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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Sep 16. 2023

[미식일기] Paul's Seafood, Adelaid

신선하고 바삭한 생선과 감자튀김, 호주식 튀김의 자존심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해산물, 특히나 생선을 튀겨서 감자튀김과 곁들여 먹는 이른바 '피시 앤 칩스(Fish & Chips)는 영국에서 유래된 음식. 그래서 영국의 이주민들로부터 나라가 시작된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도 그 식문화를 이어받았기에, 우리나라에서 분식집의 떡볶이와 순대를 곧잘 사 먹는 것처럼 흔하게 길거리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에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는 저렴한 음식 중에 대표였던 떡볶이, 순대가 점점 고급화되어 감에 따라 호주에서 판매하는 피시 앤 칩스의 가격과도 같이 비슷해져 버렸다는 것이 웃기지만 슬픈 현실.


호주에서 먹을 때에는 패스트푸드를 사 먹는 가벼운 마음으로 사 먹을 수 있는 튀긴 해산물과 감자튀김이지만, 피시 앤 칩스의 수요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 이 음식을 먹으려면 고급 양식당에나 가야 겨우 먹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음식이고, 먹을 수 있는 양식당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가격도 상당히 고오급이기 때문에 호주에서 사 먹던 마음처럼 가볍게 사 먹을 수가 없어서 호주에서 한국으로 귀국을 한 이후에는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호주에 대한 생각이 날 때면 항상 함께 입과 혀로 떠올리던 바삭하고 부드러운 식감의,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해산물 음식 중 하나를 그리워했었다.


10여 년 전에 호주 멜버른에서 수년간 유학을 했던 그 청년은 이제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조금 더 연식이 된 청년이 되어 호주 애들레이드를 방문하는 중이다.


"애들레이드 센트럴마켓 근처에 튀김 잘하는 곳이 있어. 오래되기도 했고 실제로 맛도 좋아."


누나와 함께 애들레이드의 식물대공원에서의 산책 겸 관광을 마침 나와 이쁜 여자에게 누나는 앞으로 가서 점심을 해결할 피시 앤 칩스 식당에 대해 소개하면서 말했다. 그 전날에 인상적인 브런치를 먹었던 Froth & Fodder에서 이른 아침에 애들레이드 식물대공원으로 향하기 전에 버터밀크팬케이크 3장에 베이컨, 구운 치즈에 차이라테를 곁들여 든든하게 먹고 나왔지만 10년 만의 가족상봉을 빙자한 식도락 여행을 온 나에게 식사는 멈추지 않는 연속이기에 누나의 소개가 더욱 기대가 되었다.


"오래되었다고? 언제부터인데?"


"내가 알기로는 1940년대부터 열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 지금 사장님의 아버지였나 할아버지가 창업주신데 맛이 좋으니까 지금까지 가게가 영업을 하고 있겠지?"


194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식당이라, 우리나라에서도 30년 이상 가게를 운영한 이른바 '백년가게'의 조건에 해당되는 식당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가게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존경할만한 것이다. 지금이 2020년대이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80년 정도 된 가게라는 뜻이 되니까, 한국에 있는 가게였다면 온갖 방송매체와 SNS를 통해서 굉장히 유명한 가게가 되었을 테지, 백선생님이 나오는 방송은 물론 허영만선생님의 만화에도 등장할만한 가게였을 것이다.


"내가 이전에 남편이랑 가서 몇 번 먹었는데, 내가 여태까지 먹어본 감자튀김 중에 제일 맛있어."


생선튀김도 생선튀김이거니와, 자신이 먹었던 감자튀김 중에 제일 맛있는 감자튀김이라니. 나는 아직까지도 '제일 맛있는 감자튀김'이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고 한국에 있으면서 주변 사람으로부터 '감자튀김이 맛있는 집이 있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만약에 있다고 하면 감자튀김에 올려주는 치즈소스가 맛있기 때문에 감자튀김이 맛있다고 하는 것이었지.


"그 식당 근처에 센트럴마켓(우리나라로 치자면 '중앙시장')이 있으니까 식사하고서 식재료 구경도 하고 사고 싶은 기념품도 사."


"그러면 되겠네."


Paul's Seafood, Adelaide


택시를 타고 가는 짧은 시간 동안에 우리는 식사 이후에 어떻게 움직일지도 결정을 하고 가게 앞에 내렸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 중의 하나인 시장이라서 그런지, 근처에 중국 가게들이 즐비한 차이나타운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온갖 나라의 음식들을 선보이는 식당들도 줄을 선 모습이었다. 티베트, 라오스, 몽골, 대만을 비롯하여 레바논, 나이지리아 등 서울 이태원거리의 한복판에 온 기분, 각 식당들을 다 들어가서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그래도 내가 피시 앤 칩스를 그리워한 10년의 마음과 감정을 이길 수는 없었다.


"Paul's Seafood라... 폴의 수산물가게, 창업자분의 성함이 '폴'이셨나 보군."


"뭘 먹을지 볼까?"


우리가 가게로 들어서자 바로 오른쪽에 신선재료들을 보관하고 있는 냉장진열대와 그 너머로 은빛을 내는 각종 튀김기 및 요리기구들이 보이고 왼쪽과 앞으로는 하얀 테이블보가 깔린 원형 식탁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고 2층의 아래에는 와인저장고와 알코올류 등을 제조하는 작은 바가 있었다. 그리고 원목으로 된 고전적인 분위기의 천장과 노란 등불, 벽면에는 주인장이 여행을 했던 나라의 사진들과 각 나라의 화폐들, 여행 사진들, 가게를 방문했던 유명인사들의 사인과 사진들이 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방송에 출연했던 사진이나 연예인들이 방문했을 때 함께 찍은 사진을 가게에 진열해 놓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 이것은 어느 나라를 가던지 차이가 없다.


"어디서 먹을 거예요? 바깥? 안쪽?"


"우리는 안쪽에서 먹을게요."


"좋아요, 3분이시죠?"


"네네, 감사합니다."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한국에서 왔어요."


"오, 옛날에 부산의 영화축제를 갔었었는데 참 즐겁고 맛있는 것이 많은 도시였어요."


Paul's Seafood, 냉장진열대와 주방. 진열대에는  각종 생선들과 필렛들이 보관되어 있다.


우리와 작은 담소를 나누며, 사장님은 우리를 식탁에 안내하는 동시에 메뉴판을 내오셨고 우리는 어떠한 생선의 튀김을 시킬지 이야기했다. 지역재료 특선 메뉴에 작은 녹색 전복의 새끼를 버터에 볶은 것과 근처 양식장에서 가져온 굴을 판매한다고 하기에 주문하니,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장으로 보이시는 분이 묻는다.


"음.... 이거 전복이 새끼라서 굉장히 작은데, 괜찮겠어요? 3분 이서 드시면 위에 먹었다는 기분도 안 들 텐데요?"


그래도 우리는 현지에서 채취한 녹색 전복이라는 녀석을 먹고 싶었기 때문에,


"괜찮아요, 한번 먹어보고 싶어서 시키는 거니까 그냥 주세요."


"알았어요, 그러면 샐러드를 하나 더 드리죠."


"그거 좋네요, 감사해요."


"그리고 또 어떤 것을 주문하시겠어요?"


전복과 굴을 주문했으니 이제는 정말로 '튀겨낼 생선'을 주문할 차례다. 자신이 원하는 생선을 고르면 순살로 튀겨주고 그 옆에 약간의 샐러드와 감자튀김을 곁들여주는 피시 앤 칩스 식당에서 제공하는 식사류이다. 나는 애들레이드 현지에서 주로 먹을 수 있는 제철 생선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물었다.


"요즘 여기서 괜찮은 생선은 뭐예요?"


그러자 주문을 받던 사장님이 주방에 있던 민머리에 굵은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주방장에게 건네어서 물어보신다.


"어이! 요즘 생선 뭐가 괜찮아?"


"다 괜찮아! 다! 물이 올랐지!"


나는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대화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들의 식재료와 음식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니까.


"완벽하군요" 나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


'음.... 옛날에도 자주 먹던 '바라문디' 생선을 먹을까? 아니면 도미..? 음...'


내가 진지하게 생선의 이름들을 보면서 고민을 하자 사장님이 고민을 조금 덜어주신다,


"여기서 나는 생선을 먹어보고 싶다면, 여기 화이팅(King George Whiting, 주로 whiting이라고 불리며 성인 남성의 팔뚝만 한 크기의 보리멸류 생선이다.)을 먹어보는 건 어때요? 애들레이드 연안을 포함한 호주 남부에서만 잡히는 생선이에요."


"좋아요, 그러면 그걸로 하나 주세요."


애들레이드에서 잡히는 자연산 녹색전복


나를 제외하고는 아직 아침에 먹었던 브런치가 다 소화가 안 되었는지 곁들여 나오는 감자튀김에 샐러드를 더 주문해서 먹겠다고 하길래 그러자고 동의했다. 깔끔한 백와인이나 샴페인을 한잔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식사 후에 또 돌아다닐 예정이라 금방 마음을 접었다. 주문이 접수되자 주방에서는 냉장진열대에서 재료들을 주섬주섬 챙기시고는 금방 부글부글, 파박거리며 작은 기포들과 기름이 끓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코를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와 신선한 바다 냄새가 우리의 식탁으로 곧 올라왔다.


"굴은 레몬을 한번 뿌리고 소스를 살짝 찍어드셔 보세요, 그냥 먹는 것도 맛있지만 소스와 함께 먹는 것도 더욱 맛있어요."


우리는 각자 굴을 하나씩 잡고 레몬을 뿌린 후 포크로 굴을 잡았다. 이미 먹기도 전에 굴에서 코로 스며들어오는 신선한 바다냄새, 소금기가 섞인 달콤한 냄새.


"나는 생굴을 안 먹는데, 이거는 한번 먹어보고 싶네."


나는 굴을 들어서 입으로 가져가 빠르게 흡입했다, 굴은 매번 겨울에 가격이 내려갈 때쯤에 주로 파스타나 짬뽕 등에 잔뜩 넣어서 완전히 익힌 채로 먹는데 이렇게 신선한 생굴을 먹는 것은 처음이었다. 말캉, 쫀득거리며 굴이 치아 사이에서 씹히는데 내가 싫어하는 비린내나 극심한 바다의 냄새는 나지 않는다. 신선한 바다의 향기가 소금기, 그리고 시원한 굴의 맛이 입으로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와, 시원하고 달다!"


"굴이 비린내도 하나 없고 엄청나게 신선해."


양식장에서 가져온 굴


애들레이드를 비롯한 호주의 몇몇 바다에서는 굴도 양식을 하고 있는터라 굴의 품질이 괜찮다고 들었는데,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굴의 맛이 훌륭했다. 생굴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구나, 미식 생활을 하면서 처음 깨닫는 사실 중에 하나였다. 평소에 생굴이나 석화구이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익은 굴만을 먹는 나를 보면서 굴의 참맛을 모른다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나라는 사람은 비린내에 취약하기 때문에 수산물은 내가 선호하는 식재료는 아니다.


"소스에 식초랑 마요네즈, 칠리를 적당히 섞어서 바다맛 가득한 굴이랑도 잘 어울리네."


"음음... 좋은 조합이야."


나는 이제 곧 내가 주문한 화이팅 튀김과 칩스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생굴은 두어 개만 먹고는 그만두었다. 하얗고 노릇노릇하게 익은 두툼하고 길쭉한 생선살이 황금빛을 내는 노르스름한 두꺼운 감자튀김들과 함께 내 앞으로 등장했다. 감자튀김 위에 뿌려진 가루는 일반 소금이 아닌 치킨스톡이 섞인 미숫가루와도 같은 색을 가진 소금이었다. 곧 고소한 냄새가 내 코로 밀고 들어왔다.


"생각보다 살이 상당히 두툼하네, 이게 보리멸과 같은 어종이라니 말도 안 돼."


식사를 기다리면서 화이팅(whiting)이라는 이 어종을 검색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 가게 외부에 걸린 광고판에 있는 물고기가 이 화이팅이었다. 호주에서는 남부에서만 잡히는 물고기라고 하니 현지 어종을 먹어보고 싶던 나는 일단 소원을 하나 이루었다. 먼 옛날에 유학을 하던 시절에는 돈이 많이 없던 터라 고급 어종은 꿈도 못 꾸고 저렴한 어종인 바라문디 한 조각을 겨우 먹을 수 있었으니까. 칼과 포크로 슥삭 잘라내려고 하니 부드럽게 잘리는 육질.


킹 조지 화이팅, 튀김옷 없이 튀겨낸 방식


"생각보다 살이 상당히 부드럽네, 거의 부서지듯이 잘린다."


그리고 큰 조각을 입으로 가져가서 조심스럽게 씹어본다. 간을 하지 않고 조리를 하였는지 생선살에서는 짭짤한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신선한 바다향기와 함께 기름에서 튀겨진 노릇노릇한 고소함. 거기에 치아 사이에서 느껴지는 매끈하며 부드러우면서도 사각거리면서 씹히는 담백한 속살. 심심하고 담백하면서도 사각거리면서 속살이 부서지듯이 씹힌다, 한국에서 많이 먹는 고등어, 열기, 가자미, 삼치, 임연수, 갈치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식감이다. 이전에 여수에서 먹었던 보리멸 튀김의 식감과도 다른 식감, 거기서도 보리멸 튀김의 속살은 굉장히 부드러웠는데 거기에 크기가 커져서 조금 더 두툼한 속살에서 더해지는 식감들이 있는 건가.


'한국에서도 보리멸이 곧잘 잡히는데, 대중적이지는 않지. 나는 여수에서 처음 먹어봤을 정도니까.'



몇 번 더 잘라서 먹으니 심심하면서도 고소하고 담백한, 거기에 사각거리는 독특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그러면 이제 누나가 그렇게 칭송하던 감자튀김도 먹어볼 차례다. 나는 주로 신발끈이라고 불리는, 우리가 일반적인 패스트푸드점에서 많이 먹는 얇은 감자튀김을 선호하는 편이다. 두툼한 감자튀김이나 웨지형태가 더 건강에 좋다는 것은 알지만 식감이 텁텁하고 뻑뻑해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맛이 없으니까. 그래서 Paul's Seafood에서 등장한 이 금빛 노란색을 띠는 두툼한 감자튀김들을 봤을 때에도 설마 텁텁하고 답답한 맛이 나는 감자튀김은 아니려나 하고 생각했지만, 한입 먹고 나니 생각이 바뀐다.


어떻게 튀기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겉이 부러지는 것처럼 바삭하고 감자의 속살은 포슬포슬, 눈이 녹아내리듯이 입안에 스며든다. 텁텁하고 답답한 식감은 없다, 포슬포슬하고 녹는 감자의 속살이 이어서 들어오는 다른 감자튀김 조각의 앞길을 막지 않는다. 나는 주방에 보이는 주방장을 바라보며 외쳤다.


"내가 살면서 먹어본 감자튀김 중에 제일 맛있는 감자튀김이에요!"


"뭐라고요?"


"내가 먹어본 감자튀김 중에 제일 맛있다고요!"


"오, 고마워요!"



손님에게서 칭찬을 많이 들어본 적은 없으셨는지 두 번째에야 들으시고 방긋 웃으신다, 뒤를 돌아서 다른 주방일을 하려고 돌아서는 그의 등이 왠지 들썩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화이팅을 다 먹고 감자튀김도 순식간에 반 이상 해치웠지만 아직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튀김옷을 입은 '피시'를 아직 먹지 않았기에 진정한 피시 앤 칩스는 먹지 않은 것이다. 나는 사장님을 다시 불렀다.


"사장님, 여기 참돔 주세요."


"참돔, 좋아요. 지금 먹은 것처럼 튀김옷 없이? 아니면..."


"튀김옷 입은 걸로요!"


"튀김옷은 튀김반죽 입은걸로요? 아니면 빵가루 입은걸로요?"


"당연히 튀김반죽(battered)죠"


"좋습니다."


사장님은 주문을 받고 돌아가시더니 다시 민머리의 콧수염을 기른 주방장과 대화하신다, 그리고 주방장이 나를 향해 묻는다.


"버터 섞은 소테(saute, 팬에서 기름이나 버터로 빠르게 볶거나 굽기) 요? 아니면 기름에 넣고 튀기는 거요(deep fried)?"


"당연히 버터 섞은 소테죠!"라고 내가 답하니


사장님과 주방장이 둘 다 고개를 끄덕이고 엄지손가락을 올리시더니,


"전통적 호주방식, 먹을 줄 아시는구먼"하시기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도 잊지 않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주방에서 피어올랐다. 커다랗고 저렴한 생선튀김 두 덩어리에 감자튀김을 한 뭉치, 옅은 회색빛을 띄는 기름종이로 둘둘 말아 포장을 해서는 숙소로 가져가서 같이 사는 동지들과 방 한가운데에 열어놓고서 우리만의 만찬을 즐겼던 기억. 그 기억들이 익숙한 냄새와 함께 내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그리고 내 앞에 등장한 커다란 도미순살튀김들. 튀김옷은 거의 갈색과도 같은 황금빛, 두툼한 두께는 꼭 닭가슴살 튀김과도 같았다.


참돔에 튀김옷을 입혀 튀겨낸 튀김


바사사사삭


칼을 들어 도미튀김조각을 가르니 귀가 즐겁게 튀김옷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부드럽지만 쫄깃한 도미살이 결을 따라서 찢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입에 넣고서 가져간다, 살짝 두께가 있는 튀김옷이지만 씹을 때마다 바삭거리고 속은 촉촉하다. 부드러운 도미살은 쫄깃하게 치아 사이에서 씹히며 튀김옷과 어울려 기름의 맛과 육즙을 쏟아낸다. 결을 따라 씹히는 도미살이 혀, 치아, 잇몸을 따라서 느껴진다, 염지와 조미가 완벽하게 된 닭가슴살을 씹는 식감이다. 거기에 내가 그리웠던 것은 이 두텁지만 바삭하고 촉촉한 튀김옷, 한식이나 일식의 그것과는 또 다른 방식의 튀김이다. 비슷하다면 일식의 튀김옷과 비슷하지만 일식의 튀김옷은 호주에서 먹는 battered 튀김옷보다는 더 가볍고 더 바삭한 식감이며 수분감은 조금 더 적은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이 튀김과 이 속살의 식감을 원했다, 호주에서 먹는, 호주에서 호주인들이 먹는 피시 앤 칩스를 원한 것이다, 한국에서 먹기 쉽지 않은.



나는 한동안은 옛날에 그렇게 먹고 싶었던 고급 어종인 도미를 이제는 피시 앤 칩스로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지금의 나를 보면서, 그 옛날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한을 풀기도 하면서 옛날에 같은 숙소의 동무들과 함께 먹던 그 피시 앤 칩스에 대한 추억을 함께 먹었다. 그냥 피시 앤 칩스를 먹어도 좋았지만, 맛이 좋은 훌륭한 피시 앤 칩스를 먹었기에 그 감동은 더했다. 나는 그렇게 즐거운 피시 앤 칩스 미식을 마치고 일어섰다.


"식사는 어떠셨어요? 괜찮았나요?"


나는 대답대신 미소를 지으며 호주달러 10달러를 꺼내어 계산대에 있던 팁을 넣는 통에 넣었다.


"와, 후한 팁에 감사드립니다."


"사장님 가게의 피시 앤 칩스는 매우 훌륭했어요... 음..."


"...?"


나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내가 앉았던 식탁을 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10년 전에 멜버른에서 대학교를 다녔었거든요, 그러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는데요 호주에서 먹던 맛있는 피시 앤 칩스를 정말 먹고 싶었는데 먹을 수가 없었어요. 한국에는 호주식으로 그런 피시 앤 칩스를 하는 곳이 거의 없어서요. 그런데... 오늘 여기서 먹었네요. 고맙습니다, 훌륭한 피시 앤 칩스였어요."


내가 말을 마치자 키가 크고 덩치 좋은 사장님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의 어깨에 손을 둘르며 웃었다.


"한국에 우리 Paul's Seafood 프랜차이즈를 내는 게 어때요? 하하하!"


"제가 나중에 돈을 더 벌면 꼭 연락드리죠, 하하!"


마침 해당 시간대에 식사를 하던 팀은 우리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나가는 우리의 마중을 나오며 물었다.


"그다음은 어디로 갈 생각이에요?"


"여기 바로 앞에 시장에 가서 식자재 구경도 하고 기념품도 사려고요."


"음.... 괜찮겠어요? 오늘 수요일이라서 가게가 많이 안 열 텐데."


"그래요...? 흠,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니까 지금 가야죠."


"그래요, 앞으로 남은 일정 잘 있다 가요."


그렇게 나는 Paul's Seafood에서 젊은 날의 나와 함께 즐거운 피시 앤 칩스 식사를 마치고 다음 나날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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