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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Apr 22. 2023

[미식일기] 유키돈가스, 인천

두툼한 인심, 바삭한 분위기, 여기는 이세계의 밥집인가요.

아직은 추위가 다 가시지 않은 올해, 2023년 2월이었다. 이제는 '전' 직장이 되어버렸던 그곳에서 어떻게 일을 진행하다 보니 인천시청에 출장을 갈 일이 생겨서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출발해 도착한 인천 구월동. 시청 근처이다 보니 이런저런 밥집이나 가게도 많고 차도, 사람도 서울만큼이나 시끌벅적한 동네다.


내가 인천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었던 것은 아마도 5년 전쯤이었나 싶다, 그때도 인천터미널이 참 현대적인 곳이라고 생각했었고 '주안'이라는 지하철역 근처에서 아주 훌륭했던 돈가스, 함박스테이크 집을 발견해서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의 신세계를 맛보았었는데 그때의 그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인천시청 근처에서 가볼 만한 식당을 찾던 중에, 이번에도 돈가스 집을 찾았다. 식당의 이름은 '유키돈가스', 가게의 상호만 보아도 딱 두툼한 고기에 두껍고 큼직한 빵가루를 사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일본식 돈가스 전문점이다. 동네에서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유명한 식당인 듯 좋은 평들이 많이 달려있었다. 지역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식당이라니,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인천시청 지하철역에 내려 초록색 지도어플로 유키돈가스를 찾아서 걷다 보니, 유키돈가스는 인천시청 지하철역과 인천시청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인천시청 근처에서 볼 일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칠 수 없는 식사장소라고 생각했다. 유키돈가스로 향하는 간판과 안내판 등은 옛날 분위기가 물씬 난다, 건물의 지하 1층에 자리 잡고 있는 곳인데 이미 입구부터 강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나무와 큰 유리의 격자무늬로 짜인 문이 나를 반긴다. 손잡이도 금색 도금이 거의 벗겨지려는 플라스틱 손잡이. 와, 일식돈가스보다는 경양식 돈가스의 느낌이 강하게 오는데.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이 구조는 무슨 구조인가 싶다.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당신은 가게의 2층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투명아크릴 칸막이로 나뉜 1인용 테이블이 가게의 2층 난간에 쭉 코너를 따라서 나열되어 있는데 1인용 테이블에 앉으면 가게의 2층 벽에 쏘아지는 빔스크린을 통해서 유키돈가스 주인장의 고풍스러운 취향이 반영된 영화나, 오페라, 음악콘서트 등 문화공연을 감상하면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어있고 1인용 테이블들이 나열된 난간 뒤쪽, 혹은 당신이 들어온 입구 우측으로는 4인용 테이블들, 거기 구석에는 냉장고와 식재료들이 쌓여있는 모습이다.


'많은 가게들을 다녀봤지만, 이런 구조는 또 처음이네. 서울역 앞에 있던 유즈라멘의 반층 구조를 보는 것 같군.'


깊고 맑은 육수맛을 자랑했던 서울역 앞의 유즈라멘도 한 공간에서 1,2층을 나누는 구조를 하고 있었는데 유즈라멘은 반층정도라고 느껴지는 높이 차이였기에, 지하 1층과 지하 2층의 큰 높이를 나누고 있는 유키돈가스의 가게 구조를 보니, 그리고 한쪽 벽에 쏘여지고 있는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어느 음악학교의 개교기념 클래식 음악, 오페라 콘서트를 보고 있으니, 유키돈가스의 안쪽은 바깥과는 다른 이세계의 여관 혹은 주점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2층의 난간 아래를 보니 주방과 카운터, 맥주를 따르는 곳이 있고 내가 서있는 2층 바로 아래에도 4인용과 2인용 테이블이 함께 놓여 있었다. 그리고 마침 점심시간이라 1층과 2층이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것을 말할 필요도 없다. 마침 수업이 일찍 끝난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공무원, 경찰 등등 주변의 온갖 노동자들은 다 이곳에 와서 밥을 먹는가 싶다.


나는 별천지 세상의 밥집과도 같은 유키돈가스의 풍경에 문을 열고 들어와서 '문을 꼭 닫아주세요'라는 안내문은 보지 못하고 한참 후에야 문을 닫았다.


쿠우웅


무겁게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유키돈가스 내의 비대면 음악콘서트의 음악과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대화소리, 열기, 그리고 주방과 카운터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하고 바삭한 냄새가 나의 코를 잡고 이끈다. 문 옆에 작게 나있는 계단을 따라서 1층으로 내려가본다, 자리가 없으니 2층으로 다시 올라와서 1인용 자리가 비워지자마자 자리에 착석한다. 아직 출장 약속시간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있으니 여유롭게 주문하고 식사할 수 있다.


"뭐 드릴까요?"


2층을 담당하시는 점원분께서 물으시길래 나는 잠시 메뉴판을 보고서 짧은 고민에 빠진다. 보통, 라지, 점보, 그리고 카레라이스가 유키돈가스에서 제공하는 전부다.


'흐음... 사이즈가 3가지네... 보통은 한 장, 라지는 두장, 점보는 3장이려나... 여기 온 김에 돈가스는 여한이 없도록 먹고 싶군.'


고민을 빠르게 마친 나는 주문을 한다,


"라지로 주세요, 선생님."


"우리 집 돈가스 크고, 라지는 양이 많은데, 두 장인데, 혼자 드실 수 있어요?"


"네, 주세요."


자신 있게 주문을 한 나는 문을 따라 마시며 앞에 보이는 커다란 벽이자 빔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고 주변의 소리와 분위기를 듣는다. 여기가 카레라이스는 매콤한데 그리 맛있지는 않다는 둥, 사람이 너무 많으니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는 단체손님들의 소리, 대학교와 취업과 진로에 대해서 대화하는 남자들 등등.... 여기가 정말로 이세계의 주점이라면 다른 대화 내용이 오고 갔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앞에 보이는 클래식 콘서트에 빠져본다.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음악가들이 모여서 음악학교의 개교를 축하하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노는 사이에 나의 돈가스가 눈앞에 등장한다. 성인 남성의 팔뚝만 한 크기의 두툼한 고기의 돈가스가 먹음직스럽게 썰려있는데, 두 장이다, 라지를 주문했으니까. 보통을 시켰으면 아쉬웠으려나, 모르겠다, 먹어보자.


"식사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생각보다 돈가스가 꽤 크네. 아무리 커도 설마 했는데...'


사진에서는 크게 보이지 않지만 웬만한 성인 남성의 팔뚝만 한 크기다. 깨를 갈아서 직접 소스를 부어 섞어 먹는 초창기 일식 돈가스 집들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한 장처럼 보여서 돈가스 하나를 들어서 들춰보니 역시나 밑에 두툼한 돈가스 한 장이 더 기다리고 있다. 고기의 두께가 여간 두툼한 것이 아니다. 그래도 강릉에서 이만한 크기의 돈가스는 찾아볼 수 없다, 품질이라면 내가 아는 곳도 있지만 크기와 두께에서 비길 수 있는 곳은 강릉에 없는 것이다.


사진으로는 두께를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집은 부위는 돈가스의 거의 가장자리다.

"잘 먹어보겠습니다."


젓가락으로 소스그릇에 있는 깨를 절구처럼 섞어가면서 으깨주고 거기에 돈가스소스와 약간의 겨자를 넣어서 섞는다, 돈가스에 같이 곁들여먹을 땅콩과 요구르트, 참깨가 곁들여진 드레싱을 올린 양배추샐러드로 슥슥 비빈다. 돈가스 하나를 들어서 입으로 가져간다. 가운데에 자리 잡은 두툼한 조각을 먼저 먹기로 했기에, 입을 크게 벌려 저작운동에 시동을 건다.


바사사사사삭


일식 돈가스라고 하기에, 우리나라 초창기의 일식 돈가스 브랜드인 '허수아비돈가스 (아직도 지점들이 남아있다)'만큼이나 굵은 빵가루를 가진 돈가스를 기대했었는데 다분히 작지만 입자는 굵은 빵가루를 사용하고 있다, 갓 튀겨 나온 돈가스라서 그런지 엄청나게 바삭하다. 바삭하고 사각거리는 튀김옷 씹히는 소리가 귀뒤에서 들릴 만큼. 바삭한 튀김옷 밑에 깔려있는 두꺼운 등심은 구름을 씹는 기분이다.


푹신푹신


어금니 사이에서 부드러운 반동과 신축성을 발휘하며 튀겨 나온 돼지고기가 삼겹살이나 기름이 많은 부위도 아니고, 살코기인데 이렇게 촉촉하고 부드럽게 씹힐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거 의외다. 두툼하고 두꺼운 고기는 익혀지면 단단하고 뻑뻑해지기 마련인데, 튀김옷을 살짝 벗겨먹으면서 고기의 겉면을 보니 연육을 위한 망치질을 수없이 많이 당한 듯한 충격파의 자국들이 등심의 겉면에 소금과 후추 간을 멍처럼 갖고 있다.


'어쩐지, 이래서 두꺼운 고기가 입에서 쉽게 씹혔구나, 좋은데.'


이 등심은 돈가스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수십 번의 망치질을 견뎌낸 것이다

돈가스를 한 입 먹었으니 옆에 있는 샐러드도 먹어본다. 내가 좋아하는 양배추 샐러드의 굵기 3mm, 거기에 요구르트, 참깨를 섞은 일식 드레싱은 내가 발사믹 드레싱 다음으로 제일 좋아하는 드레싱이다.


아삭아삭


요구르트의 유지방 풍미와 상큼함, 거기에 참깨의 고소한 향기 사이로 달달하게까지 느껴지는 얇은 양배추의 섬유질이 치아들 사이에서 씹히며 사각거린다. 어떠한 일식 돈가스 집을 가던, 고소하고 상큼한 일식 드레싱의 맛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고소하고 상큼한 유키돈가스의 양배추샐러드. 맛있어서 아껴먹기만 했지, 한번 더 달라고 하는 것을 깜빡했다

맛있는 돈가스를 계속 먹으려면 속도를 내서 먹어야 한다, 돈가스 나머지 한 장이 밑에 깔려있으니 그 사이의 열기로 발생하는 수분이 돈가스의 튀김옷을 축축하게 적셔버리지 않도록 말이다. 축축하게 젖은 돈가스의 튀김옷은 환영하지 않는 식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유키돈가스의 바삭함이 쉽게 죽지 않는다, 내가 돈가스 한 장을 해치울 동안 아래에 깔려있던 돈가스의 튀김옷은 하나도 젖지 않았다. 너무 맛있으니 빨리 먹어서 그런가.


바삭하고 구수한 튀김옷의 식감과 풍미가 입안에서 간질거리고 적절하게 두드려진 푹신푹신하고 쫄깃한 등심의 식감이 질리지 않는다. 동네 맛집들의 요소 중 하나, 질리지 않는 맛. 튀긴 옷을 입힌 고기에 소스를 찍어먹는 것뿐이다. 이런 단순한 맛이 왜 질리지 않는가? 입안에서 바삭거리면서 쉽게 씹히는 튀김옷에 장인의 숨결이 당긴 망치질을 수십 번 당한 돼지고기는 모두에게 질리지 않는 맛을 주는 것이다. 마치 내가 돈가스를 먹으면서 즐겼던 오페라, 성악, 클래식 콘서트에서 노래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이 옛날의 저명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여러 번 연주해도 청중들은 질리지 않고 또 듣는 것처럼 말이다. 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작곡가들의 음악은 그래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연주되는 것이지 않는가. 맛있는 음식도 그런 것이고, 내가 먹고 있는 유키돈가스의 맛도 그런 것이다. 푹신하고 쫄깃한 등심의 맛이 나의 구미를 계속 당긴다.


드디어 마지막 조각이다, 나는 돈가스를 모두 해치웠다.

하지만 돈가스는 무거운 음식이다, 고기도 두툼하고 튀김옷도 제법 있기에 굉장한 포만감을 주는 음식인 것이다. 돈가스를 한 장 먹고 나니 배가 꽤 불러오지만, 이 돈가스들을 다 먹지 못하면 매우 후회스러울 것 같은 마음에 나는 내 눈앞의 빔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스페인 노래인 투우사의 노래(정확한 제목은 모르겠다)를 들으면서 천천히 돈가스를 음미해 나갔다. 내가 인천이라는 도시에 언제 또 올 일이 있겠는가, 그중에서도 유키돈가스에는 언제 또 오겠는가, 지금 내가 남기는 돈가스는 분명 미래에 언젠가는 내 눈앞에서 아른 것이며 나에게 '그때 그 돈가스를 다 먹고 올 걸'이라는 슬픔이 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천천히, 천천히, 돈가스를 해치웠고 마침내 깨끗하게 비워진 돈가스 접시를 볼 수 있었다.


'배가 꽤 부르네. 하지만 보통을 시켰으면 후회했을 거야, 곱빼기로 시킬걸 하면서'


출장의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이 '이세계의 밥집'과도 같은 유키돈가스를 나가고 싶지 않았다. 처음 왔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이방인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여관 혹은 술집과도 같은 분위기. 거기에 바삭하고 따뜻하며, 푹신한 돈가스. 나는 그럼에도 불구,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인천시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 또 인천에 올지는 모르겠지만, 두고두고 생각날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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