 입에 담는다. 잠시 눈앞에 중국 유학시절 갔던 중국 식당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칭따오 맥주를 시원하게 한잔 들이켰으면 좋겠다, 나는 분명


'라오반! 게이워 이핑 칭다오!(사장님! 칭따오 맥주 한 병 주세요!)'라고 외치겠지.

사진을 찍기 위한 마른 고추입니다, 함께 먹으면 큰일 납니다.

내가 좋아하는 튀긴 가지만두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깐풍가지볶음은 압도적으로 바삭하고 부드러운 중화식 튀김의 정석이다. 단순하게 얇은 튀김옷이지만 이렇게 바삭하고 속재료는 부드럽다니, 거기에 풍미 좋은 깐풍소스 덕분에 그릇까지 씹어먹고 싶은 맛이다.


"연근만두 나왔습니다! 가지튀김은 좀 어떠세요? 입맛에는 좀 맞으세요?"


푸짐한 튀김더미의 그릇, 연근만두를 들고 홀 담당 사장님께서 오신다. 음식에 대한 고객의 피드백을 듣는 태도, 100점. 나는 대답 대신에 마른 고추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빈 그릇을 가리킨다.


"빈 그릇이 대답이죠."


"어머 감사합니다!" 사장님은 따봉을 날리신다.


"주방장님께 꼭 전해주세요, 환상적인 맛이라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나는 진심이었다, 주방에 말을 전할 수 있다면 꼭 가서 직접 얘기했을 것이다, 당신의 손에서 만든 음식은 나를 잠시 중국으로 보내줬다고. 그리고 우리는 이어서 나온 메뉴인 연근만두를 만나보기로 했다. 하얗고 적당히 두께가 있는 연근 사이에 다진 고기소가 들었고, 튀김옷이 눈처럼 하얀 것을 보아 찹쌀반죽을 입혀 튀긴 옷으로 보였다. 함께 곁들여져 나온 유린기 소스에 살짝 찍어 먹으라는 사장님의 추천을 따라서 먹어본다. 역시나, 다시,

'어우쟈'라고도 부르는 비안리안의 연근만두, 국내에서도 하는 곳이 많이 없다.

바사사삭


아삭아삭


서로 다른 식감의 조화, 그리고 나타나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고기소. 찹쌀 튀김옷이라 바삭하면서도 쫀득하게 입에 붙는 맛에 아삭거리고 사각거리는 익은 연근의 맛, 그 사이로 고소하게 입안으로 들어오는 육즙, 그리고 가볍게 매콤하며 짭짤한 소스. 나와 이쁜 여자는 아삭아삭한 연근의 식감을 좋아해서 연근조림도 끈적거리는 것보다는 아삭한 연근조림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러한 우리의 입맛에는 비안리안의 연근만두가 잘 맞았다.

찹쌀튀김옷과 아삭한 연근, 부드럽고 고소한 고기소, 이것도 군침 돈다.

처음 식감이 쫀득거리면서 바삭하고 연근만두 자체에는 간이 많이 안 되어 있어서, 오히려 좋다. 함께 나온 유린기 소스에 찍어 먹으면 밋밋하게 느껴지는 음식의 풍미가 충분히 쌓인다.

튀김 옷에 보이는 저 쫀득한 찹쌀반죽과 연근과 고기소가 보이는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맛이 좋다.

거기에 조용히 사근거리는 귓속말과 같은 연근의 식감과 맛, 부드러운 고기소가 그 위로 녹아들면 젓가락의 움직임을 멈출 수가 없다.


"배부르다."


"나는 아직, 조금 더 먹고 싶은데. 사장님~"


나는 살며시 손을 들어 사장님을 테이블로 부른다.


"네에, 뭐 드릴까요?"


나는 메뉴판의 종이를 뒤로 넘겨 식사 메뉴를 쓱 훑어본다. 밥과 면이 식사로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거기에 주방장의 특제 볶음면이 있길래 먹어보고 싶은 욕구가 대폭 상승한다. 주방장의 '특제' 볶음면이라니, '차오미엔' 먹어 본 지 오래되었는데, 이것도 오늘 먹을 수 있는 건가.


"비안리안 볶음면 주세요."


"네~ 비안리안의 볶음면은요, 일반 중식 볶음면이 아니라 파스타면으로 볶아서 나오는데요, 괜찮으세요?"


나는 중화식 볶음면이라 중국식 달걀면이나 짬뽕면, 볶음면 등을 기대했는데 파스타라니, 뻔한 볶음면이 아니라 조금 더 다른 볶음면을 맛볼 수 있겠군.


"네, 파스타 좋아요."


"네~ 금방 갖다 드릴게요."


볶음면은 재료만 이미 준비만 되어있으면 금방 요리할 수 있는 음식이라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요리가 나왔다. 혼자 먹으려고 일부러 작은 사이즈를 시켰는데 큼지막한 그릇에 두 명은 먹을 수 있을 듯한 양이 나왔다. 새우, 청경채, 양파, 돼지고기에 작은 반숙 달걀프라이가 올려져 있다, 내가 기대했던 중국식 볶음면의 모습이다.


"이 볶음면은요, 맛있게 먹으려면요~ 제가 조금 손을 봐드려도 될까요?"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 주신다니, 거절하지 않는다.


"그럼요, 부탁드립니다."


"이 볶음면이요~ 이렇게~ 달걀 프라이를 갈라서요 버무려 먹으면 훠~얼씬 맛있어요~"


젓가락을 들어서 반숙 프라이 달걀의 노른자와 흰자를 능숙하게 가르시고는 면과 재료들을 노른자로 버무리신다. 말캉거리는 노른자와 흰자가 다른 재료들에 묻어 더욱 먹음직스럽다. 젓가락으로 가득 잡아서 입에 넣어본다.


중화식 볶음면이나 짬뽕면보다 부드럽거나 미끌거리고 부들부들한 식감은 없지만, 파스타 특유의 부드러우면서 꼬들꼬들하고 단단한 식감이 지루하지 않다. 파스타 면을 보아하니 둥근 것을 보아 스파게티니 혹은 엔젤헤어 면을 사용하신 듯한데 입안에서 섬세하게 씹히는 맛이 좋다. 달착지근하면서 짭짤한, 굴소스의 향내가 익숙한 맛이라 다시 한번, 중국 유학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닐 적에, 학교의 교내식당에서 곧잘 점심이나 저녁에 해주시던 중화식 볶음면의 맛이 생각났다. 잠시 10대로 돌아가 오전 수업을 마치고 교내식당에서 학우들과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밥을 먹던 시절이 생각나는 추억의 맛이다. 다만, 그때는 더 찰랑거리는 중국식 국수였다는 점, 30대의 으른이 되어버린 나는 꼬들꼬들한 파스타를 볶은 중화요리면으로 이미 즐겁다. 쫄깃하게 씹히는 돼지고기에, 탄탄한 육질의 새우, 거기에 아삭거리는 청경채와 달달한 양파. 후루룩 입으로 녹아들어 오는 반숙달걀까지 나의 몸은 따뜻함과 든든함으로 채워진다.


아쉬운 점이라면 너무나 맛있는 덕분에 사진 찍는 것을 잊어버렸다. 심심한 사과를 전할 뿐이다.


식사를 맛있게 하고 나서 가게를 나오며 추석 때 부산에 왔을 때에도, 그리고 그다음 해에도 가게가 그대로 존재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을 품었다. 고향집 근처에 이렇게 맛이 좋은 중화요릿집이 있다니, 집 앞 피자집만큼이나 환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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