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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Aug 27. 2023

[미식일기] Froth & Fodder, Adelaid

약은 약사에게, 양식(洋食)은 양인(洋人)에게

나와 누나, 우리 집 두 남매는 20대 초반 시절부터 호주 멜버른에서 유학을 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우리, 누나는 현재 호주 아델레이드에서, 나는 대한민국 강릉에서 각자의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서로 문자나 전화로 연락을 이어가며 가족의 끈을 이어갔었지만, 실제 얼굴을 못 본지는 10년이 넘었다, 그래서 나는 올해의 더운 7월의 어느 날, 우리의 집 베란다에서 맥주를 함께 마시던 중, 필자는 갑자기 이쁜 여자에게 말했다.


"누나 보고 싶어. 휴가 때 호주 가자."


"?????"


갑자기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뜬금없는 소리에 두 눈이 커다란 도넛처럼 커지며 놀라는 이쁜 여자. 평소에는 그리 계획과 미리 생각한 일정으로 움직이는 남편의 충동적인 발표에 더 놀란 그녀.


"누나를 못 본 지가 10년이 넘었어."


"10년이면 길다면 길구나.."


"지금 우리가 돈도 있고 시간도 있지. 그런데 내 생각에는, 나중에는 우리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시간이 없어서 해외는 나가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 돈과 시간이 많아도 건강이 안 좋아져서 나갈 수 없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지금, 돈도 있고 시간도 있고 건강도 괜찮을 때 가자."


"그래, 네가 가자면 가는 거지."


그걸 또 시원하게 받아넘기는 그녀, 평소 계획적이던 사람이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것 같아도 그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획과 일정, 예산에 대한 계산이 끝났다는 것을, 그녀는 이전의 여행과 경험들을 통하여 알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7월 말이 되기 전 비행기표 예매, 여권, 비자 등에 대한 모든 일을 마치고 호주 애들레이드(혹은 아델레이드)로 여정을 떠난다.


필자가 호주를 가고 싶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더 늦거나 기회가 없기 전의 혈육을 보고 싶다는 것과 나에게는 젊을 시절을 보낸 제2의 고향, 마음이 편안해지는 고향의 음식들을 다시 맛보고 싶다는 것. 노천카페에서 먹던 브런치, 신선한 달걀과 유지방 가득 고소한 우유로 만든 음료들, 피시 앤 칩스와 미트파이 등등... 현지에서 먹을 수 있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들이 그리웠다.


대한민국에서 저녁에 출발한 우리는 브리즈번을 경유하여 다음날 오전에 애들레이드 공항에 도착해 누나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첫날은 시내에서 먹고 싶었던 싱가포르식 락샤와 사타이 닭꼬치, 그리고 레토르트 미트파이, 다양한 딥스와 워터크래커 등으로 푸드마켓과 대형마트에서의 미식을 즐겼다. 공식적인 미식 일정은 다음 날부터였으니까.


"우리 동네에, 여기 도시에서 손에 꼽히는 브런치 카페로 선정된 곳이 있어. 나도 남편이랑 곧잘 가는 곳이야."


애들레이드 시내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조용한 동네에 사는 누나는 미식을 좋아하는 나만큼이나 도시의 훌륭한 식당들을 많이 알고 있다. 호주에 있는 대표적인 대형마트 중 하나인 coles 근처의 상점가로 걸어가니 검은색과 흰색의 외관, 그리고 통유리로 겉을 보이는 브런치 카페가 있다. 호주에서는 간단하게 커피나 식사를 할 수 있는 브런치 카페가 동네에는 하나씩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는 동네에 편의점, 치킨집, 중화요릿집 등이 하나씩은 있는 것처럼.


검은색 배경에 흰 글씨로 'Froth and Fodder'라고 적힌 브런치 카페. 'Froth'는 맥주나 커피등에 발생한 거품을 의미하고 'Fodder'는 소나 말 등 가축에게 먹이는 사료를 의미하는 바이니 든든한 식사를 제공하는 '음료와 밥'집이라고 이해하면 되시겠다.


Froth and Fodder, '거품과 사료'라는 뜻으로 카페음료를 대접하는 밥집이라고 이해하면 되려나.


윗부분은 이 카페의 로고가 붙여진 유리로 된 두꺼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호주의 계절은 겨울이라 그런지 따뜻한 온기와 원목가구, 주방 스태프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부분적으로 열린 주방. 내부의 공기가 이미 사람을 환영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 이사 올 때부터 있던 곳이니까, 자리 잡은 지는 꽤 되었지. 호주의 어느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곳인데 기본적으로 갖춘 고정 메뉴 외에도 계절 메뉴나 특선 메뉴를 선보이기도 해."


현지에서 대략 오전 10시가 넘은 시각, 노천의 좌석까지 합해 대략 10팀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매장은 이미 3,4 팀이 식사나 차를 즐기고 있었다. 주방으로 가는 복도 근처 카운터와 바가 자리를 잡고, 그 앞 유리로 된 음식전시고에는 커다란 브라우니, 머핀, 패스츄리 등의 제과, 제빵류들이 번쩍거린다. 문을 막 열고 들어간 매장 입구에는 '인원수에 따라 테이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는 팻말이 우리를 반긴다, 안내대로 잠시 기다리니 노란색의 꽃원피스와 앞치마를 두른 직원이 곧 바에서 돌아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안녕, 좋은 아침이에요. 몇 분이시죠?"


낯선 손님에게도 친절한 인사를 건네는 현지의 문화는 언제 만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3명이에요"


"멋지군요, 저쪽 안쪽에 앉으시겠어요?"


말을 하거나 주문을 하면 '멋져요', '훌륭해요', '사랑스럽네요' 등등 기분 좋은 추임새를 넣으며 손님에게 응하는 것도 이곳의 문화, 별다른 뜻은 없지만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화법이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정독하기 시작한다. 호주 브런치 카페는 주로 에그베네딕트(수란에 홀란다이즈 소스를 올린 달걀 요리), 토스티(채소, 햄, 치즈 등을 넣고 구워낸 토스트 샌드위치)와 팬케이크 등을 주 메뉴로 팔고 거기에 달걀을 프라이나 스크램블로 변경할 수도 있으며 훈제연어, 구운 베이컨, 구운 감자, 버터에 볶은 양송이버섯이나 시금치, 샐러드, 뮤에슬리(건조한 잡곡, 주로 바 형태로 먹거나 우유에 말아먹는다) , 요구르트, 치즈 등을 사이드로 먹는데 손님의 취향대로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것이 장점이다.


우리가 메뉴를 정하는데 오래 걸릴 것으로 보였는지,


"음료부터 주문받을까요?"


"그러죠, 저는 플랫화이트요."


"우리는 차이라테, 향신료 들어간걸로요."


"좋아요."


한국에서 아메리카노와 라테, 다방커피를 잘 마시듯 호주에서는 롱블랙, 플랫화이트, 차이라테를 잘 마신다. 호주는 좋은 식재료가 풍부한 만큼 낙농업도 수요와 공급이 좋아 우유와 치즈의 품질이 훌륭한데, 그 덕분에 우유가 들어간 대부분의 음료는 우유의 고소함과 신선함을 즐길 수 있다.


호주의 대표적인 우유를 넣은 커피, 플랫화이트(Flat White). 일반 라떼보다 커피가 좀 더 진한 맛이 나고 우유가 더 고소한 편이다.


플랫화이트와 차이라테가 금방 나오니, 먼저 후루룩 마셔본다. 아, 역시 유지방 100%의 우유로 만든 플랫화이트는 고소함이 월등히 높다, 이렇게 맛 좋은 플랫화이트는 강릉에서도 귀하지.


호주의 우유 음료를 찬양하던 우리는 곧 음식주문을 마쳤다. 이쁜 여자는 베이글, 에그베네딕트, 루꼴라, 절인 적양파에 훈제연어를 얹은 '헤밍웨이'


나는 수란을 좋아하지 않기에,


"선생님, 에그 베네딕트는 오믈렛으로 변경이 될까요?"


"잠시만요, 주방에 물어볼게요."


주방을 금방 다녀온 직원은


"오믈렛은 안 되는데요, 프라이나 스크램블은 가능하다고 하시네요."


"오, 그럼 스크램블로 부탁드립니다."


"완벽하군요, no worries(문제없어요)"


No worries는 유독 호주에서 자주 쓰는 말인데, 직역하면 '걱정 없어요'라는 뜻, 우리나라 말로 옮기면 '괜찮아요', '문제없어요'라는 뜻으로 상대방의 부탁, 주문, 실례 등에 대하여 괜찮다며 긍정적으로 응답하는 말이다.


그리하여 필자의 브런치는 토스트를 두껍께 썰어 구운 것에 버터밀크(우유와 요구르트가 섞인 진득한 유제품) 튀김옷을 입은 닭가슴살, 스크램블 달걀을 올린 '레 폴로 로코'에 목살과 삼겹살 베이컨을 추가한 요리가 되었다. 주문이 들어가니 실력 좋은 카페인만큼 음식도 금방 나온다. 바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커피, 음료, 차의 향기와 주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식의 향미가 프로쓰앤포더(Froth and Fodder) 내부에서 어우러져 이곳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음식 나왔어요,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주문한 음식이 켜켜이 쌓아 올려진 넓은 접시, 아침부터 거나한 식사를 하려니 설레는 마음에 위가 급격하게 요동친다.


베이컨을 곁들인 레 폴로 로코. 잡곡 통식빵 토스트, 버터밀크반죽 닭튀김, 홀란다이즈 소스를 올린 스크램블에그


두텁게 썰려 구워진 식빵의 중간이 살짝, 움푹 들어간 모습에서 이 빵은 탄력 있고 푹신하다는 것을 확신했으며 깔끔하게 튀겨진 버터밀크 반죽튀김의 닭살, 그리고 영롱하게 반짝이는 달걀과 홀란다이즈소스, 이글거리는 베이컨의 모습에 미소는 자동이다.


일부러 살짝 덜 익혀 나온 달걀이 완전히 익기 전에 미리 포크로 떠서 맛을 본다. 달걀에 약간의 우유를 넣어 고소함을 더하고 비릿한 맛을 처리한 것에 버터로 볶아 더 고소하고 혀에서 흘러내리듯 매끄러운 식감이다.


홀란다이즈소스와 스크램블


"아... 스크램블은 응당 이런 맛이어야지."


달걀 황홀경에 빠진 나의 표정을 보며 이쁜 여자도 망설임 없이 자신의 연어와 수란 올린 베이글로 뛰어든다. 미간이 움찔거리며 손놀림이 빨라지는 것은 나와 마찬가지.


"이거 맛있다, 진짜 푹신푹신해."


수란의 흰자와 반숙 노른자를 홀란다이즈소스에 묻혀 입에 넣고는 이쁜 여자도 즐거운 식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면 다른 것들도 맛을 봐야겠군."


스크램블을 튀긴 닭과 함께 입에 넣는다. 버터밀크라는 끈적한 유제품을 튀김옷이나 팬케이크에 넣는 것은 호주의 전형적인 요리법 중 하나이다. 버터밀크가 튀김반죽에 들어가면 닭의 잡내를 잡아주면서 단단하고 부드러우며 담백한 튀김의 맛을 선사한다.



오도독 오도도독


'바삭바삭'보다는 조금 더 큼직하고 굵은 닭튀김의 식감에 씹을 때마다 우유의 고소함이 입안에 함께 부서져 내린다. 거기에 함께 씹는 달걀이 부드러움이 더해지고 보들거리며 씹히는 닭가슴살의 재밌는 식감. 한국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식재료의 맛이기 때문에 더 즐겁다.



그리고 나는 토스트에 베이컨과 달걀을 함께 올려서 씹어본다. 베이컨은 목살과 삼겹살이 섞여서 바짝 굽지 않은 촉촉하고 짭짤한 방식, 베이컨 특유 훈제의 풍미와 지방, 살코기의 쫄깃한 식감은 나의 아침을 번쩍 깨우기에 충분하다. 베이컨의 바삭 짭짤하고 쫄깃함이 달걀의 매끄러운 고소함에 섞이고 푹신하게 튕기는 식빵의 식감, 훌륭한 조합이다. 거기에 재료들에 골고루 묻어있는 겨자 마요네즈가 느끼할 수도 있는 진부한 맛을 중간중간 잡아주고 있기에 시장함과 함께 나의 뱃속으로 사라져 갔다.



"연어가 느끼한 맛도 없고 비리지도 않아, 촉촉하고 부드러워."


옆에서 에그베네딕트와 훈제연어가 올라간 헤밍웨이식 베이글을 먹는 이쁜 여자도 자신이 주문한 메뉴에 큰 만족감을 표했다. 다만, 현지인들을 기준의 음식양이 본인에게는 많았는지 그릇을 깨끗이 비우기 위해서 나의 도움이 필요했을 뿐.


헤밍웨이식 브런치: 베이글, 절인 양파, 루꼴라, 에그베네딕트, 훈제연어


식사를 마치고 나니 각 나라의 음식은 각 나라 현지인들이 잘하는구나 하는 기본적인 진리가 뇌를 관통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식을 잘하듯, 양식은 서양 사람들이 잘하네."


"그러게."


훈제연어 위로 흘러내리는 에그베네딕트


물론, 의외의 경우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양식은 양인들이 잘한다'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Froth and Fodder의 브런치를 먹고 나서 말이다.


식사를 다 하고 나서는 누나와 함께 카운터로 가서 점원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식사는 어떠셨어요?"


밝게 웃으며 묻는 직원의 말에 나는 말 대신, 지갑에서 10 호주달러를 꺼내 그들의 팁항아리(호주에도 팁문화가 있지만 미국처럼 의무처럼 여겨지지는 않는다. 안 주더라도 직원들의 매너는 변함이 없는, 계산하고 나가는 고객의 마음에 맡기는 자발적인 팁문화이다)에 넣으며 웃었다.


"와, 인심이 두둑하시네요!"


직원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응하자 나도 그들에게 칭찬을 날린다,


"내가 역대적으로 먹어본 브런치 중에 최고의 브런치였어요, 절대로요."


내가 눈을 질끈 감는 표정과 끄덕임, 왼손의 엄지, 검지, 중지를 모아서 손을 왼쪽으로 당기며 선을 그리는, '맛있다'를 뜻하는 손제스처를 취하자 직원도 손을 가슴에 얹으며,


"감동스러운 순간이군요, 감사해요!"라며


내가 봤던 요식업 직원들 중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우리가 식사를 마칠 때쯤 매장은 만석이었고 노천의 자리에도 자리들이 점점 차오르는 모습이었다, 브런치를 먹으러 Froth and Fodder에 오기를 잘했다고 확정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우리는, 다음 날 아침도 Froth and Fodder에 들렸다. 주방의 큰 틈을 통해 눈이 마주친 셰프에게 나는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바로 주문했다. 치즈와 채소를 넣고 구운 토스티를 먹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호주의 유명 팬케이크 전문점인 팬케이크 팔러(Pancake Parlor)의 팬케이크 맛이 그리웠던 나는 버터밀크가 들어간 팬케이크에 베이컨, 그리스식 할루나 구운 치즈와 구운 토마토를 곁들였고, 이쁜 여자는 에그베네딕트와 구운 식빵, 훈제 연어를 추가해서 기쁜 브런치를 또 즐겼다.


버터밀크 팬케잌, 구운토마토, 베이컨, 할루미 치즈


전날 감동스러운 대화를 나눴던 직원은 교대 근무여서 없었지만, 브런치 카페에서 우리를 위해 대접해 준 음식들은 5성급 호텔의 조식 못지않은 요리였다.


Froth and Fodder, 현지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브런치 카페일 것이고, 나에게는 비싼 항공권과 15시간의 여행시간을 기꺼이 투자해서라도 다시 가고 싶은 브런치 카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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