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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ul 15. 2023

[미식일기] 39돈까스, 서울

돈가스인데 소스가 이렇게 맛있으면 반칙입니다

나의 글을 읽어왔던 독자들은 이미 알겠지만 나는 사람이 많고 차가 많고 붐비는 장소를 싫어한다, 그래서 서울을 싫어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행정과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는 서울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방문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 법이다.


특별하게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것 없이 살다가 진지하게 공부를 해야겠다는 뜬금없는 일념하나로 사이버대학교를 입학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나는 나의 첫 사이버대학교가 될 학교가 있는 서울로 소중한 토요일을 보내기 위해서 케이티엑스와 지하철을 타고서 학교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토요일, 휴일이니까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기는 개뿔, 역시나 서울이라서 그런지 대학생들도 많고 이런저런 사람들이 이 좁은 땅덩어리에 모여서 열기에 열기를 더해서 더 더운 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얇은 여름용 정장 바지에 반팔 와이셔츠를 입고 간 것이 다행스러웠다. 차와 사람이 붐비고 있으니 얼른 한적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대학교의 캠퍼스로 이동하기 전에, 서울에 비싼 돈을 들여서 온 김에 아무것도 안 먹고 갈 수는 없다. 이전에 지도 어플을 활용해서 찾았던 몇 개의 음식점들 중에 하나를 골라 방문하기로 했었기에, 그곳부터 먼저 찾아 나선다. 대학교에서 멀지 않은 골목에 자리 잡은 '39돈가스'라는 곳이었는데 근처 대학생들과 지역 주민들로부터 받은 평가가 좋아서 방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는 돈가스나 제육볶음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파스타와 피자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점심시간에 돈가스와 제육볶음, 카레만 있으면 뚝딱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보다는 더 다양한 메뉴 선택권을 갖고 점심시간을 즐기고 싶은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대학교 근처 돈가스집은 한 번 지나치지 않고 가볼 만하겠지. 열기들이 온몸을 훅훅 휘어잡는 거리들과 공사현장들을 지나서 들어간 골목, 유명한 중국집들, 마라탕집들 사이로 작은 돈가스집, 39돈가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식당에 들어가니 3, 4팀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탁자와 좁고 긴 주방, 홀에는 길쭉하고 하얀 키오스크와 식사를 다 한 식판을 정리해 두는 퇴식구가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일단 키오스크에서 제일 기본적인 등심돈가스를 주문한다, 안심돈가스를 주문하고 싶은 욕망이 순간 꿈틀거렸지만 가장 기본적인 돈가스의 맛을 확인하는 이성의 외침이 먼저였다.


4인용 테이블에 앉은 남녀가 섞인 3인, 그리고 그 옆 구석에 혼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학생들이 식탁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으니, 나도 4인용 식탁을 혼자서 차지하며 앉는다. 1, 2인용 식탁이 있었다면 그곳을 먼저 앉았겠지만 매장이 작고 자리가 많지 않아서 나 같은 1인 손님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아마 손님들이 몰리는 평일 점심시간에는 합석을 많이 하지 않을까.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니 남자 1명과 여자 2명으로 이루어진 3인조의 대화가 어쩔 수 없이 내 귀로 들어온다. 대화내용으로 미루어보아 남자가 선배고, 여자 2분은 후배인 것으로 들린다. 이 주변의 맛집이나 카페에 대한 얘기도 하고, 학과의 학생들이나, 주변 사람들 얘기 등 바깥으로 나오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재미있는 얘기들이 들려온다.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 보는 것을 즐기는 성향의 사람들은 이런 것을 재미로 삼으면서 살아가지 않나 싶다.


"식사 나왔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흑미가 섞인 밥, 김치, 싸우전아일랜드 드레싱이 올라간 양배추 샐러드, 옥수수 알갱이로 이루어진 곁들임. 여느 경양식집에서 볼 수 있는 한국적인 가니쉬 조합이다. 그리고 그릇의 정가운데에 주인공처럼 자리 잡은 둥근 모양의 등심돈가스, 돈가스와 그 주변에 불그스름하고 가벼운 소스들이 넉넉하게 올려져 있다. 겉보기에는 여느 돈가스들과 다른 것이 없어 보이는 돈가스다. 일단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옥수수알과 무난한 김치, 새콤하고 부드러운 양배추샐러드들부터 먼저 입안에 넣어 씹으면서 나의 위장과 입에 시동을 건다. 그리고 칼과 포크를 양손에 하나씩 잡고서 영국식으로 돈가스를 먹기 시작한다.


어렸을 적에는 먹기 편하게 한 번에 다 썰고서 집어 먹는 것이 좋았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그렇게 해 놓으면 음식 속의 열기가 빠르게 빠져나가기도 하고, 어떠한 음식에서는 육즙이 빠르게 나오기 쉬워진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돈가스를 먹을 때에는 열기가 금방 식는 것이 싫어서 영국식으로 먹는다. 어른이 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내가 원하는 음식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 돈을 내고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겠지.



바삭 바사사삭


일식과 경양식 돈가스를 합쳐놓은 것처럼 빵가루를 조금 더 굵직한 것으로 얇게 옷을 입혀 튀긴 돈가스가 39돈가스의 돈가스이다. 굉장히 고운 빵가루도 아니고, 굵직굵직한 빵가루도 아니다, 얇지만 과하게 바삭하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옷을 입은 돈가스다. 그리고 고기는 평평하고 부드럽게 잘 두드려진 등심, 뻑뻑하거나 질기지 않은 일반적으로 잘 전처리된 등심. 소스가 많이 묻지 않은 모서리 쪽을 먼저 썰어서 먹어본다.


"으음...?"



바삭하고 부드러우며 깔끔한 일반적인 등심돈가스이다, 등심을 얇게 두드려 폈기 때문에 두께에서 오는 식감이나 질감은 없다. 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분명 이것만으로 지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돈가스집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분명히, 무언가 더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래서 소스가 잔뜩 묻은 부분을 썰어본다. 그리고 입에 가져간다.


'...........!'


눈이 동그랗게 떠지는 소스의 맛이다, 39돈가스 소스의 맛은 눈이 크게 떠지고 혀가 놀라는 맛이다.


"이야, 이거구나. 이 소스가 특별하구나."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나오는 반복적인 고개 끄덕거림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지금까지 여러 돈가스를 먹어봤지만 튀김이나 육질 자체가 훌륭해서 맛있는 돈가스였다, 하지만 이토록 소스가 맛이 좋은 돈가스 집은 처음이다. 나는 다시 한번 돈가스를 소스에 잔뜩 묻혀서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눈을 감고 소스와 함께 돈가스를 천천히 씹는다.


달착지근하지만 많이 달지 않은, 입에 착착 감기는 단맛이 먼저 혀에 닿는다. 거기에 토마토를 베이스로 한 약간의 새콤함과 상큼함이, 깊고 묵직한 채수의 탄탄함 위에 쌓아 올려진 짭짤함으로 입안에 길게 남아 이어진다. 단순하지만 탄탄한 기본적인 맛들이 서로 어우러져 입안에서는 감칠맛으로 탄생한다. 소스의 질감은 가볍지만 그 맛은 깊숙하게 묵직하다. 입안에서 그 맛이 전체적으로 남아 계속해서 소스와 돈가스의 맛을 끌어당긴다. 평평한 접시에 넓게 펼쳐진 돈가스 소스가 퍼지는 것이 싫어서 포크와 나이프로 소스를 슥슥 긁어서 돈가스 쪽으로 모아 소스가 돈가스의 튀김옷에 스며들게 만든다. 그만큼이나 소스를 놓치기 싫은 것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아무리 바삭한 튀김도 소스에 젖어 조금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기성품과 다른 점은, 소스가 많이 묻고, 시간이 지나도 쉽게 눅눅해지지 않고 바삭함이 길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과 음식이 식고 튀김옷이 소스에 불게 되더라도 여전히 그 소스맛이 훌륭하기에 돈가스가 더 맛있다는 점이다.



토마토와 채수 등으로 어우러진 가볍고 은은한 단맛과 새콤함, 거기에 짭짤함이 복합적인 감칠맛을 만든다. 그 탄탄한 맛의 조합에 긴 여운이 이 단순한 돈가스를 훌륭한 음식으로 만들고 있었다. 39돈가스에서는 돈가스가 곁들임 음식이고 소스가 주 메뉴라고 생각될 만큼 소스가 훌륭하다. 이 소스라면 어떠한 튀김고기를 함께 먹어도 맛있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주방에 계시던 사장님들 중에 한 분이 홀로 나오셔서 접시를 정리하시길래 묻는다.


"선생님, 이 소스 직접 하신 건가요?"


사장님이 잠깐 멈칫하신다, 아마 무슨 의도로 묻는 것인지 생각하셨을 것이다.


"네, 저희가 직접 만들어요."


그리고 나는 웃으면서 답해드린다,


"아, 소스가 매력적이라서요."


사장님 표정이 금방 웃음으로 환해지면서 감사하다고 답하신다. 그리고 나는 포크와 칼로 소스들을 끝까지 싹싹 모아서 튀김 부스러기들과 함께 정리해 입으로 털어 넣는다. 조금이라도 놓치기 싫고, 계속 기억하고 싶은 소스의 맛이다. 소스를 다 먹으니 그제야 나의 식사가 끝난다. 이제는 대학교 캠퍼스로 가서, 처음 가보는 대학교의 캠퍼스 구경도 하고 내가 다니게 될 사이버대학교의 건물 구경도 하면서 천천히 소화를 시키고 서울의 더위와 제한적인 한적함을 즐겨야지.


나는 기쁜 마음으로 퇴식함에 그릇을 밀어 넣고 문을 나선다.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39돈가스의 부엌에서 외쳐지는 큰 환송 인사와 함께 나는 다시 서울의 거리로 발을 내디뎠다. 39돈가스의 소스만큼이나 즐거운 학업을 시작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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