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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Aug 06. 2023

[미식일기] 정성옥, 성남

칼칼하고 끈적한 국밥의 짬뽕과 순대가 맛있었던 건에 대하여

"고로씨! 잘 지냈어요?"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서 가끔 차 한잔 하는 사이였던 대니님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내가, 곧 독자분들에게 순차적으로 연재할 해외 식도락 기행인, 호주 애들레이드로 휴가를 떠나기 얼마 전이었다. 대니님이 운영하는 미트볼하우스를 통해 연이 닿아서 지금까지도 서로 SNS로 이웃을 하는 사이.


"오, 사장님, 요즘 바쁘시던데요, 무슨 일이세요?"


"이번에 분당에 정성옥이라는 가게를 새로 맡아서 열었거든요, 그래서..."


대니님이 새로운 가게를 분당 쪽에서 열었다는 것은 나도 그의 SNS를 통해서 항상 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먼저 연락을 주시다니 감사할 따름, 준비하시는 음식 사진을 보면서 그래도 한 번은 들려서 먹어보고 싶었는데 반가운 연락이었다. 대니님의 요지는 가게로 식도락 여행을 와보지 않겠냐는 것이었고, 그에 대해서 나는


"좋아요, 가겠습니다. 첫째는 제가 식도락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제가 대니님을 좋아하니까요."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금번의 성남 '정성옥'으로의 고로의 식도락 여행이었다. 어렸을 적에 성남은 치과 진료로 인해서 주기적으로 가던 동네였고 장성한 후에 가본 것도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어서 그쪽 동네가 어떻게 변했는지 구경하는 것도 나에게는 큰 재미다. 강릉에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성남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일부러 시내버스를 타고서 정성옥으로 향했다.


터미널과 정자역, 서현역 등을 지나서 도착한 서울 톨게이트 부근에 자리 잡은 전기차 충전소 채비 소프트웨어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정성옥은 아직 각종 지도 어플에는 등록도 하지 못한 따끈따끈한 신상 한식집이다. 들어가기 전에 잠깐 입구에서 어떤 음식들을 지금 하고 계시는지 살펴본다. 내 눈에 가장 눈에 확 띄는 메뉴는 '짬뽕순대국밥', 강릉의 짬뽕순두부 스타일의 짬뽕에 서울 음식은 순댓국을 조합한 국밥이다. 어떤 맛을 낼지 궁금하니까 시켜보고, 그리고 마침 정성옥에서는 수도권의 어느 유명한 'ㅅㄹㅇ'이라는 한식집에서 이북식 만두를 가져와서 판매하고 계시다기에 그것도 주문해 본다. 대도시에서는 많이 적용하고 있는 테이블오더 시스템으로 화면을 누르며 주문하며 매장 내부를 잠시 둘러본다.


전기차 충전소라는 최신기술이 함께 있는 곳이다 보니 매장 내의 인테리어는 하얀색과 나무, 선명한 모니터 등으로 꾸며져 있고 주방은 절반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요리하는 모습이 홀에서 다 보인다. 전기차를 충전하면서 매장 내의 모니터에 어느 정도 충전이 되었는지 출력이 되기 때문에 전기차가 충전되는 것을 보면서 느긋하게 식사하기 좋게 되어있는 가게의 내부였다.


"고로님, 터미널 오시면 연락하시지! 뭐 사람이 이래."


"에이, 괜찮아요, 동네 구경도 할 겸 일부러 시내버스 타고 왔어요."


내가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하자, 홀에 다니는 로봇 웨이터가 밑반찬들을 먼저 가져다준다. 콩국물이 넉넉하게 깔린 초당두부 한 조각에 백김치, 섞박지, 고추장아찌. 농밀하고 담백한 초당두부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으면서 역시 초당 두부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붉은 섞박지를 한입 베어 물었다.



아삭!


잘 익은 무에서 들리는 즐거운 식감과 함께 상쾌하고 상큼한 무의 달콤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오오...! 이 섞박지 뭐야..."


시원함과 달콤함을 무에서 최대한 끌어낸 섞박지다, 여태껏 먹었던 맛 좋은 칼국수 집들이나 국밥집들에서 먹었던 인상적인 깍두기나 섞박지 등과 견주어도 누구에게나 맛있다는 생각을 하게 할 맛이었다.


"이 섞박지 왜 이렇게 맛있지, 마법이라도 부리셨나."


달콤 상큼하고 시원한 맛이 한식적인 전채 요리로 제격이다, 아삭하기도 하고 입안에서 사르륵 으스러지는 잘 익은 무의 식감, 비록 반찬으로 나왔지만 나에게는 훌륭한 전채 요리다. 밑반찬으로 나온 음식들이 훌륭하다 보니 메인으로 나올 만두와 짬뽕순대국밥에 대한 기대치가 한 폭 높아진다.


"이거는 다음 주부터 판매할 대관령 메밀전병이에요, 같이 먹어요."



어느샌가 다가오신 대니님이 나에게 메밀전병을 한 줄 건네어주고 가신다.


"오, 감사해요!"


메밀전병(혹은 총떡이라고도 부른다)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게눈 감추듯 전병이 사라지니, 이어서 로봇이 가져다주는 이북식만두, 성인 남자의 주먹만큼이나 커다란 만두알의 피가 얇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겉으로 보이는 쭈글쭈글하고 올록볼록한 표면에 신뢰감이 든다. 속이 궁금하다, 이 만두. 숟가락으로 반을 갈라 본다. 반을 가르니 속재료를 보기도 전에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숟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입안으로 묵직하지만 심심하고 담백한 맛이 떨어진다, 하지만 거기에 이어지는 속재료들의 촉촉하고 잘근잘근,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과 얇은 만두피의 녹아내리는 듯, 미끄러지는 듯한 촉감이 기가 막히다. 제일 즐거운 부분은 입안에 만두가 가득 차는 충만감, 심심하기만 한 만두를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 만두를 찍어먹는 간장은 짭짤하고 달콤 새콤, 가볍게 만드셨다.



"이 간장도 맛이 좋네, 달콤 새콤하니 유린기 소스 같아."


그냥 만두를 찍어먹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만두를 입안에 넣고는, 입이 터져라 가득 씹으며 그 사이에 간장 종지를 살짝 들어 입으로 들이부었다. 만두 속을 살짝 보니 돼지고기, 양파, 부추, 당근에다가 갈색 점이 살짝살짝 보인다, 아아 만두의 끝맛에 나던 그 정체 모를 고소함은 들깨였구나. 만두가 입안에서 치아에 닿을 때, 만두피의 얇은 부드러움이 먼저 닿고 거기에 육즙과 채수 가득한 촉촉한 속재료가 어우러지니 어렸을 적 좋아하던 어느 칼국수 집의 왕만두를 다시 먹는 기분이다. 물론 지금 먹는 만두는 이북식 만두라서 다른 종류이지만, 어릴 적의 향수를 불러올 만큼 맛있다.



"이거 담백하고 심심한 척하는데, 사실은 엄청 맛있네."


나는 순식간에 정성옥의 이북식만두 네 알을 해치운다. 혼자 밥을 먹을 때의 장점은 내 맘대로 다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 혼자 밥을 먹고', 상상만 해도 즐거운 노래 가사이다.


"만두를 다 먹었으니 이제 짬뽕순대국밥을 만나볼까."


사실 짬뽕순대국밥은 만두가 나오기도 전에 미리 내 식탁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짬뽕의 강한 맛이 만두의 맛을 가릴까 봐 만두를 먼저 먹은 것이었다. 나는 한껏 올라간 기대감을 갖고 짬뽕 국물을 한 숟가락 먹는다.



후루룩


정성옥 짬뽕순댓국 국물의 처음 느낌은 울대를 손날로 치듯이 '탁' 치고 들어오는 짬뽕국물의 매콤한 칼칼함. 하지만 매콤함은 매우 적다, 하지만 칼칼함은 목 뒤까지 그 얼얼함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다, 고운 고춧가루를 어디서 받아 쓰시는지 궁금할 정도로. 그리고 거기에 '순대'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구수함과 묵직함이 뒤따라서 식도를 타고 뜨끈하게 들어온다.


"와, 짬뽕이랑 순댓국을 섞었는데 이렇게 맛있다고?"


강릉식 짬뽕순두부의 짬뽕과 서울식 순댓국을 섞는다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이게 된다고? 이게 이렇게 맛있는 국밥이 된다고? 뒤통수를 강하게 후드려 맞는 듯한 맛있는 충격이다.


숟가락을 넣는 순간부터 목구멍과 울대를 손날로 탁 치는 칼칼함, 그리고 구수함이 뒤따르는데 이는 순댓국의 고소함과 묵직하고 진한 육수. 입안에 끈적끈적한 잔미가 남는 이 기분, 육수 진하게 우리는 돼지국밥 생각도 난다. 짬뽕순대국밥의 국물을 마시고 나면 입안이 끈적끈적하다, 부산에서 좋은 돼지국밥을 먹으면 육수가 구수하며 끈적한데, 딱 그 느낌이다.



"짬뽕이라는 이름답게 짬뽕에 들어갈 재료는 다 있네, 하하."


목이버섯이 마침 눈에 보여서, 냅다 먹어본다. 내가 좋아하지 않은 식재료라서, 목이버섯은 왜 넣었을까 싶었는데 씹으니 찰랑거리며 아삭한 식감, 국물을 살짝 머금고 사각거리며 사라진다.


"오?"


재료들을 함께 다 먹어보면 어떨까, 짬뽕순대국밥을 한 숟갈 크게, 재료들을 숟갈에 가득 담고 한입 넣으니, 콧구멍의 입구부터 불맛이, 돼지고기의 끈적하고 구수한 향이 섞인 이 맛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불에 그을린 재료들의 맛이 나의 구미를 더욱 당긴다.



돈육, 순대, 바지락, 순두부, 부추, 목이버섯, 오징어, 양파, 애호박 등 짬뽕의 시원함을 담당하는 재료들은 순댓국밥의 진득하고 구수한 맛들과 사이가 제법 좋다.


처음 메뉴를 보았을 때는 굳이 섞어야 할까 조심스럽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짬뽕과 순대는 기대 이상으로 궁합이 좋다. 돼지가 가진 구수함을 얼큰함으로, 짬뽕이 가진 매콤함을 부드럽게 전환시킨다. 순대는 당면, 돈육이 피와 함께 들어 돼지의 진한 맛을 증폭시킨다. 강릉과 서울의 맛을 균형 있게 섞어놓았다. 돼지고기와 순대는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한 육즙에 섞인 매콤한 짬뽕 맛이 함께 치아 사이로 스며들어와 저절로 그 향미에 눈이 감긴다.



먹을수록 매콤하고 입안에 끈적하게 늘어지는 끝나지 않는 고소함이 입을 지루하지 않게, 계속 자극한다. 그게 싫어질 때쯤, 다시 섞박지 하나 입에 물고 상큼하고 달달하게 수저를 드는 것이다.


"여기 강릉에서 먹던 짬뽕순두부보다 맛있어"


"초당에서 먹던 것보다 괜찮은 것 같아"


내 옆에서 짬뽕순두부를 먹던 어느 젊은 커플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도 속으로 그들의 대화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이 정도 짬뽕의 맛이면 짬뽕이라는 음식 이름 앞에 '강릉'이라는 지역명을 달아도 된다.


"콤마님, 맛은 좀 어떠세요?"


대니님이 바쁘고 뜨거운 주방에서 잠시 나와 나의 테이블로 오셔서 앉으신다. 나는 입에 있는 짬뽕순대국밥을 씹으며 엄지를 두 개 척 올리고는 고개를 강하게 끄덕인다.


"대니님, 맛있는 음식은 글이 쉽게 써져요, 왜냐하면 이 맛있음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거든요."


대니님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와 대화를 잠시 나누며 나는 오늘 나를 이곳까지 불러준 그에게 감사했다. 그는 먼 곳에서 와주어서 고맙다며 나를 성남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주며 나와 근황토크를 나누었다. 오늘 사실은 사람들이 많이 안 올 줄 알고 커피라도 한 잔 하려고 했는데 예상보다 사람들이 몰려서 바빴으니 미안하다며. 별말씀을, 나는 덕분에 맛있는 식도락을 할 수 있었는데. 강릉으로 다시 돌아와 정성옥에서 먹었던 섞박지와 만두, 짬뽕순대국밥에 대해서 생각하려니 다시 배가 고파진다.


강릉에서는 안 하시려나? 또 먹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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