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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Sep 24. 2023

[미식일기] 153스트리트, 서울

입안을 가득 채우는 기름진 풍미, 눈이 번쩍 뜨이는 육즙

필자 주변의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필자는 이전부터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기 위하여 대학교를 다시 들어갔다, 정말로 하고 싶은 길이 이 길이 맞는지 확인도 하고 지적인 욕구도 충족시킬 겸 유학생활과 군생활을 그만둔 지 두 자릿수의 연도의 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에야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공부를 하면서도 재미를 느끼는 공부를 한다는 것, 그러한 공부를 해보신 분들은 그 즐거움에 공감할 것이라.

여느 대학교가 다 그렇듯이 개강을 할 때에는 학생들을 환영하고 학습을 안내하기 위한 행사와 개강파티라는 것도 하게 되는데, 교수님들과 함께 공부하게 될 교우들의 얼굴도 좀 볼 겸해서 나는 황금 같은 토요일에 굳이 내 돈을 내고 사람 많고 차 많아서 싫어하는 서울로 향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학교 구경과 사람 구경도 하고 대학교는 대학교인지라 근처에 대학로 상권이 잘 조성되어 있어 그 골목 사이사이에 자리 잡고 있을 맛있는 음식들을 경험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 진짜 목적이라고 하겠다.


'그래도 미리 찾아놓은 곳이 없는데... 어디를 가지... 저번에 갔었던 소스가 맛있었던 39돈까스를 다시 갈까? 아니면 근처에 카페가 괜찮은 곳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일단 그 골목으로 가보자.'


서울로 향하는 KTX 안에서 대학교 행사가 열리기 전까지 어떻게 나의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미식 경험을 충족시킬지 고민했다. 그리고 도착한 대학교 근처 지하철역을 내려 대학교로 향하면서 나는 39돈까스가 자리를 잡고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나의 눈은 높은 곳을 향했다.


"어라?"


가는 흰색으로 통유리 창문에 붙어진 '153 STREET'라고 쓰인 상호명과 'BURGER'라는 영문, 반가웠다. 이렇게 쓰인 버거를 하는 식당이라면 분명히, 내 느낌으로는, 수제버거를 하는 곳이다. 강릉에서 좋아하는 수제버거집이 있었으나 그곳이 홀연히 사라진 이후로는 홍제동, 초당동이나 주문진은 가야 겨우겨우 먹을 수 있는 것이 수제버거인데, 내가 사는 곳에서는 멀리 있으니 확실히 맛이 괜찮다는 확신이 없으면 그 먼 곳에 있는 식당까지 발걸음을 하기에는 어려운 것이다. 거기다가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여도 그 버거의 패티가 내 입맛에 많은 패티일지는 미지수. 그렇다, 나는 수제버거에 대해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인간이다.


"여기에 수제버거가 있다니... 그것도 2층에서 꿋꿋하게 장사를 하고 있다니, 가봐야지."


건물 2층으로 향하는 입구로 가보니 자신들이 만드는 버거에 대해 자부심이 가득 들어간 사진과 메뉴 설명, 수제버거가 생각보다 비싸지 않고 저렴하게 먹을 수도 있다는 이런저런 할인과 구성들. 하지만 나는 수제버거가 저렴하고 얼마나 구성이 좋은지에는 관심이 없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수제버거의 패티가 나에게 얼마나 잘 맞을지 그리고 브리오슈 빵이 제대로 구워져서 나올 것인가이다. 나는 버거의 사진들을 보면서 잠시 고민했다, 갈지 안 갈지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버거를 시켜서 먹을지 그리고 한입을 베어 물었을 때 맛있다면 어떠한 버거를 추가로 시켜서 먹을지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입맛에 안 맞는다면 버거 1개로 깔끔하게 식사를 마치고 바로 떠나겠지만.


나는 노란색 바탕의 벽을 가진 좁은 계단의 코너를 밟고 돌아서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진한 녹색 타일바닥과 좌석, 가구들 그리고 노란색 벽과 천장으로 강렬한 색감을 내뿜는 가게, 창가에는 혼자서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바 자리에 1인 좌석이 몇 개 나를 환영하듯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막 11시 30분이 넘은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간, 나는 153스트리트 토요일의 첫 손님으로 들어갔다. 혼자서 주문할 수 있는 키오스크 너머로 은색과 어두운 색감으로 번쩍이는 널찍한 주방에 키와 어깨가 보통 사람보다 한치는 더 커 보이는 덩치가 좋은 사장 겸 주방장님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옅은 푸른색과 흰색의 줄무늬가 있는 앞치마를 두르고 검은 요리사복을 위, 아래로 입고 나를 맞이했다.


'어깨, 상완, 전완부가 상당히 발달되셨고 체격도 굉장히 탄탄하신데?'


건강을 위해서 규칙적으로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 나의 눈에도 튼튼하게 보이는 사장님, 왠지 모르게 직접 손으로 고기들을 손질하고 으깨서 패티를 만들 것 같은 느낌에 신뢰감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느낌이 이미 좋다. 나는 153스트리트의 가장 기본적인 메뉴를 주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스트리트버거를 세트로 주문하자, 그러고 나서 맛이 괜찮으면 더블치즈를 주문해야겠어.'


내가 버거를 주문하기 시작하자 잇따라서 한 팀이 더 들어온다. 나에게는 손님을 불러오는 기운이 있어서 강릉의 모 사장님들은 내가 가게에 오는 것을 좋아하시는데, 서울에서도 그러한 기운이 발휘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매콤하고 크리미한 소스와 패티가 한 장, 그리고 로메인으로 야채를 장식한 버거에 두텁게 썰린 감자튀김과 제로콜라가 구성인 세트를 주문하고 점잖게 창가에 앉아 기다렸다. 맞은 편의 마라탕집, 프랜차이즈 카페, 편의점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이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지나다니고 있었다. 역시나 서울, 강릉의 길거리와도 같은 한적한 장면은 보기 어렵다.


"버거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153스트리트의 스트리트버거


주방에서 이런저런 지글거림과 끓어오름과 바삭한 소리들이 매우 바쁘게 오간 후에 내가 기다리던 수제버거가 등장했다. 153스트리트의 패티는 나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내가 속초에 살 때부터 그리워하던 그 고기의 맛을 나에게 돌려줄 수 있을까? 의문을 품고 나는 접시에 함께 나온 유산지에 버거를 담아서 한 손에 들었다, 그리고 나의 한입이 수제버거를 덮쳤다.


'!!!!!!!!'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 날 정도로 고소한 브리오슈번, 버터의 향미가 풍겨지는 빵은 이미 예상한 대로 맛이 좋았다. 그리고 치아에 의해 절삭된 수제버거 패티로부터 느껴지는 고슬 거리는 갈린 고기의 식감, 그 조각들 사이사이에서 폭발하듯이 나의 혀와 입안에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보다 더 맛있습니다


"이거지!!"


나도 모르게 약간 큰 소리로 독백을 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흥분과 기쁨, 행복감이 섞인 신나는 쿵쾅거리는 발걸음으로 키오스크로 뛰어가듯이 향했다. 여기, 153스트리트에서 버거를 한 개만 먹는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드시 버거를 2개는 먹어야 만족스러운 식사가 완성될 것이다, 나는 확신했다.


"더블치즈! 더블치즈! 더블치즈!"


키오스크 버거 메뉴에서 뒷장으로 넘겨서 더블치즈 버거가 있는 것을 보고 체다치즈를 하나 더 추가해서 단품으로 주문했다. 이미 나와있는 메뉴에 감자튀김이 잔뜩 있었기 때문에 세트메뉴로 먹을 이유는 없고 음료도 한 번은 다시 받을 수 있으니까. 나는 먹방을 하는 방송인이 아니다, 가끔은 대식가가 되기도 하는, 미식을 즐기는 한 명의 행복한 영혼일 뿐이다. 내가 주문을 하자 잠깐 재료준비를 하면서 앉아계시던 사장님께서 일어나 다시 요리를 하신다. 나의 더블치즈가 곧 나오겠지, 이미 머릿속에 버거의 그림을 그리기만 해도 즐겁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수제버거에 열광하고 흥분한 글을 쓰는지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어느 날 여러분이 사랑하던 사람이 아무 이유나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수년만에 우연히 간 동네에서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자, 여러분의 기분은 어떨까? 그리고 그이는 여러분에게 왜 갑자기 당신 곁에서 사라져 버릴 수 없었는지 친절한 설명과 포옹과 애정을 담은 손길로 환영한다, 여러분의 기분은 어떨까? 그렇다, 내가 153스트리트에서 내 입맛에 딱 맞는 수제버거를 만난 기분이 이와 같은 것이다, 내 주변에서 사라져 버렸던 맛있는 음식을 만나는 기분이 나에게는 그와 같은 것이다.


'이 기름진 패티! 이 쏟아지는 육즙! 오늘은 내 생일일지도 몰라.'


환희를 만끽하고 있는 나는 포크를 잠시 들어 옆에 있는 감자튀김을 집어 들었다, 바삭한 겉면에 미끄러지듯이 안쪽으로 파고는 포크의 느낌.


'호주의 Paul's Seafood에서 먹었던 감자튀김과 비슷한 느낌인데?'


내가 좋아하지 않는 소금이 많이 뿌려져 있었지만 그래도 먹어본다, 바삭하면서 포슬포슬한 감자의 식감이 나의 잇몸들과 부대끼며 내 입을 가득 채운다. 크림처럼 씹히지만 감자의 식감과 물이 섞인 눈처럼 사각거림이 치아사이에서 움직인다. 호주에서 먹었던 인상적인 그 피쉬앤칩스 집의 감자튀김만큼이나 맛있는 감자튀김, 두텁게 썰린 기다란 감자튀김에 대해서 나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부서지는 맛이다.



'그렇다면 뜨거울 때 많이 먹어놔야지, 식어도 맛있겠지만 지금의 이 따뜻한 맛이 훌륭해.'


나는 순식간에 쌓여있던 감자튀김을 반 넘게 해치워 감자튀김 '산'을 구릉으로 깎아버린 후에 다시 왼손에 잡혀있던 수제버거를 입으로 가져온다, 이제 온전히 수제버거를 다시 느껴볼 시간이다.


'한 입, 한 입이 기대되는 군.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야.'


고소함과 쫄깃함으로 브리오슈번이 다시 나를 맞이하고 그 밑에서 매콤하며 크리미한 소스의 산미가 아삭거리는 로메인과 어울려서 지루할 수 있는 고기와 빵의 식감에 변화를 준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패티의 맛을 그 둘은 따라올 수 없다. 빵과 채소가 없이는 이 패티의 맛도 드러나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패티를 씹을 때마다 쇠고기 파편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오는 기름기 넘치는 육즙과 지방의 맛이 농후하고 진하게 입술부터 입천장, 잇몸사이와 목젖까지 마른땅에 비를 내리는 달콤한 소나기처럼 내려온다. 매콤함과 아삭함, 부드러움과 고소함, 진한 육즙의 완벽한 조화, 훌륭한 조합이다.


'맞아, 맛있는 수제버거는 가히 일반적인 햄버거와는 다른 차원의 맛이라고 할 수 있지.'


"더블치즈버거 나왔습니다~"


'오오!'


153스트리트의 더블치즈버거


마침 손에 쥐고 있던 버거의 크기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지고 있던 것이 아쉬웠던 나에게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는 집주인의 마음으로 한걸음에 주방 앞으로 달려갔다. 치즈가 한 장 더 추가된 나의 사랑하는 더블치즈버거, 특별함은 이미 예약되었다.


'더블치즈라서 크기가 조금 크네, 그래도 상관없어'


나는 더블치즈버거를 유산지에 밀어 넣으면서 생각했다, 치즈가 가득한 쇠고기패티는 무슨 맛이 날지 상상하면서 나는 한입을 물었다.


진득하고 늘어지는 체다치즈의 맛이 육즙이 가득한 패티와 어울려 더 무겁고 강렬한 소의 맛을 선사한다, 패티가 2장이 된 만큼 그 육즙과 기름의 맛도 두 배가 되어서 녹아내리는 치즈와 함께 내 혀 위에서 미끄러진다. 내 혀 위에서 이미 액체가 되어버린 패티와 치즈의 맛은 미뢰들 사이에서 떨어져 나가기를 거부하듯 강하게 나의 입맛을 붙잡는다.



수제버거는 패스트푸드로 취급이 되지만 형편없는 음식이 아니다, 빵과 고기와 채소와 소스의 조합과 균형과 조화를 고민한 요리사의 흔적이 명백하게 남아있는 미식 작품이다. 그렇다, 인간으로 하여금 미식을 경험하게 하는 모든 음식은 오감으로 즐겁게 하는 작품이다.


"이렇게 즐거운 수제버거는 얼마만인지. 나는 이대로 대학교 행사에 안 가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도 좋겠는데."


나는 깨끗하게 비운 그릇들을 주방으로 반납하며 사장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먹었습니다, 버거를 엄청나게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대학교를 방문할 때면 거의 매번 방문할 153스트리트, 오래오래 장사하시기를 바라며 나는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장이 열리는 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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