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로 Aug 19. 2023

[미식일기] 카페 리브레, 서울

자유롭고 향긋한 물방울들의 결정체

호주로 향하는 출국을 하기 전날의 어느 저녁, 이쁜 여자와 나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있었던 에드워드 호퍼전을 친한 형님과 함께 관람한 후 영등포로 향했다. 비가 생각보다 많이, 갑자기 내려오고 있었지만 그리 걱정은 없었다, 어차피 밖에서 돌아다닐 것도 아니었으니.

강릉에서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다가 본가가 있는 고양시로 돌아갔던 바리스타인 '곰군'을 영등포에서 만나 저녁 한 끼를 먹고 함께 즐거운 커피 한잔을 하기 위해 영등포역에 내렸으니까. 주말 저녁 시간, 서울 영등포역에는 사람이 붐볐고 그 사이에서 큰 키와 커다란 등치를 지닌 '곰'과 같은 체구로 우리에게 손을 흔들면서 맞아준 곰군과 우리는 거나한 한 끼로 회포를 풀고 그가 단골로 방문한다는 '카페 리브레'로 향했다.


커피를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카페 리브레'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는 브랜드인 것을, 커피 전문가가 아닌 나도 이미 알고 있을 정도인, 프로레슬러의 가면이 상징인 로스터리 카페. 강릉에서 단골로 다니는 카페에서 이곳의 원두를 들여서 내려주기도 했고, 곰군이 나와 이쁜 여자에게 콜드브루를 내려서 보내줄 때마다 사용했던 원두는 카페 리브레에서 구매했던 원두이기 때문에.... 그리고 곰군이 적어도 일주일에 두어 번은 원두구매 및 커핑을 위해서 방문하는 곳이라서 익히 알고 있는 곳이다.


나와 이쁜 여자를 드립커피와 콜드브루의 길로 인도해 준 이가 함께 가자고 하는 단골 카페, 마다할 필요도 없이 그를 따라서 함께 간다.


"여기가 '오월의종'이라고 하는 베이커리와 함께 하고 있는 곳이라서 먹고 싶은 빵 있으면 함께 시키세요~!"


우리와 한껏 배불리 먹고 좋아하는 카페도 가게 된 곰군은 이미 상당히 신난 상태다, 아마 자신이 좋아하는 카페와 그 원두들을 함께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신나는 점이겠지. 나도 동의한다, 나도 그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마시고 있는 커피의 맛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참 좋아하니까.


어느 백화점 옆 공원 골목 옆에 자리 잡은 카페 리브레 영등포점에 도착, 마침 어느 유명 화가의 전시가 매장 내에서 함께 이루어지고 있으니 미술에 일가견이 있는 이쁜 여자도 눈이 반짝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을 우산으로 탁탁 털고는 안으로 들어간다. 콘크리트 회색의 반질거리는 벽들, 적갈색의 벽돌 등으로 이루어진 내부 인테리어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화가의 작품들과 카페 리브레의 상징인 레슬러 마스크가 눈에 확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방에 바로 바리스타분들이 모여 커피를 내리는 장면이 펼쳐지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오월의종 베이커리와 한가득 쌓인 빵들, 오른쪽은 또 다른 홀과 작품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가장 먼저 다가가는 곳은 매장 한가운데, 빵들 옆에 자리 잡은 원두들을 고를 수 있는 공간. 샘플 원두들이 유리병에 담겨 있으니 원두를 필터로 내리기 전에 먼저 향을 맡아보고 고를 수 있다.


"곰군, 커피 고르러 가자."


"좋아요~!"


반질거리는 유리병 안에 시향 가능한 원두들이 들었다, 여느 대형 로스터리 카페들이 그러하듯이 로스팅을 포함한 컵프로파일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유심히 프로파일을 읽으며 향기로 그 맛들을 경험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본다. 물론 필터로 내려서 완성작이 나와야 결론을 낼 수 있겠지만 일단 냄새라도 맡아보면서 어느 것의 맛을 볼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흐음.... 향기들이 다 좋아서 고르는 것이 쉽지 않군..'


매장에 전시된 원두들을 전체적으로 다 맡아본 후에 나는 두 가지로 후보들을 압축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남미에서 온 두 가지 원두들을 두고서 고민한다.


'온두라스로 갈 것이냐... 코스타리카로 갈 것이냐...'


그리고 옆에서 들려오는 곰군의 한마디.


"형, 고민하지 말고 하나 집으세요. 하나 마시고 또 마시고 싶으시면 제가 또 사드릴게요."


"오, 그래?"


듣던 중 반가운 곰군의 말, 오냐, 서울에 올라온 김에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시고 싶은 원두는 다 경험하고 가야겠다.


"그럼 나는 이거... 온두라스로 뜨겁게."


"네, 저는 에티오피아 마시려고요."


"곰군, 나는 디카페인 나이트호크 블랜딩으로."


각 나라에서 온 싱글오리진 외에도 카페 리브레에서 직접 블랜딩 해서 판매하는 원두들도 있었는데 그중에 미군의 헬기 이름과도 비슷한 이름을 가진 디카페인 블랜딩 원두를 이쁜 여자가 골랐다. 다음 날 출국을 해야 하는 일정과 피로도를 감안하여, 다가올 밤은 푹 자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이려나.


곰군이 주문을 하러 가자 카페 리브레 영등포점과 연남점의 단골손님인 곰군을 이미 알아본 카페의 직원이 기쁘게 주문을 받는다. 그리고 곧 나오는 나의 커피, 온두라스 로스 플라타노스 파라이네마 내추럴.


커피 원두들의 이름이 이렇게 긴 이유는 알 사람은 안다, 국가, 지역 혹은 농장이름 거기에 원두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붙어있기 때문이다. 드립이 내려진 커피의 색을 봤을 때는 비슷비슷한 색이기 때문에 구분하기 어렵지만 일단 향기로 맛을 보면서 시작한다. 일단 커피를 내 입으로 직접 마시기 시작하면 컵프로파일에 무슨 맛인지 설명하는 것이 쓰여있든 상관이 없다, 내 입과 혀가 곧 컵프로파일이다.


처음은 과일과 같은 산미와 향이 코와 입으로 후욱 들어온다, 과일향과 산미는 컵프로파일을 읽어서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 뒤로 민트와도 같은 바람의 상쾌함이 불어온다. 과일 향기에 이은 민트향에 이미 기분이 상승한다.



"맛이 좋네, 이거. 잘 골랐어."


"커피 맛이 마음에 드세요?"


"응, 완전 마음에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물을 한잔 마시면서 커피가 가진 잔미를 확인한다. 깔끔하며 가벼운 맛이 입안을 지나간 후에 그곳에는 견과류의 고소함에 내추럴 원두 자체의 단맛이 남는다. 그 한잔으로 내가 해당 카페에 갖는 시선은 결정이 된다,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사람들이 있는 카페구나. 이 한잔을 마시고 나서도 또 한잔을 부탁해도 되겠구나. 단순한 커피 한 잔은 많은 것을 결정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지금 내가 손안에 쥐고 있는 커피가 맛있는 커피라는 것을 알았으니 상큼한 민트에 달달한 꿀을 곁들여 마시며 그다음 커피를 마실지 말지 생각하게 된다.


'아... 이거 외에도 향이 좋은 원두가 있었는데, 마실까 말까. 그래도 오늘 커피를 많이 마셨는데... 고민이군.'


"형, 한 잔 더 안 드실래요?"


내가 약간 커피를 마실지 말지 고민하는 얼굴을 보이자 곰군은 넉살 좋은 미소를 보이면서 말한다.


"형, 한 잔 더 드셔요."


그리고 나는 결정한다, 고민은 길어질 필요가 없다.


"좋아, 나 과테말라 한 잔만 더 마시고 싶어."


"네, 제가 주문할게요."


처음 마실 커피 원두를 고를 때 마지막까지 후보로 남은 두 가지 중 나머지 하나를 더 마시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같은 남미에서 온 원두보다는 다른 대륙의 커피를 마시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런 인정이 가득한 생각보다는 나의 코와 입을 우선시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를 위한 필터커피가 한 잔 더 올라온다, 코스타리카 라스라하스 펠라 네그라. 코스타리카 외에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싱글 오리진 원두의 이름이지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맛이 좋으면 그만이다, 적어도 커피를 마실 때는.



"햐, 이것도 신기하네, 같은 산미 계열의 맛인데 맛을 내는 방식이 달라."


"어떤데요?"


"아까 마셨던 온두라스는 입안 전체적으로 과일향이 풍긴다면, 지금 마시는 코스타리카는 혀 양옆을 통해서 새콤한 과일맛이 입안을 관통하듯 지나가는 맛이야."


"그래요? 저도 마셔봐도 돼요?"


"응, 마셔봐, 재밌다니까."


온두라스는 산미가 구름처럼 퍼져나가는 맛이었다면, 지금 마시는 코스타리카는 과일향이 입안을 빠르게 지나간 후 목구멍에서부터 화사한 꽃향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라오는 맛이다. 언제 생각해도 그렇지만, 커피는 적도 부근에 있는 나라들이 주로 생산을 하는 즉 비슷한 위도 하지만 경도의 위치, 토질이나 기후, 생산 과정에 따라 천차만별의 맛을 내는 것이 재미있는 점이고, 그렇게 해서 나온 원두도 어떻게 로스팅을 하고 브루잉을 하느냐에 따라서 또 다른 맛이 나온다는 것이다.


'산미'라는 비슷한 계열의 맛을 가진 커피이지만 그 맛이 어떻게 입안에서 표현되는 것도 달랐고 끝맛도 달랐다, 코스타리카는 마지막에 오렌지 과일 계열의 맛을 풍기며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역시 내가 좋은 커피를 골랐다는 생각보다는, 카페 리브레에서는 괜찮은 원두와 좋은 바리스타들이 맛있는 커피를 내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영등포라는 지역에 왔을 때, 내가 신뢰하고 커피를 마시러 올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느 음식이나 그렇지만 커피라는 기호식품도 마찬가지로 취향에 따라서 평은 천차만별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내 기준에서는, 카페 리브레의 원두와 커피는 언제든 다시 마셔도 좋을 커피이다. 곰군과 다시 만나서 카페 리브레에서 커핑도 함께 하고, 드립커피도 한 잔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는 곰군과의 향긋한 저녁을 마무리했다.

작가의 이전글 [미식일기] 정성옥, 성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